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2인자 장성택 처형이 몰고 온 충격
지난해 12월 12일 북한 2인자인 장성택이 ‘양봉음위(陽奉陰違ㆍ앞에선 받들고, 뒤로는 딴마음을 품음)의 종파주의자’라는 희한한 죄목 등으로 체포된 지 4일 만에 처형되었다. 문명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전격적인 장성택 처형은 그 자체로 전 세계인들에게 경악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는 북한 체제의 봉건성과 공포정치의 전형을 보였줬다는 것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에게는 북한 김정은 체제 불안전성이 증폭된 것으로 받아들여져 남북 관계와 동북아 정세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끔 만든 사건이었다.

급변사태 가능성
장성택 처형 이후 정부나 주변국들이 급변사태에 대한 보도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처형 직후 미·중간에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한 양국간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중국군은 1월 13일 백두산 인근에서 10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동계훈련을 실시하여 북한을 긴장케 만들었다. 1월 들어서는 한·미간 ‘북 정세 협의 강화 체제’를 본격 가동키로 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북한의 급변사태는 남쪽에 대한 도발로 이어질 거란 우려와도 일맥상통한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지난해 12월 17일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내년 1월 하순에서 3월 초순 사이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 내부의 불안 요소와 군부의 과도한 충성 경쟁으로 인한 오판이 있을 수 있고 그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도발이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남쪽도 2월 말~3월 초 키리졸브 한-미 합동군사 훈련이 예정돼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조선일보가 1월 1일 신년기획으로 통일에 대한 환상적인 기대효과를 기사로 쏟아놓으며 관심을 환기시킨 가운데 1월 6일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발언한 것이다. 이는 지난해 12월 21일 남재진 국정원장이 “2015년에는 자유대한민국 체제로 조국이 통일돼 있을 것”이라며 “조국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시키기 위해 다 같이 죽자, 한 점도 거리낌 없이 다 같이 죽자”고 말한 것처럼 보수세력 일각에서 꾸준히 꿈꿔온 흡수통일에 대한 생각과 결합되어 있다는 데 위험성이 있다.

격동하는 동북아 정세
지난해 말 동북아 정세는 방공식별구역(ADIZ)을 둘러싼 갈등으로 요동쳤다. 중국의 일방적인 CADIZ(중국 방공식별구역) 선포에 한국, 미국, 일본이 반발하면서 동북아 안보 불안이 가중된 것이다. 지난달 23일 중국이 동중국해에 CADIZ를 선포하자 우리 정부는 해당 구역이 KADIZ(한국 방공식별구역)와 중첩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미국은 26일 B-52 폭격기 두 대를 중국 방공식별구역에 출격시켜 훈련 비행을 하는 등 노골적으로 반발했다. 이런 상황에서 KADIZ에 이어도가 포함되지 않은 게 논란이 되자 정부는 KADIZ 확대로 방침을 정했다. 이달 8일 정부는 62년 만에 KADIZ 확대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이어도는 KADIZ 범위 안으로 들어오게 됐다. 방공식별구역 논란은 일본 재무장의 빌미가 되거나 미·중 간 동북아 패권 경쟁의 도화선이 될 수 있어 주목된다. 중국의 팽창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일의 견제가 가속화하는 가운데 중·일간 금어도(일본명 센카쿠 열도) 분쟁,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등과 맞물려 긴장이 점증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북한의 급변사태는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남북 관계의 긴장 계속되고 북한의 중국 예속 가속화
남북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기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으로 남북경협이 탄력을 받아 점진적으로 남한 경제권으로 결합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북한 통일은 도둑같이 온다”며 ‘압박정책’으로 일관하면서 남북 관계는 경색되고 긴장이 고조되었다. 이 기조는 박근혜 정부도 그대로 승계되고 있다. 이 과정 동안 북한은 김정일 시대에서 더욱 불안정한 김정은 시대로 접어들면서 급기야 오늘에 이르렀다. 북한은 이러한 남북 관계, 대미 관계 속에서 활로를 모색하고자 중국에 경제적으로 더 의존적이 되어 가고 있다.

급변사태는 한반도 재앙
이렇게 격동하는 한반도 정세와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급변사태의 발생은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이미 핵무기를 개발한 북한에서 급변사태의 발생은 한반도를 재앙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불안감과 공포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북한에서의 급변사태는 주변 강대국들의 북한에 대한 개입을 불러올 것이고, 북한의 남한으로의 흡수통일보다는 해방 후처럼 강대국들의 신탁통치로 귀결될 가능성도 있다. 이라크나 리비아의 현재가 북한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
거기다가 우리의 앞길조차 보이지 않는데, 체제 전복으로 인한 대규모 피난민의 발생까지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큰 짐이다. 지금도 실업률이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상태에서 노동자들과 서민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에 이어 북한의 난민들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남북 관계 관점, 통일에서 평화로 발상을 전환해야
이제는 통일문제나 남북문제를 감성적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냉정하게 우리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미 분단 상황이 60년이 지난 상태에서 혈연이나 동질성을 강조하면 할수록 역설적이게도 통일의 필연성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고, 남북 관계를 정략적으로 이용할 개연성만이 커진다. 역사가 그러했다. 오히려 통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인정한 순간 그저 다른 나라로 인정하고 평화를 모색하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함께 해야 할 이웃나라로 정립될지도 모른다. 미-중관계, 미-베트남, 한-베트남관계가 미래의 남북 관계가 될 수 있다. 이럴 경우 증오와 반목에서 벗어나고 오로지 국제관계의 냉정한 이해관계만이 남을 것이고, 그 사이에서 새로운 평화와 공존의 싹이 터 나올 것이다. 그리하여 서서히 광범위한 경제협력을 통한 공동의 이해 속에서 경제공동체로서의 길을 모색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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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석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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