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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은주 시민기자. ⓒ조은주 | ||||
내가 결혼한 지 어느 덧 이십 삼년이 지났다. 결혼할 때만 해도 집들이를 집에서 하는 것은 당연지사였고 백일잔치, 돌잔치도 대부분 집에서 하는 것이 보통의 가정에서 있었던 흔한 일이었다. 그러다 둘째가 태어나고 돌잔치를 음식점에서 치렀다. 그 때 우리 가족은 12평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집이 비좁아 할 수 없이 음식점에서 돌잔치를 하며 손님들에게 무척 미안했다. 친척들과 친구들을 한꺼번에 집으로 초대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음식점에서 돌잔치를 치룬 일이 정말 엊그제 같은데 그 둘째가 벌써 스무 살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어쩌면 한 치도 틀리지 않는지, 옛 선조들의 말씀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요즘은 집들이는 당연하고 친척이나 가까운 친구, 혹은 가족의 방문에도 집에서 음식을 장만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아니, 가족들마저 집에 모여 식탁에서 식사하는 것보다 외식을 밥 먹듯이 하는 세상이 되었다.
집에서 하던 친목 모임도 이미 집을 떠난 지 오래이다. 혹여 점심시간에 음식점에 가서 점심을 먹을라치면 음식점 안이 사람들로 북적여 빈자리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모두들 어느 어느 모임의 회원들이다. 대부분 주부들이 많다. 모두 음식을 만들 줄 아는 결혼한 주부들이다. 경제가 어렵고 어쩌고 하는 것은 모두 다른 나라 이야기인 것 같다. 결혼한 주부들은 외식하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느냐고 따진다면 할 말이 없다. 주부들은 매일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애들 키우고 살림만 해야 하느냐고, 매일 살림하다가 겨우 한두 번 모임에 나가 외식하는데 그것도 안 되냐고, 목소리 높여 따진다면 정말 단 한 마디도 대꾸할 말이 없다. 지금 다른 주부들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모습이기에 그렇다.
외식을 하는 일이 가뭄에 콩 나듯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자장면이나 통닭을 밥 먹듯 식탁에 올리는 시절이 되었다. 대신 집에서 지은 따뜻한 밥과 국과 신선한 반찬을 대접받는 일은 정말 귀한 일이 되고 말았다. 지인을 초대해 직접 만든 음식을 대접하는 일도 지인의 집에 초대받아 가 본 일도 가마득해질 무렵 초대받은 그분의 집들이는 신선했다.
요즘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은 보통 어느 음식점이다. 혹여 집으로 찾아간다 해도 전화로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일은 찾아간 손님이 주인을 생각해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분위기가 된지 오래이다.
결혼 후 남편 친구들 모임을 집에서 하느라 음식을 손수 장만하여 대접하던 때가 있었다. 부족한 살림으로 장을 보고 어린 아이들을 돌보며 음식을 만들고 차리고 치우고 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을 때 내게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던 남편의 모습이 아주 오래된 전생처럼 희미한 기억이 되었다. 남편 친구들의 얼굴도 이미 잊혀진지 오래이다.
주말에 아들이 집에 왔다. 학교 때문에 떨어져 사는 아들이 적은 용돈으로 세끼 밥을 제대로 챙겨 먹으며 살고 있을 리가 만무하다. 오랜만에 온 아들에게 겨우 몇 끼니인데도 밥을 차려주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집에 오더라도 친구를 만나러 나가거나, 아니면 내가 다른 일정이 생기거나 한다. 실은 그건 핑계고 같이 살고 있는 딸에게 엄마의 따뜻한 밥을 먹이는 일도 가뭄에 콩 나듯 하고 있다. 요단강 건너 저승으로 간 영혼처럼 어느 새 엄마노릇도 아내노릇도 가마득하게 멀어졌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 스스로 생각해보니 부끄러운 마음이 물밀듯 밀려든다.
음식점에서 아들과 함께 먹는 음식이 맛있지 않고 그 시간이 마냥 행복하지 않다. 깡마른 아들한테 미안하고 안쓰럽고 얼굴 붉어지니 말이다. 이제 때가 된 것이다. 칠십이 한참 넘은 친정어머니께서 김치를 만들어 택배로 부쳐주시는, 그 마음을 알고도 모른 척 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모른척하고 있으면 안 되는 때가 온 것일게다.
얼굴색이 비루먹은 말처럼 윤기가 없는 아들을 보고 안쓰러워하기만 한다면 그건 엄마가 아니다. 이제 엄마의 자리를 다시 찾아가고 싶다. 찬이 푸짐하지 않더라도 따뜻한 밥과 국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이제 중년에 접어든 나는 차츰 마음도 시간도 여유로워 지는데 한참 청년기를 보내는 아들은 더욱 바빠지고 있다. 사람의 일에 사람이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때가 과연 얼마나 될까?
집 밥이 따뜻한 것은 물리적인 온도에 있지 않다. 장을 보기 전에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먼저이고 음식을 만들기 전에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먼저이고 식탁에 차리기 전에 오래 오래 함께하고픈 간절한 마음이 먼저 있기 때문이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바쁜 아이들 탓에 마음이 쓸쓸해졌고 그 덕에 늙으신 부모님 마음을 헤아려 보게 되었다. 부모님 생각을 하면 죄송스러운 마음에 눈물 콧물이 앞서지만 멀리 떨어져 사시는 늙으신 부모님께 며칠이나마 따뜻한 진지를 대접해 드리러 가야겠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고 사람을 초대하고 대접하고 치우고 하는 일들이 정말 너무 어렵고 힘들고 지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은 유수와 같아서 그 시절이 흘러가고 잊혀 지더니, 이제 아련하게 그리워지는 때가 다시 돌아왔나 보다.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수도 있겠다. 사랑은 언제 어디에 있어도, 누가 누구에게 주어도 따뜻하다. 날씨가 추워졌다. 입동이 지난 지 한참 되었으니 절기상 겨울이고 겨울은 당연히 추워야 제맛이다. 다만, 우리들 사람의 마음만은 따뜻한 사랑이 가득차고도 넘쳤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을 가져본다.
조은주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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