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식당’의 오너 윤여정은 칠십이 넘고, 서빙 알바생 신구는 팔십이 넘었다. 손님에게 조용히 다가가 꼼꼼하게 주문을 받는 신구, 힐끔힐끔 홀을 엿보며 맛있게 먹었나 궁금해 하는 윤여정의 모습을 보면 절대 ‘꼰대’의 모습이 아니다. 이들을 보면서 얼마 전까지 태극기 휘날리며 박근혜 탄핵반대를 외치던 ‘태극기 부대’ 가 오버랩 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노인들의 극과 극의 모습이다. 이제는 ‘어쩌다 어른’으로 살게 된 어른들의 고민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때다.

윤여정, 신구, 이서진, 정유미. 노인 둘과 젊은이 둘로 구성된 네 명의 유사 가족은 발리의 바닷가에서 한식당을 열었다. 좌충우돌하며 서로 돕고 난관을 헤쳐 나간다. 한식을 맛있게 먹는 여행자들의 모습을 엿보는 재미, 발리의 느긋한 시간과 여유 있는 풍경이 더해진다. 온기가 있는 방송이라고나 할까. 윤여정은 “60이 되어도 인생을 몰라,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라고 말한 적 있다. 지금 윤여정은 71살이다. 여전히 호기심을 잃지 않는 열정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 평생 성실함으로 일관되게 살아온 결과물이 그녀의 몸 자체다. 신구 역시 팔십 넘은 알바생으로서의 겸손함으로 제 몫을 다하고 있다.

사춘기만 지나면 정체성을 찾고 더 이상 존재에 대한 고민 없이 죽는 날까지 나 자체로 살아갈 수 있다? 그건 순전히 거짓말이다. 사십, 오십, 육십, 칠십이 넘어도 정체성의 혼란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인생의 과업을 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죽는 날까지.

윤여정과 신구가 보여주는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보면서 2015년 개봉되었던 영화 ‘인턴’도 오버랩 된다. 로버트 드니로가 연기했던 나이 칠십의 인턴 ‘벤’의 삶은 품격을 잃지 않는 어른의 모습으로 화제가 되었다. 아이에서 청년으로, 중년, 장년, 노년으로 이어지면서 자연스레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 아닌 ‘꼰대’가 되어가는 사회다. 어른다운 모습의 롤모델을 이제는 어른들이 스스로 찾아나가야 하지 않을까.

발리의 바닷가에서 카메라를 대한민국의 사회로 돌리면 어떤가. ‘태극기 휘날리며’ 광화문 광장에서 고성을 지르는 노인과 지하철에서 자리 쟁탈하려는 노인의 모습이 보인다. 혹은 할 말 있는 어른들도 ‘꼰대’의 멍에를 쓸까 조심하며 침묵한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주는 ‘윤식당'의 아름다운 노인은 찾아볼 수 없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어른은 젊은이들과 흡사하다. 두려움과 피해의식에 빠져 있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노인이 가진 지혜로 마을을 다스렸던 존경심은 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다. 이제는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좋은 어른의 삶은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젊을 때도 잘 살아야 한다. 늙어서 갑자기 나빠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젊을 때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상태일 뿐이다. 좋은 어른이 되는 건 좋은 인간이 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끊임없이 자기 성찰을 지속하면서 살아야 한다.

최근 ‘어른학교, 인생학교, 퇴직학교’ 등의 어른 정체성 프로그램이 확대되고 있다. 어른이 스스로 자기 정체성을 찾고, 괜찮은 노년기를 맞이하자는 전환기 프로그램이다. 이 과정에서 50대, 60대 참가자들은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감수성을 느낀다. 나와 타인이 만나 좀 더 재미있는 세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한다. 다음 세대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한다. 정신과 의사 김혜남은 저서 ‘어른이 된다는 것’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선과 악을 비롯한 다양한 힘들을 적절히 조절하고 통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라고 했다. 예비 어른이 되기 위해 훈련되어야 할 것은 언제나 유연하고 열린 자세다. 이제는 전 세대에서 ‘어른’의 삶을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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