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임 애 월

산의 출발은 강물보다 더 낮은 어둠 속이다

컴컴한 진흙 속에 침묵의 흰 뿌리를 두고 있다

산이 키우는 건 아름드리나무와 향기로운 난초만이 아니다

이름 없는 풀과 작은 씨앗들에게도

제 살과 등줄기를 넉넉하게 내어준다

산의 침묵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에 대한 경배이다

아침마다 뭇 생명들의 말씀을 가슴 깊숙이 끌어안고

밤마다 어둠 속에서 바람에 젖은 눈물들을 닦아준다

산이 길을 따라 마을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 스스로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가끔씩 별이 그리워 하늘을 올려다 볼 때에도

산은 제 가슴 안의 진흙을 버리지 않는다

산은

그 시작을 낮게 두었기 때문에 스스로 높아지고

겸손하기 때문에 침묵의 향기를 지닐 수 있다

산이 수선스럽지 않은 것은

제 뿌리의 검은 어둠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애월 시인 약력

계간 《한국시학》 《경기PEN문학》 편집주간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경기문학인협회 부회장, 한국경기시인협회 상임이사

경기문학인대상, 수원시인상, 경기시인상 등 수상

시집 『정박 혹은 출항』 『어떤 혹성을 위하여』 『사막의 달』 등

임애월 시인  rja4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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