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이상희 시민기자. ⓒ이상희 | ||||
“사방이 탁 트였네. 경치 좋은데. 오길 잘 했다.”
얼마 전에 어머님을 떠나보낸 친구를 위로해주기 위해 나선 길이었지만 되레 내 기분이 더 좋아졌다.
우리는 성곽을 돌면서 정조의 이야기로 추위를 녹였다. 열 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정조의 마음은 어땠을까. ‘능참봉을 하니 거둥이 한 달에 스물아홉 번’이라며 투덜대던 능참봉의 말처럼 시시때때로 아버지를 찾아오던 정조였다. 자기가 죽으면 아버지 발아래에 묻어 달라고 유언까지 했던 임금이었다. 그렇게 아버지를 애틋하게 그리워하는 아들이 있어 사도세자는 외롭지 않았을 거 같다.
“근데, 사도세자는 왜 독산성에 오셨다니?”
정조가 아버지가 있는 화산을 향해 잔솔가지를 꺾어 향불을 피웠다는 데서 향로봉이라는 이름을 하나 더 갖게 됐다는 말에 친구는 호기심을 부렸다.
“사도세자는 종기에 늘 시달렸거든. 스트레스로 몸도 마음도 성할 때가 없었을 거라고 하더라구. 요즘이야 뭐, 병원 갈 것도 없이 연고 하나면 되지만 옛날에는 몸에 칼도 못 대게하고... 하여튼 종기 치료하러 온양온천에 가셨는데, 돌아가는 길에 저기 저 황구지천이 불어서 건너갈 수가 없었단다. 그래서 여기 독산성에 올라와 묵으셨대.”
친구는 잠시나마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정조는 여기 와서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겠다.”
“왜?”
“아버지가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창고를 열어서 쌀도 내어주고, 여기 군사들하고 활쏘기를 해서 4발이나 맞혔다고 했잖아. 만날 아버지에 대한 험담만 듣다가 칭송하는 소리를 들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어.”
“근데 왜 슬퍼?”
“화산의 기를 독산성이 가로막는다고 부셔버려야 한다고 했다며?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깊은 곳인데 왜 사람들은 부셔버리라고 했냐고. 아무리 임금님이라도 양반들이 벌떼같이 쏘아붙이면 들어줘야 하는 거 아냐? 그래서 이렇게 사람도 안 살고 폐허가 된 거 아니냐구.”
“흐흐. 그건 아냐. 지금 여기 사람이 안사는 건 일제 강점기 때 여기서 자꾸 횃불시위를 하니까 일본 경찰이 강제로 사람들을 내쫓은 거고, 오히려 그 상소 덕에 독산성이 보수가 됐는 걸”
“어떻게?”
“처음엔 정조도 산성을 없애야 하나 어쩌나 고민이 되셨겠지. 그래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고 여길 올라오신 거야. 저 황구지천을 건너 서문으로 말이지. 그런데 들어와서 아버지가 머물렀던 운주당이랑 활쏘기를 했다던 진남루에 오르며 생각이 달라지셨대. 임진왜란 때 적의 식량보급로였던 이 길목을 권율장군이 끊어서 승기를 잡았던 중요한 곳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버지의 칭송이 30년 넘게 흐르고 있었잖아. 그러니 당연히 보존하고 싶으셨겠지. 그래서 오히려 보수공사를 하라고 명령을 하셨다던데! 독산성을 수축할 때는 직접 고유문을 지어 내려 보내기도 하셨고...”
“고유문이 뭐냐?”
“무슨 큰일을 하기 전에 토지신께 고유제를 지내거든. 그때 이리이리 하오니 잘 봐주십사 하고 올리는 글이야. 고사 지낼 때 글을 읽잖아. 그런 거”
“아, 그렇구나. 정조는 이 독산성을 무지 사랑하셨구나! 아버지만큼 말이지.”
친구의 눈은 화산으로 향했다. 마음을 다해 부모를 아끼고 사랑한 그 마음을 읽었나 보다.
|
||||
| ▲ 눈덮인 독산성의 모습. ⓒ진길장 | ||||
까악, 까아악
난데없이 까마귀 한 마리가 나타나 세마대 쪽으로 날아갔다.
친구는 걸음을 멈추더니 한참동안이나 하늘을 쳐다보았다. 까마귀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데 무얼 보고 있나 싶었다.
“그거 아니? 우리 엄마 돌아가실 때도 뒷산에서 저렇게 까마귀가 울었다”
친구는 울고 있었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장승처럼 붙박여서 눈물만 쏟아내고 있었다. 서른에 부모님을 보낸 나를 보며 위안 삼으라고 했지만 오십을 발치에 둔 친구는 무너지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애잔한 마음에 시린 손을 잡아주는 내 마음도 눈물로 흥건해졌다.
“그냥 집에서 모실걸 그랬어. 난 저 까마귀만도 못한 거 같아. 까마귀는 늙은 어미한테 먹을 거를 물어다 주면서 평생을 함께 한다잖아[反哺之孝]. 그런데 나는 엄마가 정신줄을 놨다고 요양원에 버렸어”
“버리긴. 자주 찾아갔잖아. 너는 시어머니도 모시고 있었고. 어쩔 수 없었어.”
