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휴가는 필리핀으로 의료봉사활동을 다녀오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7월 25일부터 8월 1일까지 1주일간의 기간으로 작년 추석 연휴 때 다녀온 필리핀 남쪽에 위치한 섬의 지방도시 iloilo city로 의료봉사를 다녀왔다.

천주교 수원교구 평택대리구청의 사회복음화국장 이재웅 지도신부님을 단장으로 소아과, 치과 그리고 약국의 진료 팀이 구성되었고 자원봉사자 5명을 포함하여 총 9명의 의료봉사단이 꾸려졌다. 네 차례의 사전 준비모임을 통하여 진료에 필요한 기구, 장비, 약품들을 준비 점검하고 자원봉사자들의 역할도 구분하여 정하였다.

필리핀 도착

7월 25일 오전 11시가 조금 넘어 마닐라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iloilo city로 가기 위해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했지만 출발시간 동안 8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작년에는 공항 대기실에서 무작정 기다렸지만, 이번에는 마닐라에 계신 레이 신부님의 배려로 마닐라 시내에서 점심을 하고 마닐라 대성당과 성아우구스티노 성당 2곳을 방문하는 호사를 누리기도 하였다.

저녁 8시가 넘어 iloilo city 공항에 도착했다. 현지에 계신 수녀님의 마중으로 우리는 수월하게 수녀원에 도착하여 짐을 풀었다. 수녀원에는 국적이 다른 3분의 수녀님(벨기에, 프랑스, 대한민국)이 계신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내일부터 있을 의료봉사활동의 장소, 내용, 일정 등에 대해 설명을 듣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새벽 4시부터 시작된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잠을 청할 수가 있었다.

▲ 필리핀 의료 봉사 중인 권혁용 원장. ⓒ권혁용

의료봉사 활동

의료봉사 장소는 santo nino norte arevalo baragay란 곳이었다. 필리핀 iloilo city에 파견 나가 있는 천사의모후 수녀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곳으로 5천여 명이 사는 바닷가 마을이다. 수녀원에서 지프니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20분이 걸리는 곳이다.

매일 아침 5시 30분에 기상하여 일과는 시작됐다. 미사를 마치고 아침 식사를 한 후에 지프니를 타고 출발했다. 마을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 마을의 봉사자들이 접수를 담당하여 이른 아침부터 치과, 소아과, 내과(프랑스 수녀님이 의사임)로 구분하여 차례로 번호표가 배분됐다.
나의 첫 환자는 10대의 꼬마 여자아이였다. 영구치 어금니가 아프다며 치아를 빼고 싶다고 한다. 치아 상태를 보니 빼지 않고도 치료가 가능한 상태였다. 하지만 계속 빼달란다. 오랜 시간 설득하여 치료로 마무리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계속 빼달라고 고집을 피운 이유가 다음에 다시 아프면 돈이 없어 치과 치료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열약한 의료 환경과 경제적 여건으로 의료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그곳의 현실에 마음이 무겁고 안타까웠다. 새삼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가 얼마나 좋은 제도인지 느끼게 된다.

치과는 하루 40여 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환자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통증이 있는 치아는 치료하고, 충치가 있는 치아는 충천하고, 흔들리는 치아는 이를 뽑는 3가지 형태의 진료가 대부분이었다. 진료를 마친 환자에게 구강 위생관리를 잘하라는 의미로 칫솔을 나눠주었다. 치과는 4일 동안 170명 정도의 환자를 진료했고 새로 마련한 이동용 치과 진료장비가 있어 양질의 진료를 할 수 있었다. 소아과와 내과는 하루 평균 130여 명으로 4일간 500명 넘게 진료를 했다고 한다. 하루의 마무리는 이동이 어려운 환자를 위해 가정을 직접 방문하여 진료했다. 우기로 매일 같이 비가 쏟아졌지만, 우리의 활동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 필료핀 의료 자원 봉사자들이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다. ⓒ권혁용

4일간의 진료 중에도 간간이 아이들에게 즉석 사진기를 이용해 사진을 찍어 주는 시간이 있었지만, 마지막 하루는 온전히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야외 체육관에는 400여 명의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현지 대학생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게임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음악에 맞춰 춤도 추고, 인원에 맞춰 짝짓기 게임도 하고, 신발 던지기 게임도 했다. 신발 던지기 게임은 인원이 너무 많은 관계로 나이별로 나오게 하여 진행하였는데 신발을 바구니 안으로 정확하게 던진 아이는 불과 4명뿐이었다. 그들에게는 상품도 주었다. 처음에는 부끄러움에 참여를 주저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재미있는 게임이 진행되면서 모두가 즐겁게 참여하게 되었다.

게임 프로그램을 모두 마치고 햄버거와 음료수를 나눠주었다. 모자라면 어떻게 할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모자람 없이 모든 아이에게 골고루 나눠줄 수 있었다.

나눔은 비워진 마음을 채운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인가를 채울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주머니가 있다고 한다.

나는 이번 여름휴가를 통해 마음 주머니에 무엇을 채우고 왔나 생각해본다. 그것은 바로 행복이었다. 1주일간 의료봉사를 통해 만난 그들이 내 마음 속에 있는 주머니에 행복을 가득 채워주었다. 지금 내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하다. 직접 손을 통해 전달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소리 없이 나도 모르게 행복을 가득 채워주었다.

마음속 주머니에 가득 채워진 것들은 비워야 한다. 돈이든, 권력이든, 명예든, 행복이든, 그것이 무엇이든지 채워짐과 동시에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눠야 한다. 이미 가득 차있어 새로운 것들이 비집고 들어올 공간이 없어 다시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비우면 다시 채워진다는 진리를 이번 여름휴가 동안 마음속 깊이 새겨본다.

▲ 필리핀 의료 봉사에 나선 자원 봉사자들. ⓒ권혁용

권혁용  열린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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