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인혜 오산시의원/국제관계학 박사

얼마 전 민주통합당 전국여성위원회 발족식에서 김한길 최고위원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김 최고위원은 고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문을 작성하면서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라는 제목으로 익숙한 오래된 팝송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예로 들어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행사장으로 들어가다가 갑자기 ‘그런데 왜 bridge 앞에 the가 안 붙었지?’ 라고 물으시더란 것이다.

이 지겨운 영어의 정관사는 도대체 무엇이길래 일국의 대통령까지도 이렇게 괴롭히는가? 우리는 미국의 어린애들도 모두 구별해 쓰는 정관사를 평생을 공부해도 모른다. 우리나라 영어문법책에는 다리 앞에는 the를 쓰지 않는다고 나온다. 김대통령은 다리이름 앞에 the를 쓴다고 외우신 모양이다. 어쨌든 정관사는 한자로 쓰면 ‘정관사(定冠詞)’이다. 정해진 곳에 쓰는 것이 정관사이다. 정하지 않은 것에 쓰는 것은 ‘부정관사(不定冠詞)’이다. 만약 ‘저기 앉아있는 까만 개가 맘에 든다’고 할 때는 정한 것이니 the dog이라고 써야한다. 그러나 ‘개란 동물은 충성스럽다’고 표현할 때는 a dog이 된다. 그 때는 모든 개들을 이르는 말이므로 不定冠詞 ‘a’를 쓰는 것이며 ‘한 마리의 개’라고 해석하지 않는다.

이처럼 간단하지만 우리는 중학교에 들어가면 정관사의 ‘용법’을 배운다. the는 서수 앞에 붙이고, 기수 앞에는 붙이지 않으며, 유일물 앞에 붙이고, 다리이름 앞에는 붙이지 않으며... 본질을 모른채 끝없이 틀린 사실을 외우니 지겨운 영어를 잘할 리 만무하지 않은가? 서수 앞에 붙인다면서 the 1st world war, the 2nd world war를 예로 들고, 3차 세계대전은 the가 아닌 a 3rd world war라고 쓰면서 (3차 세계대전은 예외다)라고 설명해 놓는다. 3차 세계대전에 the가 아닌 a가 붙은 이유는 이미 발생한 1, 2차 세계대전과는 달리 3차세계대전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어나지 않은 10차 세계대전도 역시 ‘a’를 써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두 개만 빼고 수 만 개가 예외인 것이 있는가? 또한 유일물 앞에 붙인다면서 ‘the sun’을 예로 들지만 sun이란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이니 sun은 유일물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sun 앞에 the를 쓴 이유는 우리가 말하는 바로 ‘그’ 태양이기 때문이니 이는 잘못된 영어문법이 과학적 상식까지 바꾸는 예라 하겠다. 사람을 설명하려면 사람의 특징을 설명하면 되는데 ‘눈이 있다, 코가 있다, 입이 있다, 귀가 있다...’ 수 백 개를 외워도 아직 사람인지 돼지인지 모르게 가르치는 영어교육! 어디 영어에만 해당되는 말이랴!

최근 전국적으로 혁신교육도시가 많이 생겼지만, 과연 교육의 본질이 혁신되고 있는지 겉모습만 최첨단으로 바뀌고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새는 무엇인가? 나는 동물이 새라고? 그럼 잠자리, 모기도 새인가? 날지 못하는 타조는 왜 새인가? 아, 새는 깃털이 있는 동물이구나, 새는 영어로 bird인데 깃털 feather가 있는 동물이며 깃털은 각질로 이루어져 있구나... 이렇게 새를 본질로 공부하며 외국어는 형식으로 저절로 따라오게 가르치는 교육. 이것이 혁신교육이다. 이런 식으로 공부했다면 그렇게 똑똑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다리 앞에 the를 붙이냐, 안 붙이냐를 고민하지 않고도 출중한 영어실력을 자랑했을 것이다.
 

최인혜  오산시의원/국제관계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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