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에서는 중학교 졸업 후 1년은 에프테르스콜레(애프터스쿨), 고등학교 졸업 후 6개월은 폴케회이스콜레(포크하이스쿨), 그리고 성인들은 자유대학에서 쉬어가며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그런데 이것은 덴마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일랜드는 고1 시기에, 영국은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 전까지 전환학년제를 실시하고 있다. 또, 이스라엘은 고등학교 졸업 후 군복무를 마친 남녀 학생 다수가 1년간 해외여행이나 봉사활동을 한 후 대학에 진학한다. 이러한 쉼의 시간이 아이들을 자라게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아이들에게 옆을 볼 자유를 주기 위한 에프터 스콜레 ‘인생학교’를 실시하는 곳이 생겨났다.

강화도의 ‘꿈틀리 인생학교’, 서울의 ‘꽃다운 친구들’, 고양의 ‘열일곱 인생학교’와 용인의 ‘열일곱 인생학교’가 그 네 곳이다. 이 중 꿈틀리는 기숙형이고 서울의 꽃다운 친구들은 주2회 만나는 형식이다. 고양과 용인의 열일곱 인생학교는 각각 ‘함께여는교육연구소’와 ‘아름다운배움’이 힘을 합쳐 만든 통학형 인생학교이다. 이 중 용인의 열일곱 인생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담임 교사 정승훈 선생님을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맨 처음에는 대안학교인 이우 중학교에서 이우 고등학교로 진학하지 못한 탈락 학생들의 학부모 요청과 이우학교 공동체를 통해 고민이 시작됐어요. 이 친구들이 1년 후에는 일반 고등학교든 대안학교든 가긴해야 하는데 어떤 시간을 보내게 할 것인가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점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들이 많았습니다.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학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고요. 하지만, 공부가 어려운 거는 이전 과정을 공부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정서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서적인 문제를 회복하는 데 초점을 두기도 했습니다.”

2015년 개교한 용인의 열일곱 인생학교는 처음 4명으로 시작해 1명이 중도에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그만 둔 것을 빼고 3명이 무사히 졸업하였다. 그리고 올해는 총 10명의 학생이 입학해 현재 열일곱 인생 학교에서 함께 하고 있다.

“저희 교육과정은 큰 틀은 있지만 계속 만들어지고 있고 수정되어 가면서 변화해 가고 있어요. 아이들이 처음으로 자유를 갖게 되었고 이 시간에 휴식도 필요하지만 자율적인 경험과 협력하는 경험을 통해 마음의 힘을 기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 교육과정에서 가장 큰 기준은 자율과 협력이에요. 이 두 가지를 경험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데 1학기에는 아이들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가고, 2학기에는 마을 프로젝트를 하면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해 나가는 작업을 경험합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온 다양한 색깔의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제각각의 관심과 요구는 처음 입학 여행에서 1년 계획을 짜면서 알아간다. 아이들 간에 공통되는 영역을 하나로 묶고 시간표에 배치하고, 개별적인 건 개별 프로젝트로 소화하게 만드는 것이다.

“담임교사는 저를 포함해 2명이고요. 그 외에 과목 교사들도 있지만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인생학교다 보니 마을의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많이 있습니다. 학교의 주 모임 장소인 ‘느티나무 도서관’도 마을에서 만들어진 곳이고, 점심을 해결하는 ‘파지사유’도 그러하고 글쓰기 등 교과수업을 하는 공간인 ‘우주소년’은 이곳 독립서점이에요.”

작년 졸업생 중 용인 지역 학생이 아니었던 아이가 찾아와 이곳이 자기 고향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나고 자란 곳이 고향이 아닌 자신과 유의미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 고향임을 이곳 열일곱 인생학교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레 느끼고 있었다.

“교사로서 이러한 유형의 학교 모델이 없다는 건 불안하기도 하고 힘든 점입니다. 또, 애들이 갖고 있는 문제가 다 다른 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심리 전문가도 아닌 제가 잘 하고 있는 건지 흔들릴 때도 많고요. 하루 종일 함께 붙어 있다 보니 얘기 나누고 듣고 하는 데 에너지 소모가 커요. 그런데, 또 이점이 좋은 점이기도 해요. 아이들 수가 적으니 아이들과 이야기할 시간이 많아 가깝게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아이들의 현재 과제를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어요. 교과로 만나지 않고 아이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면이 좋습니다. 아이들의 삶을 만날 수 있다는 건 교사로서의 효능감을 느끼게 해주고요.”

교사로서 힘든 점과 좋은 점이 같은 지점에서 만나고 있는 정승훈 선생님은 따스한 시선으로 아이들과 함께 삶을 나누는 교사였다. 그의 이러한 포용력을 만날 수 있는 열일곱 인생학교의 아이들은 무척 운이 좋은 아이들이다.

“최근 경상남도 교육청에서 에프터 스콜레를 하고 싶어서 오시 분들이 저희 학교를 보고 따로 공간이 없어도 된다는 것에 관심을 가지시더라고요. 이런 인생학교들은 지역 활동가들이나 마을 공동체 운동과 잘 관계 맺고 함께 아이들의 성장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어디서든 가능합니다. 다만, 재정적인 부분을 해결해야 하는 게 최우선 과제에요. 무엇보다 담당 교사들의 인건비가 꽤 많이 듭니다. 교사 월급을 포함해 적지 않은 돈이 드는데 저희는 모두 후원금으로 운영됩니다. 지난번에 용인시 학교 밖 청소년들 조례에 의거한 사업에 지원을 했는데, 시 담당자가 저희 모델이 무척 좋은 내용이라고 공감하면서도 조례상 부지가 있는 학교만 지원할 수 있다면서 아쉬워했습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재정문제를 해결 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좀 더 유연해 질 필요가 있다. 이제 개교 2년째를 맞은 용인의 열일곱 인생학교는 마을을 어떻게 이용할까 에서 이제 우리가 마을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 지를 고민 중이다. 올해 특이했던 점은 대부분 부모들이 자녀를 설득해서 오는 경우가 많은 데 2명이 스스로 찾아보고 부모를 설득해서 왔다고 한다. 이렇게 아이들의 요구도 많아지고 있고 스스로 성장하고 있는 용인의 열일곱 인생학교에서 앞으로 더 많은 아이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서지은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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