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찬바람 쌩 돌게 차가운 남자가 매력 있다고 생각했다. 약간 못된 말투와 이기적이고 잘 웃지 않는 남자에게 더 호감이 갔다. 21세기에 유행어가 되어버린 나쁜 남자를 20세기의 나는 멋진 남자라고 생각한건지도 모르겠다.

상상속의 남자이기는 하지만 가끔은 일상에서 이런 남자를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남자가 바로 어릴적 내가 상상하던 그 남자이다. 반항아의 이미지요 아웃사이더면서 얼굴까지 훈남인 제임스딘이 아니라면 지금은 밥맛없는 사람이라고 속으로 욕해주고 싶은 그런 남자가 아이러니하게도 어릴적 내가 매력 있다고 생각한 남자라니 웃음이 나온다. 세상을 좀 살아보니 어른들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 사람은 자고로 밝고 건강하고 잘 웃고 인사성 있는 사람이 호감가고 좋다.

게다가 유머까지 겸비하고 마음까지 따뜻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거 아닌가.
미술관에서도 작품을 보면 작가의 성격이나 느낌들이 전해져 올 때가 있다. 저 작가는 참 밝고 따뜻하고 자상한 사람이겠구나 하고 그 인간성이 작품의 표면에서 파장처럼 전해져온다. 차가운 사람인줄 알았는데 겪어볼수록 정답고 따뜻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작품도 첫인상, 첫 느낌이 중요하지만 볼수록 빠져드는 매력적인 작품들도 있다. 난 그런 작품들이 무더기로 전시되어 있는 미술관을 알고 있다. 바로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백남준 아트센터이다.

88올림픽으로 우리나라가 들썩이던 그즈음 백남준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때는 방송마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라고 백남준을 소개하며 연일 보도가 되었다. 그런데 막 대학생이 된 나의 눈에는 도대체 저것이 뭐에 쓰는 물건인가 싶은 TV모니터를 이용한 설치작품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지직거리는 TV 여러 대 가져다 놓았는데 아트라고? 그냥 기계 아닌가? TV모니터에서는 알 수 없는 화면들이 제각각 틀어져있고 TV는 여러개가 전선들이 삐져나온 채 쌓여져있거나 매달려 있거나 알 수 없는 조형을 이루기도한데 흡사 변두리 전파사에서 고장 난 채 끌려 나온듯한 고물들을 작품이라고 소개를 하니 정신이 산란하여 머리만 아프고 저게 무슨 예술이라는 건가 하는 의문에 강한 부정감까지 들게 하던 충격적인 작품들이었다.

고백하건데 십여년 전 까지도 나는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그렇게 생각한 채 더 이상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게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는 차갑고 까칠한 도시남처럼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예술의전당에서 친구를 기다리다 아트샵에서 백남준의 자서전을 사게 되었는데 시간 때울겸 읽으려던 그 책을 친구와 헤어져 집에 돌아온날 밤을 새워 다 읽었다. 그의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생각들과 넘치는 유머와 엉뚱한 창의력들을 읽어내려 가면서“아, 이 사람은 천재였구나 ”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 이후에 그의 책을 여러 권 더 찾아 읽게 되었고 그리고 용인에 백남준아트센타가 생기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왔다. 사실 벅차기까지 하였다. 나는 TV정원을 오래도록 천천히 걸으며 그를 느끼고 싶었고 TV부처 앞에서는 그가 접목한 철학과 동양사상의 절묘한 아이디어에 오래도록 작품앞을 서성이게 하였다.

그이후로 나는 시간이 나면 마음이 그곳으로 향한다. 갈 때 마다 신진작가들의 멋진 전시도 다채롭게 전시중이지만 난 항상 1층 입구에 설치된 TV물고기를 내 어항인냥 하나하나 살펴보고 가끔 갈적마다 위치가 바뀌어져있는 작품들을 어둠속에서 황홀한듯 천천히 감상하며 우주속같은 전시장을 유희하다 오곤한다.

 
그의 작품들은 언뜻 문명의 이기인 차가운 물체들로 이루어져있어 처음 만날 때 어렵고 이해불가의 외계물체 같지만 그 작품 내면을 이해하며 차근차근 작품을 알아가는 맛이 있고 작품 감상 시간에 조금만 더 투자를 한다면 백남준이라는 작가 이름 앞에 왜 항상‘세계적인 ’칭송이 따라붙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아직 백남준아트센타를 가기전의 사람들 중 나처럼 그의 작품이 황학동의 고물로밖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에 대한 책을 미리 읽어보고 가기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단언컨대 백남준아트센타는 재미있는 장난감들로 가득찬 우주선처럼 느껴질 것이다.

장미정 도예가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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