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부터 회계사를 꿈꿨어요. 대학 입학해서도 회계사 시험 준비하고 공부만 했어요. 그런데 꿈은 언제든 현실에 따라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요! 회계사 아닌 다른 일을 내가 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문득 생각했죠.”

스물일곱 대원제약의 영업사원 4년차인 이미지 씨를 만났다. 그녀는 웬만한 대기업 간부급 연봉만큼의 수입을 받고 있다. 꼭 돈 때문에 제약회사 영업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정말 잘 맞고 즐거운 일이라고 말한다. 평생 책상에 앉아 공부만 했던 자신이 잘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영업 현장을 겪어 보니 자신감이 생겼고, 고민은 금방 사라졌다. 과연 스물일곱 미혼의 여성 영업사원으로서의 어려움은 없을까?

“제가 처음 입사했을 때 회사에 화장실이 없었어요. 본사가 아닌 지부에서 근무했는데 그동안 모든 영업사원들이 100% 남자였기 때문에 여자 화장실이 없는 거예요. 그나마 지부건물이 이사해서 여자 화장실이 있으니 다행이에요.”

지금은 운전을 하고 거래처 병원을 방문하지만 신입사원 시절엔 하루 50여개의 병원을 걸어서 다녔다고 한다. 겨울이었는데 3개월 동안 손등이 다 트고, 볼도 항상 빨갰다고. 그래도 즐거울 수 있는 건 일에 대한 보상과 함께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새로운 사람들 만나는 일이 천직처럼 여겨진단다. 고객으로 만나는 의사 분들이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고 잘 도와주시고, 챙겨주시는 것도 감사하다. 각종 정보를 얻고 의료계의 네트워크가 넓어지는 것도 일의 이점이다.

숙명여대 경영학과를 수석 졸업할 정도의 실력까지 있었는데 꿈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을까.

“입사하고 처음엔 영업이라고 부모님께 말씀을 못 드렸어요. 나중에 알게 되셨지만 힘들지 않겠냐고 걱정하셨죠. 다시 되돌아가 직업을 선택한다고 해도 저는 제약영업을 선택할 거예요. 지금 회사도 너무 좋고요. 10대부터 20대까지 미친 듯이 공부한 모든 것을 후회하진 않아요. 그리고 회계사 공부 포기한 것도 후회하지 않고요. 지금 현재가 중요하죠. 아참, 회계사 공부했던 일들이 영업에도 큰 도움이 된답니다. 병원에 계신 의사 분들께 세금이나 회계에 대한 정보를 드릴 수도 있으니까요. 크게 보면 세상에 쓸모없는 공부는 없는 것 같아요. 대학 다닐 때는 내 돈 주고 공부했는데, 지금은 돈 받고 일하면서 배우니 얼마나 좋아요!”

물론 영업이 쉽지만은 않다. 제약회사의 불법 리베이트 사건은 연일 뉴스에 나오고 있다. 의사들이 제약 영업사원들에게 ‘감성영업’이란 미명 아래 온갖 심부름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경기침체로 실적경쟁에 내몰리면서 극한의 스트레스 받는 영업사원들의 비애도 크다.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이기에 스트레스 지수가 높다. 하지만 이미지 씨는 영업도 본인 하기 나름이라 한다. 일이라고 생각하면 끝도 없이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일이 아니라 밥 먹고, 사람 만나는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재미있게 해낼 수도 있을 거라 말한다.

영업을 하면서 이제는 사람 만나는 일이 두렵지 않고 당당하게 되었다. 영업에 대한 결과와 보상이 바로 이어질 때 짜릿하기도 하다. 미지 씨의 하루 일과를 물어 보았다. 아침 7시에 출근하여 하루의 계획을 세우고, 9시부터 방문할 병원의 루트를 따라 거래처를 방문한다. 심지어 점심 먹는 시간도 아까워 약속 없을 경우 도시락을 싸서 점심을 대신하며 오후 거래처 갈 준비를 한다. 오후 2시부터 6-7시까지 병원을 방문하여 일정을 마친 후 퇴근한다. 똑같은 일처럼 보이지만 매일 새로운 상황과 만남이 즐겁다고 한다.

“영업은 학벌이나 스펙이 전혀 중요치 않아요. 그게 맘에 들어요. 결국 성격이나 인성이란 생각이 들어요. 온전히 나라는 사람으로 평가받고, 결과를 보상받을 수 있다는 영업의 매력 때문에 저는 결혼 후 출산 후에도 계속 일할 거예요!”

4-5년 전만 해도 영업이라는 일은 전혀 그녀의 미래에 예정되어 있지 않았다. 인생은 이처럼 계획되지 않은 우연과 신비가 교차하는 법. 밤이 되어도 다음 날 만나야 할 고객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릴 정도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제약 영업은 천직인가 보다.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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