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 중에 살아생전에 왕은 아니었지만 죽은 뒤 추존이 되어 왕이 된 경우가 있는데, 오늘 소개할 김포 장릉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김포 장릉에 묻힌 원종은 살아 있을 때 정원군으로 불렸지만, 아들인 인조가 왕이 된 이후 대원군을 거쳐 최종적으로 왕으로 추존된 인물이다. 오늘은 김포 장릉을 통해 당시 어떻게 정원군이 왕으로 추존이 될 수 있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김포 장릉의 신도와 어도. 다른 곳과 달리 계단의 형태인 것을 볼 수 있다.

인조가 아버지를 위해 심었다는 뽕나무

포악했던 왕자 정원군에 대한 평가

김포 장릉의 주인공은 원종으로 추존된 정원군(1580∼1619)으로, 그는 선조와 인빈 김 씨의 셋째 아들로 선조에게는 다섯 번째 서자이다. 일찍이 정원군에 대해 최악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인데, 선조실록에 따르면 성격이 난폭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등의 행적이 고스란히 쓰여 있다. 오죽했으면 임해군과 더불어 왕자들의 폐단을 이야기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이야기할까? 게다가 임진왜란 당시 군사기밀을 누설했다하여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처벌하라는 상소가 빗발치자 이에 대해 선조가 무마하느라 진땀을 빼는가 하면, 이에 홍식, 조정원, 권진 등의 사헌부 관원들이 집단적으로 사직을 청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또한 정원군의 궁노가 하원군부인을 감금, 겁탈했는데도 조사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실록을 기록하던 사관도 혀를 내둘렀다. 이러한 정원군이 임진왜란 중 공이 있다는 이유로 호성공신으로 책봉이 되었는데, 이는 임진왜란의 여파로 파천을 단행, 한양을 떠나 몽진을 가야했던 행렬에 부왕인 선조를 따라 다닌 공이었다. 하지만 당시 이러한 공신 책봉은 전장을 누빈 장수보다, 임금을 따라다닌 대신과 내관 등이 높은 품계를 받았다하니 호성공신으로 책봉되었다 해서, 정원군에 대한 변호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정원군이 후일 추존 왕이 되면서 새긴 비석에는 효성과 우애가 남다르고, 태도가 신중했다고 적혀있으니, 이는 정원군의 아들 인조가 왕이기 때문에 과도하게 띄어준 것이 아니냐는 눈총을 받았다. 정원군은 술을 너무 좋아했다고 하는데, 포악한 성질에 술까지 들어가니 몸이 버틸 재간이 없었다. 때문에 1619년 회현방에서 4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아들 중 능창군은 광해군에 의해 역모로 죽임을 당했으나 훗날 능양군이 서인을 규합, 인조반정을 통해 왕이 되면서 정원군은 대원군을 거쳐 원종으로 추존이 되어 죽은 뒤 왕이 될 수 있었다.

육경원 비석의 받침돌. 이곳에 세워졌을 비석은 현재 김포 장릉의 능침 쪽에 묻혀 있다.

정자각에서 바라본 김포 장릉의 전경

육경묘에서 장릉으로, 원종으로 추존이 되었던 정원군

인조(재위 1623~1649)가 정권을 잡고 보니 스스로가 느끼는 문제는 역시 정통성에 관한 것이었다. 할아버지인 선조, 그리고 일개 왕자였던 정원군의 신분이 인조에게는 상당한 콤플렉스로 남았는데, 이 때문에 재위 초반 인조는 아버지 정원군의 추존에 매달렸다. 하지만 당시 조정 대신들의 반대 역시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정원군이 일개 왕자, 심지어 대군도 아니었던 탓에 무리하게 추존하려는 것에 반기를 들었다. 실제 이전까지 유일하게 왕으로 추존된 덕종(의경세자, 1438∼1457)의 경우 세자 시절 세상을 떠난 경우였고, 훗날 추존이 된 왕들 역시 진종(효장세자, 1719∼1728), 장조(사도세자, 1735~1762), 익종(효명세자, 1809∼1830) 등 세자 신분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당시의 논란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이걸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던 대신들 중 김장생, 김집 등은 정원군의 추존에 반대하며 사퇴하기도 했으며, 미수 허목(1595~1682)은 이를 비판하다 파직당하고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이는 정원군을 왕으로 추존하려고 했던 인조의 행동이 얼마나 집요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으로 마침내 대원군으로 추존한지 10년 만에 정원군에게 원종이라는 시호와 함께, 당시 김포에 있던 육경원은 ‘장릉’이라는 능호를 얻게 된다. 당시 장릉은 육경묘라 불렸으나, 아들이었던 인조가 왕이 되면서 정원군은 대원군으로 추존이 되었으며, 어머니 계운궁 구씨가 세상을 떠나 김포지역으로 천장을 하면서 육경원으로 격상이 되었다. 이후 인조에 의해 정원군이 원종으로 추존이 되며 이후 이곳은 장릉으로 불리게 된다.

김포 장릉의 능침 공간. 아들을 잘 만나 죽은 뒤에 왕이 될 수 있었던 원종

김포 장릉의 봉분. 다른 조선왕릉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김포 장릉의 무인석의 모습

김포 장릉에 남겨진 인조의 흔적과 노력

원종이 잠든 김포 장릉은 김포시 풍무동에 자리한 김포시청 뒤에 있는데, 아담한 녹지로 조성되어 도심 속에 산책 공간으로 많이 활용이 되고 있는 곳이다. 김포 장릉의 경우 사후 추존이 되었기 때문에 기존의 왕릉과는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능침공간은 왕릉의 형식을 잘 갖추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면 다른 조선왕릉과 달리 김포 장릉은 신도와 어도가 계단 형태로 조성이 되어있다는 점과 육경원 비석을 세웠던 받침돌이 있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 이 가운데 김포 장릉이 육경원으로 불리던 시절에 세워졌던 비석 받침돌은 이곳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발견이 되어 현재 비각 옆에 전시 중이다. 이 비석 받침돌에 세워졌을 비문의 경우 원종으로 추존이 되면서 능침 공간에 파묻히게 됐는데, 여담이지만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원 중 육경원이 최초였다. 현재 김포 장릉에는 이곳에 인조가 아버지를 위해 심었다는 뽕나무가 있다고 전하고 있는데, 현재 정자각을 중심으로 우측에 자리하고 있다. 망나니 같고, 포악했던 정원군이지만 아들을 잘 만나 죽은 뒤 왕이 될 수 있었던 김포 장릉은 정통성이 취약했던 인조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이곳만의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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