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가 새 앨범을 가지고 돌아왔다. 왕년의 섹시퀸이던 그녀는 눈가의 주름을 지우지 않고 수수한 모습으로 나타나 ‘나이 듬’과 ‘내적 성장’, 그리고 음악에 대해 말하고 있다. 현재 대중음악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걸그룹들이 “여자가 먼저 전화하는 것은 매력 없으니 남자가 먼저 성의를 보여달라”는 쌍팔년도식 연애담으로 귀여움을 어필하거나 혹은 더욱 선정적인 퍼포먼스로 자극적인 무대를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그녀의 이야기는 독특하게 두드러진다. 한 때 대표적인 걸그룹 멤버였고, 걸그룹 출신 중 가장 성공한 솔로데뷔자로 평가받는 그녀가 싱어송라이터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들어 자신의 각성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녀는 동안이 대세이고 안티에이징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이 시대에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고,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름답다고 이야기한다. 쉼 없는 경쟁과 수많은 평가 속에 지쳐가는 후배들과 현대인들에게 그 자체 모습으로도 예쁘다 위로하고 모든 개성들을 존중한다. 한 때 섹시퀸으로 2000년대를 풍미했던 그녀가 하는 말이라 그녀의 각성은 더욱 그 울림이 크다.

여성이 자신의 의견과 자신의 감성,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시절이다. 물론 양성평등을 넘어 여성들이 보다 활개를 칠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이 변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남녀의 임금격차라든가 가사노동이나 돌봄노동의 주변화, 그리고 권력을 행사하는 지위로 여성의 진입을 막는 유리천장은 더욱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여성의 존재를 부차적인 존재로 평가하게 만든다. 이런 객관적인 조건 외에도 한국사회의 가부장적인 문화는 여전히 일상적으로 여성들을 옥죄고 있다.

대한민국 여성들은 예로부터 외모와 몸매에 대한 수많은 평가 속에서 성장했다. 그리고 가부장제는 장기불황과 결합하여 여성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공격하며 각종 ‘~녀’로 여성들을 폄하하고 있다. 그냥 비도덕적인 사람이거나 예의 없는 사람으로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된장녀, 개똥녀, 무개념녀 등 ‘~녀’로 여성을 낙인찍고 심지어 선행을 한 여성 역시 ‘개념녀’라고 평가한다. 이런 현상은 ‘여성은 이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으로 여성을 강하게 옭아맨다. 폭력적이거나 비사회적인 남자들을 ‘~남’이라고 비난하지 않지만 여성에게는 예쁘고 날씬해야 하고 나대면 안 되고 친절해야 하며 순종적일 것을 강요하는 가부장적 관념들이 장기불황 속 여성혐오가 되어 ‘~녀’라는 낙인을 무수히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혐오 범죄가 넘쳐나는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외모가 아니라 자신의 내적 가치로 대중의 공론장에 등장한다는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이다. 여성들의 더 많은 목소리, 더 많은 이야기가 공론장에서 소통되길 희망한다. 남성인 대통령도 선언한 페미니스트를 여성 스스로가 선언하는 것이 여전히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더 많은 여성들이 용기를 내어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길 바란다. 성적 차이, 지적 차이, 인종적 차이가 혐오의 근거가 되지 않고 차이가 인정되는 것으로부터 남녀 모두의 인권과 시민권은 더욱 확장될 수 있다. 이제 이효리의 음악에 귀를 기울여봐야겠다.

김예니(청운대 강사)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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