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 이 단어를 처음 듣는 사람들은 ‘알쓸’을 ‘알뜰’로 듣기도 한다. 평소 익숙한 단어로 치환해 버리는 거다. TVN에서 새롭게 시작한 본격 남성수다 프로그램인 ‘알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라는 제목의 줄임말인 알쓸신잡 프로그램이 최근 핫하다.

재미없을 것 같은 중년 남성들의 수다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 싶은 맛에 사람들이 빠져서 본다. 하지만, 이 프로에 나오는 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정재승은 대한민국 중년 남성을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 과학계, 인문학계 등 자기 분야에서 이른바 화려한 성공을 이룬 사람들로 한 권 이상의 대표 서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어떻게 중년 남성을 대표한다고 하겠는가. 그냥 각 분야의 전문가 4명의 수다이다.

전문가 4명이 모여 한 장소를 여행하고 자신의 시각에 따라 이야기를 하는 데 그 지식의 난상토론이 재미있는 이 프로그램에서 최근 강릉에 다녀온 모습이 방송되었다. 강릉에 있는 다양한 관광지 중 유시민과 황교익, 유희열은 오죽헌에 들렀다. 이들은 신사임당을 만나기 위해 오죽헌에 들렀는데, 신사임당은 만나지 못하고 율곡 이이만 만나고 왔다.

오죽헌에 있는 신사임당의 안내서부터 ‘율곡 이이’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녀의 삶과 철학, 한 인간으로서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안내가 아닌 이이의 어머니로서 어떻게 살았는지가 소개된 안내서를 보고 유시민은 이건 신사임당 안내서가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오죽헌 안의 전시들도 이이를 중심으로 되어 있었고 사당도 이이를 위한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이후 5명이 모두 모여 함께 여행 이야기를 할 때 유시민과 김영하는 조선 시대 뛰어난 화가였으며 당시 사회제도에 대한 비판 의식을 가지고 살았던 한 여성의 삶이 어머니의 삶으로만 축소되어 평가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여성들에게 어머니로서의 희생과 헌신의 삶만을 강요하는 제한된 사회적 프레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를 보면서 여성이자 엄마인 내 마음은 오묘했다. 저들의 생각이 정말 대한민국 중년 남성을 대표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고, 그 프레임의 혜택을 받은 자들의 평가 말고 억압당한 자들의 이야기도 방송에 나올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시각과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TV프로그램의 대표격인 ‘비정상회담’과 ‘알쓸신잡’은 모두 남성 패널들만 나온다. 이 두 프로그램에서 아무리 여성에 대한 진보적인 시각이 이야기된다 해도 결국 남성의 입을 통해서 이야기되는 것이다.

여성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변화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굴뚝같지만 이러한 부당한 사회 현실에 대해 여성의 입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일이 먼저 선행되길 바란다. 다른 사람의 언어가 아닌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대중매체를 통해 주어지길 바란다. 과학계, 인문계, 문학계에서 대가를 이룬 여성들도 많다. 그녀들의 ‘알아두면 쓸모있는 신비한 잡학사전’이 탄생했으면 좋겠다.

서지은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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