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재위 1724∼1776)가 아직 왕자 시절인 1719년 후궁인 정빈 이씨 와의 사이에서 첫 아들을 보게 되는데, 이가 효장세자(추존 진종, 1719∼1728)였다. 사실 숙종 때부터 조선 왕실은 후계를 이을 사내아이가 귀해지던 시기로, 이러한 분위기 속에 태어난 효장세자는 영조가 왕으로 즉위하면서 경의군에 책봉된 데 이어 이듬해에는 세자로 책봉이 되며 후계자로 인정을 받게 된다. 하지만 효장세자는 불과 10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한동안 후사를 보지 못했던 영조는 1735년에 이르러서야 영빈 이씨(1696∼1764) 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보게 되니 이가 바로 사도세자였다. 정말 어렵게 얻은 아들이었기 때문에 태어난 지 이듬해인 1736년 세자로 책봉하며 공식적인 후계자로 인정을 하게 된다. 왕실의 역사상 이처럼 빠른 책봉이 없었다는 점은 당시 영조가 얼마나 사도세자를 각별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관계는 불과 27년 뒤인 1762년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어, 사도세자는 결국 뒤주에 갇혀 죽는 비극적인 임오화변이 일어나게 된다. 오늘은 이처럼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의 원인과 융릉에 남겨진 비극과 효심에 대한 내용을 중점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융릉으로 가는 길에 자리한 원대황교. 본래 수원시 대황교동과 화성시 황계동 사이 황구지천에 있었으나 파괴가 되어 지금은 남은 석재의 일부를 융릉에 이전한 뒤 복원을 했다.

융릉에 자리한 곤신지. 풍수지리로 볼 때 융릉은 반룡농주(盤龍弄珠) , 즉 용이 여의주를 희롱한다는 뜻으로, 곤신지는 여의주를 상징하는 공간이자 화재 시 방화수의 목적으로 활용되었다.

영조와의 갈등, 그리고 뒤주에서 숨져간 사도세자

처음 사도세자(추존 장조, 1735~1762)가 태어났을 때 영조는 어렵게 얻은 아들이라 크게 기뻐하면서 이듬해 세자로 책봉하게 되는데, 전례에 없는 이런 일을 볼 때 처음 영조와 사도세자의 사이는 아들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이 되어 나쁘지가 않았다. 영조의 입장에서 볼 때 평생 혈통적인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터라 사도세자가 무결점의 완벽한 왕이 되어주길 기대했는데, 가장 크게 기대했던 것이 바로 공부였으며, 영조 자신이 직접 세자를 위해 책을 만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사도세자는 공부와는 거리가 멀고, 이내 싫증을 내었기 때문에 이 부분을 둘러싸고 영조와 사도세자는 좁힐 수 없는 간극이 벌어지게 된다. 기본적으로 영조의 성향이 괴팍한 측면이 없지 않은데다 자신의 기대와 달리 행동하는 세자를 보면서 부자간의 관계는 점차 냉랭해지게 되고, 이러한 아버지에 대해 반항을 하면서 점점 비뚤어져간 사도세자는 정신적인 피폐함이 나타나게 된다. 당시 세자빈이었던 혜경궁 홍씨(1735~1815)가 지은 한중록에는 당시 사도세자가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고 했는데, 사도세자의 기행과 함께 나경언의 고변으로 상징되는 당쟁의 악화는 결국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몰게 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건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재위 1776∼1800)의 존재였는데, 영조에게 사도세자는 골칫거리였지만, 후사를 이을 유일한 아들이었기에 어떠한 처분을 내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세손이 성장을 하면서 성군의 자질을 보이면서 영조는 정조에게 기대를 걸게 되고, 정조의 앞길을 막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어쩌면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를 상징하듯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가 영조에게 직접 아들의 처분을 이야기하면서 세손만은 보호해줄 것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도 알 수가 있다. 결국 혜경궁 홍씨나 어머니 영빈 이씨 역시 더 이상 사도세자를 보호하기에는 정치적인 무리가 따른다고 판단하고, 세손을 보호하는 것으로 돌아선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이러한 판단은 옳게 작용을 하며, 훗날 세손은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되니 이가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였다.

