오산 전통시장 골목에 이제 중국식 간판이 제법 있다. 야채 가게에 고추 값을 흥정하는 ‘아주매들’ 중에는 아시아계 외국인도 보인다. 20여 년 전 이주민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오산 지역에도 이주민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정착했다. 그 중에 더러는 직접 자기 가게를 운영하며 시장에 터를 잡았다. 상점을 운영하지 않더라도 인근 지역에 거주하면서 시장을 그들의 중요한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여전히 ‘소수자’라는 인식이 많지만 실제로 그들 중에는 ‘나는 한국 사람이다’를 외치며 한국 문화에 흠뻑 젖어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낯선 타지에 들어와 언어적 문화적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제 제법 한국인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을 만나봤다.

한국만의 장날문화에 사로잡힌 세 아이 엄마 (태국)

“태국에서는 대형마트보다 전통시장이 더 활성화 돼 있어요. 고향에서도 전통시장 근처에서 살았지요. 그래서 그런지 한국의 재래시장이 고향처럼 편안하고 친근하죠. 그저 시장이 좋아요.”
한국에 온지 13년 된 그녀는 한국의 5일장을 좋아한다. 전통시장의 야채와 과일은 대형마트보다 훨씬 신선하고 맛도 달다. 뿐만 아니다. 저렴한 가격 덕에 부담 없이 장을 볼 수 있어서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을 키울 맛이 난다.
“흥정 하지 않아요. 상인들을 신뢰하고 제품에 만족하기 때문이죠.”
소소한 행복에 만족할 줄 아는 그녀는 가끔씩 얹어 주는 ‘덤’에도 감사할 줄 안다. 교육열이 높은 한국에서의 자녀교육이 버거울 법 한데도 그녀에게는 그녀만의 확고한 철학으로 아이들을 훈육한다. ‘사람과 함께 지내며 주위(이웃)와 사회를 아우를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시장을 오래 이용하다보니 그녀는 이제 맛있고 싸고 질 좋은 상점에 대한 나름의 정보도 생겼다. 상주들과도 관계를 쌓아가고 있다고 한다.
대도시에 전통시장이 사라지고 있는 게 안타깝다는 그녀. 그녀가 낯선 한국에서 13년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게 한 힘은 분명 작은 것에도 행복을 누릴 줄 아는 그녀의 성품과 잘 어울리는 ‘전통시장’ 때문이 아니었을까.

▲ 이주여성센터에 있는 로리아(필리핀 출신). ⓒ조백현 기자

로리아에게 전통시장이란 ‘남편과 데이트 하는 곳’ (필리핀)

로리아는 이제 한국에 온지 15년 된 필리핀 여성이다. 그녀는 한국에 와서 이주노동자 단체의 도움을 받아 동사무소의 영어강사, 쓰레기 분리수거 직원, 공부방 교사 등으로 일해오고 있다.
“단체 안에서의 일은, 돈을 벌면서도 아이를 양육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 정착하기에 수월했어요.”
그녀는 남편과 시장에서 두 걸음 정도 차이를 두고 걷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고향을 떠나올 때만해도 필리핀에서는 아직 남편이 아내보다 한 두 걸음 앞서 걷는 문화가 남아있었다며. 남편이 함께 장을 볼 때마다 특유의 ‘큰 씀씀이’로 아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사기 때문에 남편과의 장보기는 그녀에겐 큰 행복이다. 이따금씩 남편과 함께 시장 안에 있는 식당에 가서 삼계탕, 감자탕, 샤브샤브를 먹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가격도 부담 없고 인심도 좋은 시장이 대형마트 보다 좋다는 로리아.
로리아의 데이트를 아득하게 도와주는 시장의 ‘지붕’은 그녀가 가장 극찬하는 오산 전통시장의 장점이다.
어려움은 없냐는 질문에 오히려 아이들이 모국에 대한 갈증을 느낄 정도로 한국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 로리아 가족.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교육도 실시하고 있고, 아이도 곧 잘 적응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시아 입맛을 재패한 ‘양꼬치’에는 그녀의 인생이 담겼다.(중국)

양 매화(여 45)씨가 운영하는 ‘양꼬치’ 집은 주말만 되면 단골들로 북적인다. 가게가 좁은 시장 골목 건물 2층에 위치해 눈에 띄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멀리서 인터넷을 검색해보고 찾아오는 고객도 있다. 이제는 좀 쉬고 싶기도 하지만 손님들은 주방장을 바꾸면 안 오겠다며 주인장의 손맛만을 고집한다.
그녀가 이토록 자신 있게 선사하는 요리들에는 그녀의 인생이 담겨있다. 조선족으로서 10살 때까지는 곧잘 조선족들 사이에서 한국어도 사용했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이후 본격적으로 한인들의 장사 행렬에 들어서게 됐다는 그녀. 중국에서도 야무졌던 그녀는 배추장사고 반찬 장사고 안 해본 일이 없단다. 18살 때부터 식당일을 돕기 시작했다고 하니 지금의 그의 노하우는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닌 듯하다.
그런 그녀가 한국에 온건 만 3년 여 전이다. 당시 중국에서 엄마처럼 따르던 이웃집 아주머니의 딸이 한국에서 식당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언니의 가게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돈도 벌겠다는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그러다 남편을 만났고, 언니에게 가게를 인수받아 열심히 땀 흘린 보답으로 지금의 식당을 일궈낼 수 있었다는데.
“계속해서 요리를 만들어 보고,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평가를 받아요. 그렇게 엄선된 요리들은 메뉴에 오르게 되는 거죠.”
손님들은 편안하고, 친절한 서비스는 물론 주인장의 손맛과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메뉴’ 때문에 이 집을 찾는다고 한다. 그 성원에 힘입어 매화씨도 쉬는 날도 없이 요리에 매달린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 중국인을 막론하고 그녀의 ‘양꼬치’ 요리는 과연 아시아 입맛을 사로잡았다고 할 수 있겠다.

