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봐!(허풍을 떤다) 기다리라니까(가식적인 것만 같다) 기다려야지(아무 말 못한다)
기다려!(명령한다) 기다리고, 기다려(여유를 부린다)그렇다 우린 기다린다. 기다림의 미학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몸에 베어있는 정서다. 은근과 끈기로, 한 올, 한 올 새기면서도 기다린다. 기다림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결과는 어떻게 될까? 쉽지 않다. 인생살이 곳곳에 기다림이 존재하고 있다. 웃고, 울고, 분노하고, 미워하며, 만나고 헤어지고, 우연 속에 필 연속에서 기다림이란 우물에 자기를 가둔다. 기다림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인간은 여전히 자신의 삶조차 통제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자기를 비웃더라도 세상을 기다린다. 기다려야 내 존재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존재는 숨 쉬는 것이다. 존재하는 한, 무엇인가를 기다릴 것이다.
에스트라공: 이제 무얼 하지?
블라드미르: 모르겠다.
에스트라공: 가지
블라드미르: 안돼
에스트라공: 왜?
블라디미르: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아!(절망적으로)
시상식에 불참 하였지만, 196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샤뮤엘베케트(1906~1989)의 작품이다. 줄거리도 사건도 없다. 기승전결도 논리적 인과관계도 없다. 나무 한그루 달랑 있는 황량한 무대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두 등장인물이 끝없이 고도를 기다리는 것이 전부다. 이들이 기다리는 고도가 무엇인지, 그것이 과연 올지, 온다면 언제 올지 그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다. 그래도 이들은 끊임없이 고도를 기다린다. 동어반복, 반대 말 하기, 욕지거리하기, 동문서답하기 등 마치 어릿광대 같다. 등장인물들은 남은 시간을 메우기 위해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신의 상징이든, 희망의 상징이든, 고도가 왔었느냐, 오지 않을 것이냐의 물음은 완전히 관객의 몫이다. 교도소의 재소자들은 자유가 고도라고 소리칠 것이고, 식민통치하의 나라는 조국을 되찾는 메시지가 될 것이고, 군사정권하의 80년대는 민주화의 꿈을 은유적으로 그린 것이라고 생각도 할 수 있었다. 이렇듯 이 작품은 보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의미를 부여 할 수 있는 연극이다. 실컷 웃어라, 그러나 집에 돌아가서 인생을 생각 하는 건 당신의 자유다.
21세초 대한민국의 부조리를 온 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국민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 부조리 없는 세상으로 가서 편히 쉬고 싶지 않을까? 자아가 상실되고 희망을 잃어버린 존재, 억압과 복종, 작고 메말라 빠진 소외된 인간의 쪼그라진 형상이 지금 이 사회에 넘실대고 있다면 어찌 하겠는가?
에스트라공: 자, 갈까?
블라디미르: 그래, 가지(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1막 끝 대사다. 2막이다
다음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
우리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현대인을 발가벗긴 작품이다. 무엇인가 벌어질 것 같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다시 소년이 등장한다.
소년: 고도 선생님께 뭐라고 전할까요?
블라디미르: 그분에게…….(머뭇거린다) 그분에게 나를 보았다고 전해라(머뭇거린다)
나를 보았다고(소년은 멈칫거리다가 퇴장 한다.)
더 이상 소년도 안 올 것이며 고도는 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기다림으로 열린 극은 기다림으로 닫힌다. 얼마나 기다렸던가? 일 년 내내 대선 정국이었다. 인물을 기다렸다. 유비쿼터스 시대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진 멋진 대통령을 기다렸다. 이게 웬일인가? 완전히 난립이다. 왜 기다렸는지, 괜히 화만 난다. 시간 낭비를 한 것만 같다. 정책도 비슷비슷, 느낌도 확 다가오지 못하고, BBK에 매달려 뜻 모를 이야기만 부조리하게 지껄이고 있는 게 아닌가.
5년 아니 10년을 기다렸다는 풍문이 떠돌았다. 잎도 없고, 꽃도 피지 않는 앙상한 한그루의 나무도 없다. 상큼한 소년도 오지 않는다. 올 거라는 기대조차도 할 수 없으니, 나 원 참, 기가 막히다. 차라리 산타크로스 할아버지를 기다릴까? 예수님, 부처님을 기다릴까. 의지가지 할 데가 없다. 유권자들을 방황하게 만든다. 누구 책임인가? 배우들 책임이다. 소화할 능력이 없을 것만 같다. 웃으세요. 인상에 남는게 없습니다. 비유나 은유를 사용하시죠. 근엄한 표정은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힘 빼세요. 공연이 끝나고 꽃다발을 받으려면 진실하게 연기하라. 있는 사실을 가짜로 만드는 것이 연극이 아니다. 있는 사실에 상상을 보태어 쉽고 재미있게 표현해야 한다. 있는 것을 그대로 무대에 내 놓으면 되는 것이다. 관객은 배우가 한 말을 들으며 상상으로 보고, 배우의 행동을 보며 상상으로 듣는다. 제발 역할에 책임을 느끼고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다오. 심장이 멎을 만큼의 비전을 제시하라.
12월 19일 막이 내립니다. 드디어 마지막 대사가 튀어 오른다.
블라디미르: 그런데? 우리 갈까?
에스트라공: 그래, 가세.(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논설위원 김 성 열
전경만 기자 jkmco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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