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어둠을 밝히던 불빛그릇 등잔을 평생 모아왔습니다. 작으나마 반짝이는 불빛, 천한 사람 귀한 사람 차별 않고 보배 같은 빛을 뿌려 밤을 열어주던 등잔, 방황하던 옛 님들의 길잡이가 되기도 하였던 등불.”

등잔 밑이 어둡다 더니, 이렇게 귀한 곳이 숨어있는 줄은 몰랐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용인외각에 수원화성의 공심돈을 꼭 닮은 건물이 우뚝 솟아있다. 세계 유일의 등잔박물관인 ‘한국 등잔박물관’은 3대에 걸쳐 모아온 등잔을 비롯한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수원에서 산부인과 의사를 하던 김동휘 초대관장은 아버지 때부터 40년간 모아온 등잔을 병원 한쪽에 전시하다가 아예 박물관을 차리고 유물로써 보존하기 시작했다. ‘수원 등잔박사’라는 별칭까지 얻은 그는 골동품상을 누비며 등잔을 모았다고 한다. 현재 박물관은 테마별로 나누어져 있어 수집품이 따로 나뉘어져 있지 않지만, 혼례용으로 쓰였을법한 화려한 나비를 단 촛대부터 앙증맞은 남포등까지 무엇 하나 허투루 된 모양새가 없어 조형예술이라 칭할 수 있을 만큼 고귀한 취향이 느껴진다.

특히 그에게 등잔은 ‘어머니’였다고 한다. 그의 생전 인터뷰가 실려 있는 책 『뮤지엄을 만든 사람들』에 이런 내용이 실려있다. “이런 저런 것을 모아보다 보니 등잔이라는 소재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등잔은 저로 하여금 어머님을 연상하게 하던 소재였습니다. 어렸을 적 자다가 깨면 등잔불 밑에서 바느질 하던 어머님의 모습이 비쳤습니다. (중략) 등잔을 모으고 모으다 보니 어머니의 얼굴이 너무나 간절히 떠올라 어머님의 추억까지 같이 모으는 것 같아 더욱 심취해 등잔을 모으게 됐지요.”

이런 의미를 반영한 듯 박물관에는 근대 한국 여성의 삶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기획되어 있다. 조선후기의 집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1층 테마전시공간 ‘생활 속의 등잔’을 통해서 당시 집안 살림을 도맡은 여성들의 삶 주변에는 항상 등잔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이 트기 전 어머니는 부엌에서 조왕중발에 정화수를 담아 올리고 벽걸이 등잔의 은은한 불빛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칠흑 같은 어두운 밤엔 안방에서 등잔 불빛 앞에 바짝 다가앉아 밀린 바느질거리와 마름질을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전기가 들어온 것이 100년이 채 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근현대 한국인들에게 등잔이란 생활필수품인 동시에 귀한 인테리어 소품이었을 것이다. 박물관 2층 전시실 ‘아름다움 속의 등잔’에서는 시대에 따라 유행에 따라 등잔의 재료와 모양들이 변화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등잔의 공통적인 특징은 온돌문화에 맞게 앉은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등잔대의 길이를 길게 만들었고, 재질과 용도는 변했지만 문양으로 멋을 낸 것이라고 한다. 또, ‘쌍심지를 켜다’ ‘화촉을 밝히다’ 같은 속담들도 등잔의 모양이나 사용방식에서 유래한 말일만큼 등잔은 조상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등잔박물관에서는 <등잔마을 반디가족 탄생!>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초등학교 1~3학년 어린이와 가족들을 대상으로 기수별로 10주간 진행되며, 전시회‧그림자공연‧제등넵킨아트체험‧좌등한지공예체험‧도자등잔체험‧화촉체험‧불 피우기 체험‧ 미술치료‧ 고고학자와의 만남 등 다채롭고 알찬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에술교육진흥원, 한국박물관협회와 함께 만들어진 이번 프로그램의 참여비는 전액 무료이며, 접수는 전화문의를 통해 가능하다. 세계 유일의 등잔박물관인 한국 등잔박물관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위치해 있으며, 문의전화는 031-334-0797로 하면 된다.

허민지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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