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린 포스터. ⓒ박성경

문학이든 영화이든 작품 내부에는 언제나 알레고리 컬한 요소들이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하나의 기표가 의미하고 있는 바에 대해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하나의 기의만을 얘기한다면 그 작품은 명료할지는 모르나 지속적인 감동이 없고 연구 가치가 떨어진다. Symbol 안에 얼마나 다양한 의미의 가능성을 담느냐와 그것이 얼마나 강력하게 독자와 관객에게 파급력을 가하게 하는가가 작가 혹은 연출자의 역량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역린>의 이재규 감독은 어느 정도 역량을 발휘한 듯하다. 역사물이라 함은 사실에 기반을 둔 탄탄한 배경과 인물들이 있음이 장점이지만, 반전을 포함한 창의적 시도가 다소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 감독은 모두가 알고 있는 이 결말에 어설픈 반전을 시도하는 대신 독자들에게 다양한 해석거리를 숙제로 안겨주었다.

영화는 영화의 시작부터 진득하게 두 가지의 대립 점을 보여준다. 오히려 감독은 ‘너의 가치도 나의 가치도 옳다’는 왜곡된 가치 상대주의와 개인주의, 자유주의의 틀을 과감하게 내려놓았다. 결코 섞일 수 없는 배타적인 두 지점을 현빈(정조 역)과 조재현(광백 역)이 맡았다. 이 두 인물이 다소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감독이 보다 명료한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그 두 지점을 불순물이 없는 온전한 것들로 연출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선한 쪽은 정말 선하고, 악한 쪽은 이유와 사연이 필요 없는 본질적 악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두 지점을 둘러싸고 악의 세력에 의해 희생되는 안타까운 두 형제와 그와 얽힌 인물들, 함께 악을 꾸려나가는 한국형 바리새인 ‘노론’들, 선한 것과 악한 것의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감독은 인류사가 보여줬던 선과 악의 대립, 어떻게 선이 승리했는가(물론 대부분은 그렇지 못할지라도)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요구되었는가를 영화 한 편에 짜임새있게 담았다. 원칙과 정(正)도가 없는 악에게서 선이 승리하는 방법은 오로지 선한 양심으로 끊임없이 인애하며 옳은 도를 지켜나가는 것이라는 감독의 메시지에 우리는 짐짓 성경의 도에서 말하는 예수그리스도의 어린양 제사를 떠올리기도 한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나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는 숨이 막히는 하루의 시간을 오히려 덤덤하고 깊은 서사적 흐름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오로지 감독은 마지막까지 희망의 고삐를 내려놓지 않는다.
쉬지 않고 달려온 두 지점의 대립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고 아마 인류사가 끝이 날 때까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물론 승리는 정해져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론을 뛰어넘는 실제를 살아가며 옳은 것들을 붙들고 있는 자들이 있기에, 결코 거스르는 자들의 세상은 오지 않았다고 영화는 말한다. 옳은 것, 선한 것, 그리고 그것을 칼이 아닌 마음으로 지켜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최선을 다하려는 자들은 아직 있다. 고로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어둠에 잠식되지 않는다. 용의 가슴에 거꾸로 난 비늘이라는 뜻의 역린(逆鱗)은 건드리면 반드시 살해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선한 것이 가진 가장 절대적인 힘은 ‘선함’이다. 그리고 그 힘의 발휘의 가장 절대적인 원인은 ‘참된 것에 대한 거스름’이다. 진정한 인애와 참음은 진정한 강함에서 나온다. 그것이 감독이 이 시대에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다. 그리고 감독은 마침내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영화에 투영된 이 시대를 보게 한다.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이 대립 속에서 칼을 들 것인지 선한 가치로 무장한 중용의 검을 들 것인지를 선택케 한다.

뿐만 아니다. 감독은 우리로 하여금 이 시대에 참된 것, 옳은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고찰하고 정의내리길 원한다고 말한다. 분명한 건 시대의 대세인 가치와 참된 것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자, 잘 짜인 영화 한 편이 우리의 인생관에 관여하기 시작했으며 계속해서 자극하고 있다. 감독은 이렇듯 작품 내외에서의 두 번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치자, 이제 묻겠다. 당신은 어떠한가.

박성경 시민기자  mail@o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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