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내부자들, 이끼’의 원작자인 윤태호 작가가 지난 15일 저녁 7시 성남시청에서 성남행복아카데미 강연을 가졌다. 20·30대 직장인과 대학생 등 폭넓은 계층이 강연을 들을 수 있도록 처음으로 저녁시간대에 열린 이번 강연은 자리가 없어 바닥에 앉아 강연을 듣는 사람들이 발생할 정도로 말 그대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날 윤 작가는 자신만의 스토리텔링 비법을 전하며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분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운을 땠다. 그는 이를 위해 ‘중2병 일기쓰기’를 했다고 한다. 스스로에 대한 과도한 망상이나 특유의 감수성을 갖는 ‘중2병’의 산을 뛰어넘는 과정을 거쳐야한다는 것이다.

“자기만의 세계관을 뻔뻔하게 써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가진 부끄러움이나 치부를 자신의 눈으로 목격하면서 뛰어넘어보는 체험을 해야 하죠.”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성장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남이 주는 신뢰 이전에 스스로가 자신을 믿게 된다고 말하며 “남들의 격려 따위에 상관없이 스스로 단단하게 설 수가 있다”고 전했다

한 예로 그의 작품 중에서도 탐욕스러운 정치에 대해 다룬 ‘내부자들’은 애초에 자신의 정치적 관점을 정리하기 위해 그린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정치참고서를 만들기 위해 시작했지만 연재가 계속될수록 자신의 숨겨진 보수성을 너무나 많이 알게 돼 더 이상 작품을 이을 수가 없어 미완결로 끝을 냈다고 한다.

“우리는 스스로 진보적인 선택을 하려고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구체화시키고 문장으로 만들다 보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라는 것은 얼마나 위태로운 상태인지 알게 됩니다.” “이것을 스스로 목격하고 연재를 계속 했다가는 감당할 수 없는 자기고백이 돼버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접게 됐죠.”

그가 캐릭터를 구상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연표’를 만드는 일이다. 캐릭터별로 태어났을 때 연도와 그 당시 세계적 이벤트를 나란히 적는다. 누군가는 새마을 운동을 직접 겪었지만 누군가는 어른들의 입을 통해서만 듣게 되는 것처럼, 캐릭터가 겪었을 사건과 나이를 합쳐 보면 그 캐릭터의 대사에 한계치가 발생한다. 이렇게 캐릭터들의 한계치를 만들다보면 캐릭터 간에 갈등이 머릿속에 떠오르게 된다고 전했다. 그는 신인들이 범하는 가장 큰 실수가 “주인공을 전지전능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미생’을 만들면서 ‘혈액형’과 같은 사람들이 선입견을 가질만한 원형질을 적어 넣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원칙을 지키는 사람”과 같은 그 사람의 성향 같은 것 말이다. 또 그 사람만의 연역을 함께 적다보면 머릿속에 이 사람들의 외모까지도 결정이 될 때가 있다고 한다.

그는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두 달이 넘게 이 과정을 계속한다고 한다. 이 정도는 거쳐야 독자가 캐릭터에 기대하는 역할을 배반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스토리텔링은 매우 ‘논리적인 영역’이라고 전했다. 한 캐릭터가 했던 행동과 말들은 반드시 매듭을 짓고 다음으로 넘어가야 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조금이라도 성장한 누군가가 나와야 하는 과정이 들어가야지만 스토리가 완성된다. 그렇기에 창작을 꿈꾸는 사람들은 논리 수업을 들어야 하고, 논리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취재’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분야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인터넷 활용과 밀착 취재까지 다양하게 활용한다고 한다. 미생을 기획할 땐 직장인 한명에게 “아침에 일하는 직장인들의 마음은 무엇일까”부터 “탕비실이 뭐하는 곳인지”에 대해서까지 상세하게 물었다고 한다. 그는 취재의 기본은 자신의 지적 수준을 밑바닥까지 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준비해온 프레젠테이션엔 캐릭터 구상에 사용했던 공책들과 취재과정을 기록한 장면들이 가득했다.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만들어낸 작가의 밑바탕에는 이렇게 많은 품이 드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끝으로 무엇보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어떤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수십 수백 가지의 층이 깔려야 합니다. 남들의 자서전이나 회고록만을 봐서는 이런 과정들을 알기가 힘들죠.” “결국 남을 통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을 집중하며 자가 발전하는 길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래야만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허민지 기자  mail@newstower.co.kr

<저작권자 © 뉴스타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