내 가게 차리기 성공한 백양(중국)

“중국 손님들 수가 부쩍 줄어들고 있는 게 구정 같은 명절이 느껴져요.”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식품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백양 씨는 남편과의 결혼을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 처음 한국에 들어와서는 중국어 강사, 회사원 등으로 일했었는데, 언젠가는 자신의 가게를 차려보겠노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비교적 업무가 자유로운 자영업을 원했던 것 같다.
많은 중국인들이 일을 찾아 지방에 가거나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그녀. 그럼에도 그녀는 한국 생활에 정착하여 이제는 큰 불편함 없이 생활에 만족한다고 한다.
“한국은 안전해요. 그리고 대게 한국인들은 교육 수준과 준법 의식이 높아 기존 질서를 잘 지키는 것 같아요.”
특히나 이곳 시장 인근에서의 삶은 그녀와 가족들에게 매우 편리하다. 저렴하고 신선한 먹거리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은행이나 기타 관공서들이 밀집해 있어 좋다고 한다. 게다가 시장 내 시설도 점차 좋아지고, 보안 문제도 해결되고 있어 매우 만족한다는 그녀다. 

▲ <중국식품>을 운영하고 있는 백양(중국 출신). ⓒ조백현 기자

 
그녀들의 시작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저마다 언어 문제, 자녀 양육문제 등으로 아픈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삶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가족을 향한 사랑, 무엇보다도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소박함을 가졌다. 인터뷰 내내 떠나지 않던 수수한 그녀들의 미소는, 마치 말보다도 진하게 그 시간들을 설명하는 것만 같아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얼굴과 말투는 조금 다르지만 그들은 이미 ‘삶’을 살아간다. 그저 사람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그들은 한국인이다.

 

(인터뷰 기사)

아시아 입맛 사로잡은 ‘양꼬치’집 주방장

오산 중앙시장 옷가게 골목을 지나다보면 2층 높이에 번쩍이며 ‘양꼬치’라고 써진 눈에 띄는 간판이 있다. 주말만 되면 단골들이 북적이고 심지어 소문을 듣거나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어 수소문해 찾아오는 고객들도 여럿 있는 소위 ‘맛집’이다. 고객들을 사로잡은 손맛의 주인공은 중국에서 3년 전에 이주한 조선족 양매화(여 45)씨다. 아시아의 입맛을 재패한 그녀의 비결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Q. 한국에는 어떻게 오게 됐고, 처음 한국 생활은 어땠나.
A. 중국에서 엄마처럼 따르던 이웃 아주머니의 딸이 지금의 가게 자리에서 음식 장사를 하고 있었다. 어렵게 장사를 하고 있던 터라 한국에 가서 도와주라는 부탁에 식당일을 도우며 돈이나 벌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 여행 비자로 한국에 왔기 때문에 학원을 다니며 식당일도 도왔다. 얼마 뒤 한국에 온지 2달 만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인상도 선하고 욕심도 없는 남자였다. 비자 때문에 계속해서 학원을 다녔어야 했는데, 학원도 다니고 식당일도 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남편이 혼인 신고를 제안하게 된 것이다. 실제 결혼은 작년에 했지만 혼인 신고는 훨씬 이전에 한 셈이다. 물론 이주 초기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그럼에도 남편과 함께 성실하게 일을 했고 언니에게 가게를 인수 받아 내 가게를 차릴 수 있었다.

Q. 한국에 오기 전 생활은 어땠나.
A. 중국에서의 삶을 돌이켜 보면 참 생활력이 강했다. 가정 형편이 녹록치 않아 10살 이후부터 한인들이 사는 동네에서 장사를 하면서 살았다. 18살 때부터 식당일 보조 업무를 하다가 19살에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사실 배추장사며 반찬장사며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어렵게 살았지만 그럼에도 내 장사를 해보고 싶다는 꿈을 꿨던 것 같다. 아마 한국에 왔을 때도 가벼운 마음으로 왔지만 한편으로는 무언가는 하겠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Q. 한국말을 참 잘하는데, 배웠는가.
A. 아니다. 10살 이전에는 조선족 마을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어만 사용했었다. 이후 한인들이 주로 있는 곳에서 살다보니 한국어를 잠시 잊었었다. 다행히도 다시 한국에 왔을 때 예전에 감이 있어서 그런지 한국어를 쉽게 배웠던 것 같다. 또 장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더라.

Q. 손님들은 이 곳을 왜 찾는 것 같나.
A. 친절하고 편안하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음식이 맛있기 때문인 것 같다. 손님들은 대개 단골손님들이 많다. 가게가 보이지 않는 2층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사가 잘 되는 이유도 이 단골손님들 때문이다. 직접 여러 차례 요리를 만들어보고 주변 지인들이나 가족에게 평가를 받는다. 호평을 받은 메뉴들을 엄선해서 메뉴에 올리는데 그러나 보니 다른 집에는 없는 특별한 메뉴들도 많다. 여러 지인에게 물어보고 결정하는 메뉴이기 때문에 양념도 중국인이건 한국인이건 특별히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는 맛이다. 이제는 좀 쉬고 싶은데도 손님들이 주방장이 바뀌면 안 올 거라고 으름장을 놓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웃음)

박성경 시민 기자  mail@o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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