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열이 나거나 수족구 같은 전염병이 생기면 남편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출근하지만 나는 모든 일정이 스톱된다. 조그만 회사라 대체 인력도 없고 아이가 아플 때마다 양해를 구할 수도 없어서 어떻게든 내 몫을 채워야 한다. 그래서 번번이 친정 엄마를 부른다.

이런 내 상황을 잘 보여주는 그림책이 있다. 백희나 작가의 ‘이상한 엄마’라는 그림책인데, 아이가 아파서 조퇴를 했는데도 집에 가 볼 수 없는 워킹맘이 하늘에 있는 선녀와 전화가 연결되어 도움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이 그림책 제목에서 말하는 ‘이상한 엄마’는 선녀 할머니를 말한다. 하지만 아이가 아픈 데도 집에 갈 수 없는 것, 아빠가 등장하지 않는 것, 아픈 아이를 돌봐줄 시스템이 없는 사회 등 이상하다. 이 그림책을 볼 때 가장 이상한 건 아빠가 등장하지 않아도 독자들이 아무런 이상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거다. 아이 엄마가 여러 곳에 도움의 손길을 뻗었을 때 아빠는 뭘 했을까? 한 부모 가정일까? 아빠가 아이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지 않고 엄마만 집으로 부리나케 달려오는 이 상황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건 아이 돌봄을 여성의 성역할로 고정하고 있는 우리 사회 인식 때문이다.

아이가 아픈데 가볼 수 없는 엄마를 도와주는 선녀 할머니 ‘이상한 엄마’는 현실에 없는 초월적 존재다. 보통 옛날이야기에서 초월적 존재들은 대부분 남성을 도와준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남성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그림책에서는 선녀가 도와주는 사람이 여성이다. 그런데, 여성이 여성을 돕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황혼 육아의 현실을 보여주는 풍자로 읽힌다. 하늘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직장과 가정, 일·가정 양립을 할 수 없는 워킹맘들의 서글프고 이상한 현실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다.

‘이상하다’는 말이 성립하려면 이상하지 않은 그러니까 정상인 상태가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사회에서 정상은 대부분 남성, 고학력, 지배계층, 일반인에 유리한 기준을 가지고 나뉜다. 여성, 저학력, 피지배계층, 장애인은 정상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 정상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한 존재인 엄마가 이상한 거니까 부정의 부정으로 이상한 엄마는 정상이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주인공 선녀 할머니를 가리키는 ‘이상한 엄마’가 정상이 되는 건 현실에선 정상을 만나기 힘들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다.

‘이상한 엄마’는 현실에 없는 존재를 통해서만 일·가정 양립을 이룰 수 있는 워킹맘들의 고단한 현실을 풍자적으로 그린 그림책이다. 계란으로 해도 만들어주고 구름도 만들어 주는 선녀 할머니가 나오는 재미있는 그림책이 잔혹동화로 다가오는 건 우리 사회 워킹맘들이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가부장제 사회가 강요하는 돌봄과 희생의 아이콘인 엄마로 살지 않기 위한 전투에 친정 엄마를 끌어 들인다. 친정 엄마에게 가부장제 엄마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그런 엄마이기를 거부하는 자신의 삶을 유지한다. 본인은 가부장제의 굴레를 벗어나려 애쓰면서 친정 엄마는 그 안에 가두는 이 모순은 그림책에 등장하지 않는 남성들의 등장으로 해결가능하다. 아빠의 육아휴직이 보편화되고 여성에게 전가된 돌봄 노동의 짐을 또 다른 여성인 할머니가 아닌 아빠가 함께 해야 한다. 아이 돌봄을 여성의 성역할로 고정하지 않을 때 ‘이상한 엄마’ 그림책은 재미있고 유쾌한 그림책으로 다시 탄생할 수 있다.

서지은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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