“아냐. 그래도 함께 있었어야 해. 우릴 알아보지는 못했어도 얼마나 외로우셨겠니? 한 달에 두어 번? 우린 자주라고 생각하면서 찾아갔는데 기다리는 사람은 얼마나 긴 시간이었을까 생각하면 미치도록 괴롭다.”
정말 모시는 것만이 효도였을까.
13년 동안 바로 곁에서 병수발을 들었던 나는 한동안 부모님 모신 것을 후회한 적이 있다.
큰 아이가 사고를 쳐서 학교로 불려가던 그날이었다. 부모를 잘 모시면 자식이 잘 된다는 말만 염주처럼 부여잡고 살았다. 하지만 아이의 방황 앞에서 염주의 실은 끊어지고 믿음은 사방으로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뭐가 부족해서 말썽이냐고 화를 내는 엄마에게 큰 아이는 눈을 치켜뜨고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맨날 아프다고... 귀찮다고 했잖어. 할머니 땜에 힘들어 죽겠는데 왜 자꾸 귀찮게 하느냐고!”
말문이 막혔다. 시간이 날 때마다 책도 읽어주고 인형도 만들어 주곤 했는데, 아이의 가슴에는 어쩌다 내뱉은 짜증이 대못으로 박혀 있었다니....
할머니 병수발을 하면서 늘 지치고 힘든 엄마가 안쓰러우면서도 불만스러웠던 아이의 마음을 나는 가늠조차 하지 못했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남편의 사소한 실수를 꼬투리 삼아 다투던 못난 모습을 아이가 충격으로 받아들였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어리니까 그렇게까지 민감하게 받아들일 거라고는 배려하지 않았으니까.
늘 바쁘고 지친 엄마였기에 아이는 고민이 있을 때마다 친구를 찾았고, 그렇게 친구한테 빠진 사춘기 아이는 친구의 부름을 무시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던 내게 종손 며느리라는 자리는 버거웠다. 더구나 거동을 못 하시는 어머님을 모시는 일은 내 체력의 한계를 넘어서곤 했다. 그런 내가 모든 일을 다 잘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내 일을 포기했고 내 욕심을 버렸다. 그래도 아이들한테만큼은 나름 최선을 다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나 보다. 그래서 부모님을 모신 것을 후회했던 것이다. 부모님한테는 부족한 며느리였고, 아이들한테는 못난 엄마였으니까.
그래서 양로원에 모셨으면 어땠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돈이 많이 들고 마음도 불편했겠지만 기운을 양분해서 더 현명하게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애착이 강하셨던 어머니한테는 그것이 최선의 효도였다. 누워 계시면서도 가끔 찾아오는 딸들과 부산하게 오가는 손자들을 보며 어머니는 흐뭇해하시곤 했다. 그런 어머니에게 집은 삶의 전부였을 것이다. 오롯한 정신으로 가족을 못 보고 사는 삶은 더욱 더 외로웠을 지도 모른다. 그 외로움을 덜어드린 것만도 다행이다 싶었을 때 나는 내 못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효(孝)란 무엇일까. 까마귀처럼 평생 모시는 것이 효일까. 아니면 가끔씩이라도 밝은 모습을 보여드리며 최선을 다 하는 것이 효일까.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누구는 마음의 짐을 덜길 원할 것이고 누구는 몸의 짐을 덜길 원할 것이다. 그들에게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결국,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가지 못한 길을 아쉬워하며 후회하는 것이 자식이니까.
세마대에 올라 싸온 도시락을 꺼내 놓았다. 잘 익은 홍시를 보며 친구는 차마 집어 들지를 못했다. 어머니가 생전에 좋아하시던 과일이란다.
“나는 네가 살아계실 때 한 번 더 찾아뵙고, 찾아갈 땐 늘 웃으라는 말이 뭔 말인지 몰랐어. 그래서 바쁘다는 핑계로 양로원 가는 날을 빼먹기도 하고, 엄마가 엉뚱한 소리를 하면 아프다는 걸 까맣게 잊고 화를 낼 때도 있었지 뭐니. 그런데 그런 것들이 대못이 돼서 내 가슴에 박히네. 뽑아내고 싶어도 뽑히지가 않어. 아마 저세상에 가서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뽑힐 거 같아.”
자리를 털며 일어나던 친구는 다소 밝아진 표정으로 속내를 내어놓았다.
“나 요즘 양로원에 봉사 간다. 엄마한테 갈 때마다 봉사자 분들이 나 대신 우리 엄마 돌봐주시더라구. 이젠 내가 갚으려고. ”
친구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옹달샘처럼 내 마음에 고이고, 홍시처럼 잘 익은 태양은 독산성 소나무에 걸려 내려가라 재촉하고 있었다.
[수필] 이상희 시민기자 오산문인협회 회원
<저작권자 © 뉴스타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산시정신건강복지센터, 오산시의사회와 업무협약 진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