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가을, 추석을 며칠 앞둔 아침신문의 단언들은 섬뜩하다. ‘난장판, 헬조선, 망한민국, 고강도 세무조사, 추락, 재신임, 압박’ 등의 단어들이 굵직한 제목들을 형성하고 있다. 마치 한국을 지옥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불쾌한 단어들이지만 현실이다.

한국의 현실은 영화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미래를 담은 SF영화 하나 없이 오로지 현실의 추악함과 과거만을 다룬 영화들이 지난 몇 년 사이에 제작 상영됐다. 관객 1000만을 넘어서는 영화 중, 국내 영화는 단 한 편의 미래관련 영화가 없다. 반면 외화는 ‘인터스텔라’를 비롯한 몇 편의 영화들이 있었다.

무엇이 우리 영화를 미래로 가지 못하게 했는지 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영화가 작금의 현실을 투영해 반영하는 것이라면 지금 한국의 영화들이 현실의 부패를 영상화하고 어려운 현실을 잠깐이나마 잊어버리기 위해 과거를 소재로 삼은 것이리라 이해한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도 사회를 구성하며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회관계 속에서 들려오는 망한민국에 대한 자괴감과 되돌리기 불가능한 한국의 현실을 영화를 통해 극복해보려는 마음이 서로 교감을 일으켜 지금의 영화들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들에게 더 멀리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영화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제약도 있을 것이다. 북한관련 영화를 만들면 안 되고, 미국을 비방하는 영화를 만들어서도 안 되고, 정부 특히 현 권력층의 현실비리나 과거 비리를 조명해서도 안 되는 우리의 상황을 보면 망한민국이 틀림없지만 그래도 멀리 보아야 한다.

과거를 잊은 국민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이 한동안 유행한 적이 있다. 그 말에 미래를 꿈꾸지 않으면 미래 자체가 지옥일 수도 있다는 말을 추가하고 싶다. 권력층의 부패나 간섭이 없고 자본의 배분이 지금보다 평등한 미래를 영화에 담아내야 한다.

당장 눈앞에 있는 현실 비판이 통쾌할 수는 있지만 앞으로 한국인들이 추구해야 할 미래상을 만들어 보는 것도 바람직하고 통쾌한 일이다. 권력자들의 한 마디가 사회구조를 바꿀 수 없는 미래, 권력자들이기 때문에 특별히 대접받지 않는 미래, 무엇을 영화화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 미래가 영화 속에서 그려진다면 현실의 사람들은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각하고 노력할 것임이 분명하다.

누구나 지옥에서는 탈출하고픈 법이다. 그러나 지옥에서 탈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긴다면 그 다음에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할 수 있는 행동은 지옥 같은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한 몸부림일 것이다. 사람들의 몸부림이 처음에는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아름다운 미래를 본적이 있기 때문에 바꾸려 할 것이다. 그런 것이 미래를 담은 영화의 힘이리라 믿고 있다. 한 편의 영화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사라져버린 한국산 SF영화의 부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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