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학자들은 우리나라 근대농업의 시작을 일제시대 때 부터라고 하지만, 저수지를 이용한 농경을 근대농업의 기본이라고 본다면 정조임금이 시작한 저수지농법이 우리나라 근대 농업의 시작이다고도 볼 수 있다.

어느덧 7월의 강한 햇살이 퍼붓기 시작한다. 며칠 전 강한 폭우가 휩쓸고 지나간 사실을 잊은 듯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구름 한 점 없는 따가운 햇살이 피부를 때리고 있다.

곧, 200년 이상 된 만석거를 바라보며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있는 어르신 두 분이 보인다. 나무 2그루와 의자 2개 그 사이로 비치는 오래된 만석거의 풍경이 뭔가 가슴속에 밀려들어온다. 정조임금도 행차시 노인을 보면 같은 감정을 느꼈을까? 거동하기 불편한 어르신들을 보면 부모에 대한 생각이 더 깊어지고, 그러한 마음을 정조임금도 느꼈을터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 또한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처럼 크고 깊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걷는 길은 효행길이다. 정조의 효심이 깃든,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깃든 그 길을, 그런 감정을 느끼며 걷는 길인 것이다. 왜 이 길을 걷느냐고 물으면 그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이곳 만석거를 주변으로 한 만석공원엔 다양한 축제가 많이 열린다. 200여년전 정조대왕이 백성을 생각해 만든 만석거, 그 주변엔 문화와 환경이 넘쳐 흐르고 있으며, 만석공원은 문화의 공간으로, 도심 속 쉼터 공간으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우리가 받는 그러한 혜택의 기원은 정조의 효심 덕분이 아니였을까? 잠시 생각을 해본다.

길을 따라 수원미술관을 지나 정자가 하나 보인다. 원래 만석거 남쪽에는 교귀정(交龜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1996년 10월에 건립한 2층 구조의 영화정(迎華亭)이 들어서 있다.

바로 옆엔 버드나무 가지가 길게 늘어진 사이로 실개천이 하나 보인다. 일왕저수지에서 나오는 이 실개천은 서호천으로 또 하나의 저수지인 농촌진흥청 앞에 있는 서호까지 물길이 이어지게 된다.


88올림픽의 기억 수원종합운동장

아무리 가로수가 잘 되어 있다고 해도 한 낮의 뜨거운 아스팔트 옆 도심 속을 걷는 건 정말로 힘들다. 또 그 온도를 바로 옆에서 느끼는 체감온도란 그래서인지 조금이라도 숲이 보이는 길, 그늘이 진 길을 찾게 되고 또 자연스럽게 그런 길을 가게 된다.



조그만 숲이 보인 종합운동장내로 자연스럽게 걸어갔다. 곧 편하게 쉴 수 있는 의자들이 보인다. 지금 시간은 8시 10분 이내 신발과 모자를 벗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경기장 안을 바라본다.

이곳 수원종합운동장은 스포츠 경기장 종합단지로 1971년 10월에 개장됐다. 종합경기장, 야구장, 실내체육관, 인조잔디구장 등이 있으며 무엇보다 이곳에선 88올림픽의 옛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88올림픽 조형물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300미터 정도를 걸어 올라갔을까 곧 장안문이 보이며 옆에는 거북시장이 보인다. 한때 이곳 북문 상권은 번화가 왕성했던 시절이 있었다. 남문 상권과 더불어 수도권 최고의 상권중 하나였던 북문상권, 알고 보면 그 근원은 정조시대로 올라간다.

장안문 거북시장은 200여년 전 수원화성의 축성과 더불어 장안문 밖에 형성된 수원에서는 역사가 깊고 오래된 전통시장 중의 하나였으며 수원 화성과 그 역사적 의미를 같이 하고 있다. 또한 느림보타운이라는 이름은 건강·장수·행복의 이미지를 가진 거북과 천천히 먹고 즐기고 구경할 수 있는 장터를 만들자는 의미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슬보비족 현상을 우리는 이미 200년 전에 실천한 셈이다.

지금은 그러한 느림보타운의 의미를 살리고자 거북시장에선 매년 ‘새숱막거리 축제’를 열고 있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하는 지역축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또한, 장안문에서 1km안 인근엔 52칸에 달하는 큰 규모의 영화관이 있었다고 하는데 19세기 말 역참제도가 시행될 때까지 역 주변의 마을과 그대로 남아 있다가 1930년대 이후 북문 주변에 집들이 가득 차면서 역의 흔적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고 한다.

김홍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