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사유화하면서 국정을 농단하고 헌정을 유린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첫 정식재판이 23일 열렸다. 503 수인번호를 달고 플라스틱 핀으로 엉성한 올림머리를 하고 나타난 박 전 대통령은 이날도 기존과 마찬가지로 “(검찰의) 추론과 상상에 의해 기소됐다”며 뻔뻔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특검과 검찰 조사, 언론의 보도, 헌법재판소에 의한 파면 결정으로 확인된 삼성 등 재벌로부터의 592억원 뇌물수수뿐만 아니라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체부 간부들에 대한 사직 강요, 현대차와 포스코에 대한 직권 남용, 공무상비밀누설 등 18가지에 달하는 자신의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나라의 운명과 국민의 삶이야 어떻게 되든 잡아떼기와 버티기로 우리 사회를 벼랑으로 몰아갔던 과거의 모습에서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의 비리와 비겁함으로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됐고, 국격은 완전히 무너졌다.

법원은 여전히 역사와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파렴치한 권력의 비리를 엄단하고 법치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 재임기간 중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한일 정부의 위안부 일방적 합의, 백남기 농민 공권력에 의한 학살, 국정원을 강화시키는 테러방지법 제정, 노사합의를 무시한 평가연봉제 추진, 노동법 개악 시도, 개성공단 폐쇄와 남북관계 파탄 등 민주주의와 민생, 한반도 평화는 악화일로로만 치달았다. 저성장과 양극화는 심화되고 국가재정은 악화되는데도 정작 국민의 삶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대통령은 밀실에서 재벌 총수를 만나며 돈을 뜯어내거나 정유라 승마 지원을 강요하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하루 수백만명의 촛불이 들고 일어나 대통령 탄핵과 구속을 외치고, 결국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들까지 동참하며 국회가 탄핵을 추진하고, 헌재가 초유의 대통령 파면이라는 결정을 내렸겠는가. 자신이 그토록 통제해 왔던 권력의 시녀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검찰이 대통령에게 영장을 청구해 구속시켰으니 박근혜와 최순실의 폐악질은 마침내 종말을 맞았던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박 전 대통령의 악행과 무능이 국민의 힘에 의한 정권교체와 새 시대의 희망을 잉태하게 됐으니 어둠이 깊어질수록 새벽이 가까워진다는 역사의 진리는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는 국민이 위임한 권력이 타락하면 사회에 어떠한 해악을 미치는지, 정경유착과 민주주의 후퇴가 어떻게 연관성을 갖는지, 촛불로 대변됐던 깨어있는 국민의 조직된 힘이 어떠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의회민주주의는 왜 광장이나 국민에 의한 직접 명령에 의해 통제되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많은 교훈을 남겼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태극기집회로 상징되는 맹목적인 극우세력과 지역감정, 재벌만의 성장과 양극화 심화, 권력에 의한 불법과 비리 등 박정희 시대의 어두운 유산이 산적해 있다. 다행히 적폐청산을 강력히 요구했던 촛불민심에 힘입은 문재인 정부가 탄생하면서 “이게 나라냐”라던 비정상적인 시대를 마감할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됐다. 세월호 희생자와 백남기 농민의 가족, 임을 위한 행진곡조차 마음껏 부르지 못했던 5.18민주항쟁 관계자, 절망에 신음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재벌에 의해 유린되는 영세자영업자 등 사회적 약자들은 그나마 숨통이 트이게 됐다.

법원은 사실상 범죄사실에 대한 검증이 끝났으나 오직 박근혜 일당만이 인정하지 않고 있는 이들의 범죄 혐의에 대해 오직 법과 원칙에 의해서 단죄해야 한다. 혹시라도 법원에 의한 판결 이후 문재인 대통령과 자유한국당 등 정치권은 사면 논의 등 국민 우롱하는 행위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대통령이라도 자업자득으로, 자신이 저지른 범죄만큼 벌을 받는 풍토가 조성돼야 사회의 정의가 바로서고 법치주의가 확립된다.

세월호 7시간의 행적, 최태민에서 최순실에 이르기까지의 재산축적 과정과 검은 돈의 규모, 재벌 총수 사면 등 정경유착의 실체,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직권남용과 검찰 농단, 친박 정치실세의 야합 등 진실을 밝혀야 할 숱한 의혹들도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조백현 발행인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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