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살고 있는 아줌마가 동시대를 사는 아저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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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죽을 때까지 예뻐야 할 의무가 있어.” 라고 나의 남편이 언젠가 말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많은 여성이 당연히 할 일을 한다는 식으로 성형외과를, 피부과를 드나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남편의 말이 진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예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과 돈을 아끼지 않는 그녀들을 보면서 그것이 본능인지, 아니면 사회의 문화와 가치관이 그렇게 만들었는지를 생각하면서 어쩜 둘 다가 맞을 거라는 결론을 내린다.

누구나 보기에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흠모한다. 요즘 한창인 목련과 벚꽃을 보면 본능적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설레기까지 한다. 사람이라고 뭐 다를 게 있을까 마는 꽃들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요즘 멋진 여성이라는 소리를 들으려면 당연히 얼굴이 예뻐야 하고, 날씬한 몸매도 가져야 하며, 능력도 있어야 한다.

더군다나 기혼 여성이라면 이 모든 것에 더해서 살림은 물론 아이도 똑소리 나게 키워야 하고, 나이보다 젊게 보이는 외모를 유지해야 한다. 생각해보면 요즘 여성들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성상위시대니 뭐니 하면서 이런 것들은 왜 남자한테 시켜, 스스로 해야지.” 무거운 짐을 좀 옮겨달라는 부탁에 내 직장 상사가 한 말이다. 그는 그와 비슷한 말을 비롯하여 여성의 신체까지 들먹이는, 한 층 수위가 높은 말들도 종종 뱉어내고 있고 의도한 바 없이 나는 종종 듣고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남자로서 날로 달라져 가는 여성들의 권익에 분노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여성들을 조롱하며 비웃는 것 같기도 한 묘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나는 그 상사 앞에서 여성상위시대를 부르짖은 적도 없었거니와 비슷한 말도 언급해 본 일이 없다. 물론 여자가 남자보다 위에 있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나의 생각도 아니다.

여자와 남자가 서로 적인가, 나의 직장 상사로부터 그 말을 듣는 순간 수치심인지 황당함인지 아니면 그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씁쓰름했다. 그리고 더 이상은 그 어떤 것도 그 사람에게 부탁할 마음도 용기도 생기지 않는다.

“저건 보나마나 여자다.”이건 운전을 하는 도중 길 한복판에서 길을 막고 있는 등 교통을 마비시키고 있는 주범자를 지목해서 하는 말이다. 누구의 말이냐고 묻는다면 내 가까운 사람들뿐만 아니라 많은 남자들의 말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면 여자로서 기분이 좋지 않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저 여자일 뿐인 것을 일반화하지 말라고 항의를 해 보지만 솔직히 꺼림칙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간단하나마 식구들 아침밥도 먹여야 하고 화장도 해야 하는 나의 출근길은 늘 분주하고 조급하다. 같은 길이고 같은 차로 이동을 하는 것이지만 시간제한이 없어도 되는 퇴근길과 출근길의 느낌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커다란 트럭이 앞을 막고 천천히 가고 있다거나 얌체처럼 새치기하는 차가 많다거나 계속해서 빨간 신호에 걸릴 때면 조급한 마음이 극에 달한다.

그날도 2차선 도로에서 1차선을 가고 있는데 옆 차선에 비해 내 차선은 도무지 속도가 느려도 너무 느렸다. 어쩔 수 없이 차선을 바꾸기로 맘을 먹고 워낙 많은 차가 빽빽이 가고 있던 터라 어렵게 차선을 변경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1차선의 차들이 속도를 낼 수 없는 원인을 발견했고 그 순간 맥이 쭉 빠지면서 그저 한숨만 나왔다.

모닝에 중년으로 보이는 여성 운전자와 운전석 옆에 또한 비슷하게 보이는 여성이 열심히 대화(수다인지)를 나누며 유유자적 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당연히 그 모닝과 앞차와의 거리는 멀어도 엄청 멀어져 있었고 그녀의 차 뒤에는 뭐 두말 안 해도 상상이 갈 것이다. 이건 운전에 자신이 없는 초보 운전자라서도 아니고, 당사자가 나인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다.‘제발 여성들이여, 우리 이러지 말자고요. 진짜 당당하게 멋지게요!’

“간통죄 없어진 거 여자들이 더 좋아해.”라고 말한 그 남자에게 난 이렇게 되묻고 싶었다.“그 좋아한다는 여자들 누군지 이름 대봐, 늘‘여자들’하면서 싸잡아 말하는 이 남자야.”라고. 시대가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달라진 문화와 생활양식만큼 도덕성이나 가치관의 질적 수준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모순된 현실을 부인할 수 없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나쁘다.’라는 이원론적인 논리는 이제 맞지 않을뿐더러, 인생에 있어서는 상대적 관점의 차이가 있을 뿐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안지 오래되었을 만큼 나이도 먹었다. 여성상위도 싫고 남성상위도 싫고 그냥 함께 나란히 서서 가면 안 될까요? 그것마저도 남자들이여, 당신들이 손해 보는 것 같아서 억울한가요?

권위는 떨어지고 돈 버는 기계라고 하면서 서글퍼하는 아저씨들이여, 그 마음 이해합니다. 그런데 우리 아줌마들도 그에 못지않은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는 거 알아주시고, 그 이상한 편견일랑 거둬주시면 참 좋을 것 같은데요. [이 게시물은 뉴스타워님에 의해 2015-05-14 21:34:18 기고에서 이동 됨]

손해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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