융릉의 비각

전면에서 바라본 융릉의 능침 공간

사도세자의 한을 상징하는 피지 못한 연꽃 봉우리

사도세자에서 장헌세자로, 수은묘에서 현륭원으로 추존

사도세자가 세상을 떠난 뒤 당시 양주 배봉산에 수은묘가 조성이 되었는데, 훗날 세손의 청에 의해 영조는 사도세자와 관련한 부정적인 기록을 삭제하는 조치를 취하게 된다. 영조는 이를 통해 사도세자가 죄인이 아닌 세자의 신원을 회복 시켰으며, 이후 정조가 사도세자에 대해 한글자라도 올릴 수 없도록 다짐을 받게 되는데, 이후 영조가 세상을 떠난 뒤 정조는 왕위에 올랐다. 이 때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이 아닌 법적인 아버지 효장세자에게 입적이 되어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왕위에 오른 정조는 자신의 법적 아버지인 효장세자를 진종으로 추존하는 한편 아버지 사도세자와 관련해 그 때까지 양주 배봉산에 자리한 수은묘를 화성시 안녕동에 있는 화산으로 이장하는 조치를 취하게 된다. 이 때 정조는 사도세자를 장헌세자로 높이고, 수은묘 역시 현륭원으로 한 단계 높이는 조치를 취하게 되는데, 조선왕실의 묘제양식에서 왕과 왕비, 대비 등이 세상을 떠날 때 능으로 조성했다면, 원의 경우 세자나 세자빈, 세자를 낳은 후궁 등이 세상을 떠날 때 조성했던 양식이다. 때문에 이러한 추존은 영조의 다짐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차마 신하들도 이것까지는 반대하지 못했다. 이렇게 현륭원이 화산으로 이장하면서 본의 아니게 이 자리에 있던 수원부읍치는 다른 곳으로 옮겨지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신도시라 불리던 수원 화성으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수원 화성이 만들어진 계기가 되었다.

일반적인 조선 왕릉과는 달리 무인석에만 석마가 자리하고 있다.

융릉의 발끝에 자리한 정조의 첫 왕릉터. 아버지를 생각했던 정조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융릉의 발끝에 잠들었던 정조의 첫 왕릉터, 아버지를 생각했던 정조의 효심을 느낄 수 있는 곳

화산으로 이장된 현륭원은 당시 가장 화려한 왕릉이었는데, 숙종 이후의 왕릉에 융릉처럼 화려한 왕릉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병풍석을 비롯하여 와첨상석을 두른 융릉의 백미는 채 피지 못한 연꽃으로 오직 융릉에서만 볼 수 있는 이 조각은 사도세자의 생을 연상하게 한다. 융릉과 함께 정조의 건릉을 함께 비교해보면 융릉의 능침공간이 얼마나 잘 조성되어 있는지 알 수가 있는데, 정조는 아버지의 추존을 위해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융릉은 현륭원으로 조성되었던 탓에 일반적인 조선 왕릉과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데, 보통의 왕릉이 수호하는 석양과 석호가 두 쌍인데 비해 융릉은 한 쌍만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과 문인석과 무인석에 각각 석마가 있는데 반해 융릉은 무인석에만 석마가 자리한 차이점을 볼 수 있다. 정조는 현륭원을 참배하기 위해 살아생전 13차례에 걸쳐 능행길에 나섰는데, 이러한 정조의 바람은 고종시기에 이르러 장헌세자는 장조로 추존이 되고, 능호를 융릉이라 했다. 한편 융릉에서 바라보이는 정면에는 과거 강무당터로 알려진 정조의 첫 왕릉 터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에 첫 왕릉 터를 쓴 이유와 관련해 자신이 죽어서도 아버지의 발끝에 잠들어 아버지께 문안을 드리고, 더는 아버지에 대한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못 박았다는 의미가 있어 죽은 정조가 아버지를 생각했던 장소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융릉은 다른 조선 왕릉과는 달리 많은 이야기와 생각을 하게끔 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는 장소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정조의 생각을 고스란히 알 수 있는 융릉의 능침 공간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김희태 기자  sora7712@naver.com

<저작권자 © 뉴스타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