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종과 소혜왕후 한씨가 잠든 경릉. 정자각을 중심으로 ‘Y’자 형태의 동원이강릉으로 조성되어 있다.

덕종의 능침. 보통은 능침을 기준으로 우측에 왕의 능이 있는데 비해 경릉의 경우만 좌측에 능침이 조성되어 반대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서오릉에 위치하고 있는 경릉은 세조의 맏아들인 덕종(1438~1457, 의경세자)의 능으로, 그는 세조가 왕으로 즉위하면서 세자로 책봉이 되었다. 하지만 몸이 병약했던 의경세자는 세자로 책봉된 지 불과 2년 뒤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 때 세조는 큰 슬픔을 느끼게 되는데, 야사에서는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1436~1441)가 세조의 꿈에 나타나 ‘죄 없는 내 자식을 죽였으니, 나도 네 자식을 죽이겠다’며 저주를 내렸다는 이야기와 이 과정에서 현덕왕후 권씨가 세조에게 침을 뱉어 그 자리에 피부병이 생겼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물론 역사적 사실로 볼 때는 허구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당시 백성들 사이에서 세조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인지 실제 세조는 현덕왕후 권씨의 소릉을 파헤쳐 시신을 바닷가에 버리게 했다. 유교 사회에서 이러한 행동은 많은 비난을 야기함에도 이에 개의치 않았던 세조에 의해 소릉은 완전히 파괴가 되었다. 오늘은 의경세자가 세상을 떠난 뒤 덕종으로 추존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인수대비로 잘 알려진 소혜왕후 한씨(1437~1504)와 그 가계에 대해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문인석과 마석의 모습. 세자 시절에 세상을 떠났기에 무인석은 없고, 다른 석물도 비교적 간소화된 형태를 볼 수 있다.

문인석에서 바라본 모습. 건너편에 자리한 소혜왕후 한씨의 능침

능침을 수호하는 석호의 모습

의경세자의 아들인 자을산군, 왕위에 오르다

의경세자가 세상을 떠난 뒤 동생인 해양대군이 세자가 되었는데, 세조가 세상을 떠난 뒤 해양대군이 왕위에 오르니 이가 예종 (재위 1468∼1469)이다. 하지만 예종 역시 왕위에 오른 지 1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면서 후계구도가 복잡해지게 된다. 예종에게는 아들인 제안대군이 있었기 때문에 정상적이라면 선왕의 적장자에게 왕위를 계승해야 했지만, 어쩐 일인지 정희왕후 윤씨는 제안대군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의경세자의 차남인 자을산군을 선택해 왕위에 오르도록 했다. 이 자을산군이 바로 성종(재위 1469∼1494)으로, 당시 성종의 즉위는 훈구 세력을 대표했던 한명회와 정희왕후 윤씨와의 사이에서 서로 이해관계가 맞았기 때문에 즉위가 이루어진 경우였다. 만약 제안대군의 나이가 문제였다면 의경세자의 맏아들인 월산대군이 왕위에 오르게 했다면 말이 맞겠지만, 차남인 자을산군을 선택한 것 자체가 자신들의 정치적인 입장을 고려한 결과로 풀이된다. 그 결과 이처럼 후계구도가 복잡해지는 한 원인이 되었다.

소혜왕후 한씨의 능침 전경

덕종의 능침과 달리 소혜왕후 한씨의 경우 문인석과 무인석, 마석 2쌍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죽어서 왕이 된 의경세자, 그리고 인수대비

성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가장 먼저 추진한 것이 바로 아버지 의경세자의 추존에 관한 논의였다. 성종 이전의 왕들이 모두 선왕의 아들이었는데 비해 성종의 경우 세자의 아들이라는 점은 정통성이라는 측면에서 다소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과 아버지 의경세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함이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추존이 이루어지게 되고, 결국 2년 뒤에 의경세자는 덕종으로, 능호는 경릉으로 추존이 되었다. 이처럼 의경세자가 덕종으로 추존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아직 살아있는 성종의 어머니 한씨는 소혜왕후로 책봉이 되었다. 이 소혜왕후 한씨가 훗날 인수대비로 훗날 연산군이 즉위한 뒤 갑자사화의 원인이 되는 폐비 윤씨 사건으로 연산군 (재위 1494∼1506)과 갈등을 일으킨 끝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당시 실록에는 어머니를 왜 죽였냐고 추궁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야사에서는 연산군이 인수대비에 머리를 들이받았다는 묘사가 있을 정도로 유교 사회였던 조선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기는 했다. 경릉은 ‘Y’자 형태의 동원이강형으로 조성된 왕릉으로 보통 조선왕릉의 경우 능침을 기준으로 우측에는 왕이 좌측에는 왕비의 능이 조성되는 것과 달리 경릉의 경우만 예외적으로 반대로 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덕종의 능침과 소혜왕후 한씨의 능침은 확연히 구분이 되는데, 덕종의 경우 세자의 신분으로 죽어 추존이 되었던 탓에 망주석과 무인석은 없고, 장명등과 상석, 문인석 1쌍과 석마 1쌍, 능의 뒤에 석양 1쌍, 석호가 1쌍씩 자리하고 있다. 반면 소혜왕후 한씨의 능침에는 망주석을 비롯하여 장명등과 상석, 문인석 1쌍과 무인석 1쌍, 석마 2쌍, 능의 뒤로 석양 2쌍, 석호 2쌍 등 일반적인 조선왕릉의 양식을 하고 있는 점 역시 비교해볼 수 있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이후에 추존되는 왕릉의 표본이 된다는 점 역시 눈여겨볼만한 대목으로 죽어서 왕이 되었던 덕종과 인수대비로 잘 알려진 소혜왕후 한씨의 이야기는 이 작은 공간에서 그대로 살아 숨쉬는 역사의 현장인지도 모른다.

김희태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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