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희 시민기자는 오산의 문화해설사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몇회에 걸쳐 시민들이 지역의 문화 유산을 좀더 친근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재밌는 이야기로 소개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첫 회는 오산·수원·화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조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 이상희 시민기자. ⓒ이상희

조선 정조 때 화산능(융릉)지기가 살고 있었습니다.

임금님이 화산능에 자주 납시시는 터라 능지기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투덜거리며 집을 나서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무슨 불만이 그리 많아 입이 댓 발은 나와 있누?”

“아이구, 보적사 스님이 아니십니까. 우리 임금님은 아버님 사랑이 워찌나 지극허신지 능참봉을 허니 거둥이 한 달에 스물아홉 번입니다요!”

“그런 말 하믄 못 쓰이. 임금님의 효성을 그렇게 귀찮게 여기다니...그게 될 말인가. 근데...”

“무슨, 할 말씀이라두...지는 언능 능에 가봐야 허는디..”

“어허, 자네한테 좋지 않은 일이 생기겠구먼”

스님의 말에 능지기는 정신이 화들짝 났습니다.

“지가 뭔 일이... 언능 말씀해 주세유. 지한테 뭔 일이 생기남유?”

한참동안 말을 삼키던 스님이 능지기의 얼굴을 근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습니다.

“내일 자네가 죽을 상이네”

“예? 지가 죽는다구유? 아이구, 이를 워쩐댜. 안즉 애덜두 어린디...우리 엄니는 또 워쩌구유?”

능지기는 내일 죽는다는 말에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스님, 지가 죽을 줄 아신다믄 살 방도두 아시겄네유. 알켜만 주슈. 그러믄 지가 뭐든 헐테니께. 지발....”

천기를 누설하는 일이라 한참을 망설이던 스님은 능지기의 애절한 부탁에 마음을 정한 듯 방도를 알려 주었습니다.

▲ 화성 융릉. ⓒ진길장

다음 날, 임금님은 아버지가 그리워 화산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빗줄기가 거세지더니 그칠 줄 모르고 내렸습니다.

할 수 없이 행궁으로 돌아온 임금님은 아무래도 아버지의 묘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하를 불러 화산능에 별 일이 없는지 살펴보고 오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너는 지금 이 길로 화산능으로 가거라. 가다가 먼저 능지기의 집에 들러 능지기가 집에 있는지 살펴보아라. 만약 집에 있으면 그 자리에서 목을 베어 가져와야 하느니라!”

추상같은 임금님의 명령에 신하는 빗줄기를 뚫고 화산으로 달려갔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난 능지기는 옷을 갖춰 입고 능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 종일 능 앞에 엎드려 있어야 하네. 그래야 자네가 살아.’

스님이 일러주신 방도대로 능지기는 능 앞에 다가가 엎드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고 천둥 번개가 치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어이구, 뭔 비가 이리도 온담. 혹시 이 비 맞구 죽는 거 아녀? 베락을 맞을 수두 있구...’

능지기는 능 앞에 엎드려 있으면서도 오만가지 잡념이 머리를 휘저어 놓았습니다.

‘아녀. 보적사 스님은 영험허니께 빈 말은 안 하셨을 거여. 그려. 그 분이 내 헌티 농을 허셨겄어? 그냥 이렇게 무작정 엎드려 있으믄 된다고 했으니께 그냥 오늘 하루만 이러구 있지 뭐. 이게 뭐 어렵다구...’

화산에 도착한 신하는 능지기의 집을 찾았습니다.

“능지기는 어디 갔는가?

“아, 예. 아침부텀 능으루 올라갔는디유? 뭔 일 있대유?”

근심어린 능지기 아내의 물음에 답도 안하고 신하는 능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능지기는 능 앞에 엎드려 꼼짝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 비를 몽땅 맞으면서도 일어설 줄을 모르는 능지기를 지켜보던 신하는 그 길로 임금님께 돌아와 본 것을 말씀 드렸습니다.

“전하, 능지기는 선대왕의 묘가 훼손될까 우려되어 아침부터 능에 올라갔다고 합니다. 제가 능에 올라가 보니 능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려 명복을 빌고 있는 것 같았사옵니다.”

“정말, 그러한가. 능지기가 이 비에도 능으로 올라가 아버지 묘를 보살피고 있었단 말이지.... 기특한지고, 기특한지고.... 게 있느냐, 능지기에게 상을 내리고 노고를 치하하고 오너라!”

유달리 효심이 깊었던 임금님은 크게 기뻐하며 능지기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상희 시민기자  mail@o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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