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호인 포스터. ⓒ물향기신문

흑백사진 속의 8~90년대를 흔들었던 노동자 대파업과 정부의 서슬 퍼런 진압 장면이 2013년 세모에 철도노조 파업과 민주노총 사무실 진압 장면과 겹쳐 보이던 그날. 지인들과 영화관 의자 깊숙이 몸을 파묻고 특별한 80년대로 여행을 떠났다. 배우 송강호가 연기한 영화 ‘변호인’은 7,80년대를 살아온 나이 지긋한 중년에게는 ‘겨울공화국’을 견뎌왔던 시절이 바로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되살아나게 한다. 영화는 20-30대 젊은이들에게 강자에겐 엄격하고, 약자에겐 따뜻한 인간적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해서, 2013년 세모에 터져 나온 철도노조의 민영화 반대 파업과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신드롬을 타고 점점 더 주목을 받아 왔다.

‘변호인’은 변호사 송우석(송강호 분)의 성장 영화이다.
80년대 초 부산을 배경으로 돈 없고, 빽 없고, 가방끈도 짧은 지극히 세속적인 세무 변호사 송우석(송강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뜻하지 않게 맡게 된 공안사건 변호와 이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부림사건을 소재로 했다. 부림사건은 1981년 9월 전두환 신군부 정권 초기에 발생한 부산의 학림사건을 줄여 칭하는 말이다. 이 사건은 사회과학 모임에 참여한 학생, 교사, 회사원 22명을 불법 체포해 불법으로 감금하고 고문한 사건으로, 신군부가 조작한 공안 사건이다. 당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변호를 맡았다. 송강호가 밝힌 대로 ‘헌정영화’는 아니나 영화를 보면 누군가를 생각나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송우석은 부동산 등기부터 세금 자문까지 남들이 뭐라 하든 탁월한 사업 수완으로 승승장구하며 부산에서 제일 잘 나가고 돈 잘 버는 변호사로 이름을 날린다. 대기업의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으며 전국구 변호사 데뷔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우연히 7년 전 밥값 신세를 지며 정을 쌓은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가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국밥집 아줌마 순애(김영애)의 간절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어 구치소 면회만이라도 도와주겠다고 나선 송 변호사. 하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진우의 믿지 못할 모습에 충격을 받은 송 변호사는 모두가 회피하기 바빴던 사건의 변호를 맡기로 결심한다. 변호를 맡으면서 국가의 폭력을 목도하게 되고, 국가 폭력에 맞서 인권을 지키기 위해 싸워 나가는 시민운동가로 성장해 나간다.

이 영화의 소재가 되었던 부림사건이 발생했던 그때 그 시절은 영화만큼이나 잔혹하고 공포스러운 시절이었다. 삼청교육대, 학원 녹화사업, 경찰의 대학 상주, 쟁의 현장에 대한 일방적인 공권력 투입 등등. 일제시대나 유신시대와 다를 바 없는 그야말로 ‘경찰국가’의 풍경이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지독한 공포와 억압이 커질수록 자유를 꿈꾸었던 지식인과 학생의 분노는 커져갔고, 저항은 국민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 7년 후 군부독재가 종식됐다.

사실 이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린 것은 고문 경관 차동영(곽도원분)의 역할이 크다. 짧은 시간에 그 시절 안기부(현재 국가정보원)를 위시한 권력이 공안사건을 기획해내고 사법부마저 쥐락 펴락한 전 메커니즘을 연기로서 강렬하게 보여주었다. 잔인한 가해자이면서도 그 또한 역사의 희생자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주목받지 못한 또 하나의 장면은 피의자에 대한 고문 사실을 폭로한 군의관 윤성두(심희섭분) 중위다. 휴가 기간에 송 변호사의 재판 증인으로 나서서 고문 사실을 증언하자, 곧바로 헌병에 의해 ‘탈영 장교’로 체포되어 압송된다. 그는 어찌 되었을까? 그 시절 군인이라는 특수 신분에서 증언을 했다면, 그가 당했을 고초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윤 중위는 만들어진 허구 인물이기는 하지만 윤 중위를 보면서 보안사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윤석양 이병과 군부대 내 부정선거를 폭로한 이지문 중위, 국정원의 댓글 수사과장인 권은희 경정,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해 기소했던 윤석렬 여주지청장이 오버랩되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로운 공기는 그 시절 송우석이나 진우, 윤 중위와 같은 사람들의 저항과 희생이 있었기에 만들어진 값진 선물일 것이다. 그러나 연말연시에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 후퇴를 목도하게 되면서 새삼 영화 ‘변호인’을 주목하고 있다. 영화가 개봉된 지 3주가 지난 지금 벌써 800만 명의 관객들이 다녀갔다.

남상구 시민기자  mail@o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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