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민순 오산시문학회 사무국장. ⓒ박민순

김샜다 씨(K회사 영업사원)는 자가용에 시동을 걸다가 갑자기 귀걸이를 생각해냈다.

하필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 계단을 이용해 내려왔던 15층을 다시 걸어서 올라가게 되었다.

아니 걸어서가 아니라 뛰어서도 아니고 날아간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오늘은 모든 것을 투자(?)해서 어렵사리 사귀게 된(속된 말로 꼬신) 유별나 양(K회사 거래처 경리사원) 과 6시 30분에 첫 만남(데이트)을 갖기로 약속했다.

미스 유를 짝사랑하며 지새운 밤이 며칠이던가!

남자의 그 알량한 자존심 다 팽개치고(속된 말로 간 쓸개까지 다 빼놓고) 미스 유 앞에서 무릎까지 꿇고 사정하여 얻어낸 첫 데이트 약속이다.

미스 유의 호감을 사기 위하여 어제 시내 악세사리 가게를 전부 뒤져 제일 맘에 든 것으로 사서는 TV 위에 놓고 그냥 내려온 것이다.

"젠장 오늘 같은 축복받은 날에 엘리베이터가 고장 날 게 뭐람?"

투덜거리며 숨을 헐떡이며 15층 문 앞에 도착하여 문을 열려고 보니 이럴 수가?

아파트 키를 차에다 꽂은 채 급한 마음에 그냥 올라온 것이 아닌가.

어쩌랴. 올라온 계단을 다시 내려갈 수밖에.

한달음에 뛰어 내려와 차 키와 같이 있는 아파트 키 뭉치를 꺼내 다시 15층으로 올라갔다.

땀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다.

재빨리 문을 열고 들어가 귀걸이를 찾는데 젠장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야 말이지.

책장서랍, 옷장 서랍, 심지어 싱크대 서랍까지 이곳저곳을 벌집 쑤시듯 열어 헤집어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땀이 비 오듯 했다.

웃옷(양복 상의)을 벗어 놓고 집안을 잘 살펴보다가 드디어 귀걸이를 찾아냈다.

"TV 위에 놓고 온 방을 다 뒤졌으니. 어이구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이러다가 약속 시간 늦겠는데."

김샜다 씨는 부랴부랴 아파트를 나와 15층 계단을 엎어질 듯 넘어질 듯 뛰어 내려왔다.

"어휴 힘들어. 그나저나 빨리 가야 하는데."

차 문을 열고 시동을 걸고 막 출발하면서 차 안에 있는 룸미러에 자신의 모습을 비쳐 보았다.

"이런 제길 헐! 웃옷을 벗어놓고 왔잖아!"

정말로 짜증나는 일이었다.

귀걸이를 찾을 때 거실 안에 벗어놓은 웃옷을 안 입고 내려온 것이다.

다시 15층으로 올라가야 하는 데 숨은 턱밑까지 차있고 몸은 땀으로 다 젖어있고 눈에서는 별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유별나 양을 만난다는 기분 좋은 설렘이 그를 15층까지 다시 줄달음치게 했다.

시계를 보니 약속시각은 이미 지나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거실 바닥에 있는 웃옷을 얼른 주워 입고는 15층을 다시 내려왔다.

시동을 걸고 약속 장소로 달리기 시작했다. 용감무쌍(?)하게도 웬만한 신호등은 요령껏 무시했지만, 평상시 저승사자 같던 교통순경은 다행히도 보이지 않았다.

무사히 약속한 카페에 도착했을 때, 약속 시각은 1시간 20분이나 지나 있었다.

카페 안을 두루 살펴보았지만 어느 구석에도 미스 유는 보이지 않았다.

"제길 헐!" 투덜대며 카운터 쪽으로 갔다.

"혹시 한 아가씨가 손님 기다리다 그냥 가지 않았습니까?"

카운터에서 조그만 쪽지를 건네주었다.

얼른 펼쳐보았다.

"김샜다 씨! 첫 만남부터 1시간 이상 기다려도 안 나타나고, 나와 장난하는 겁니까? 정말 김새네."

김샜다 씨는 뒤통수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모든 것을 투자해서 어렵사리 이루어낸 첫 약속이 이렇게 허무하게 물거품, 아니 도로아미타불이 될 줄이야.'

허망함과 씁쓸함으로 미스 유에게 주려고 샀던 귀걸이가 원망스러워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러나 귀걸이는 손에 잡히지 않았다.

웃옷을 입고 나오면서 거실 바닥에다 그냥 두고 온 것 같았다.

"으이그, 그놈의 귀걸이! 이놈의 건망증!"

김샜다 씨는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박민순  시인, 수필가/오산시문학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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