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군의 고급 리조트 단지 아난티코브타운의 중심지에 서점이 생겼다. ‘이터널 저니’라는 이름의 서점이다. 영혼치료소라고 적힌 서점의 간판이 인상적이다. 약 2만원의 책이 있는 ‘이터널 저니’는 일반 서점과는 달리 도서검색대가 없고, 윤동주, 제인 오스틴, 마르셀뒤샹 등의 작가별 코너가 있다. 고독, 페미니즘, 어른 그림책 등의 주제로 나뉜 추천 도서로 전시되어 있다. 리조트 단지 안의 서점에서 책이 과연 팔리기나 할까. 이곳은 우려와 달리 하루 매출이 400만원 가량이다.

뿐만 아니라 책을 빌려주는 도서관을 호텔에서 만들고 있는 추세다. 힐튼 부산, 아난티오너스 클럽 등의 호텔은 객실에 책 20여 권이 놓여 있다. 화성의 롤링힐스호텔은 투숙객 대상 책대여 서비스를 운영한다. 해비치호텔 앤드리조트 제주는 연령별 책 3000여 권이 있는 어린이 도서관을 운영한다. 제주 신라 호텔에서는 투숙객 대상으로 전자책을 대여한다. 웨스턴조선호텔은 대한제국시대 제단인 환구단 옆에 있어 103년 된 조선호텔의 분위기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다. 이곳에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 바앤라운지의 한 쪽 벽을 도서관 형태로 만들었다. 롯데호텔 서울 역시 회원전용공간인 클럽라운지에 유럽 도서관이나 대저택 서재 같은 분위기로 꾸밀 예정이다.

책이 있는 공간을 호텔들이 만들려는 이유는 뭘까. 느린 여행을 지향하고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뜻 아닐까. 아예 북 게스트하우스 혹은 책방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아진다. 자신만의 취향을 따라 누군가가 정해놓은 기준의 여행을 가지 않겠다는 결심이기도 하다. 앞으로 만들어지는 호텔 및 새로 인테리어를 개보수하는 곳은 대부분 도서관 시설을 포함할 계획이 있다고 한다.

앞으로 여행이 보고, 먹고, 마시고, 사진 찍는 천편일률적인 행위 이외 내면을 채우는 시간으로 변화해 나갈 것 같다. ‘알쓸신잡’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이라는 케이블 tvN의 예능 프로그램도 역시 책과 여행이 컨셉이다. 정치, 경제, 미식, 문화, 뇌 과학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잡학 박사라 할 수 있는 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정재영과 함께 가수 유희열이 진행을 하고 있다. 지식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반응과 함께 국내 여행에 대한 관심도 불러일으켰다. 학문과 여행의 오묘한 만남이다. 이미 ‘알쓸신잡’의 패털들은 모두 인문 분야의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이 방송으로 인해 여행갈 때 책을 들고 가는 분들도 많아졌다.

여행과 책, 배움이 하나로 연결되어 또 다른 문화를 형성해 가는 듯하다. 『아날로그의 반격』이라는 책에서 데이비드 색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레코드판으로 음악을 듣는 행위는 하드 드라이브의 음악을 꺼내 듣는 것보다 더 큰 참여감을 주고 궁극적으로 더 큰 만족감을 준다. 레코드판이 꽂힌 서가에서 앨범을 골라 디자인을 꼼꼼히 들여다보다가 턴테이블의 바늘을 정성스레 내려놓는 행위, 그리고 레코드판의 표면을 긁는 듯한 음악 소리가 스피커로 흘러나오기 직전 1초 동안의 침묵,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손과 발과 눈과 귀, 심지어 가끔은 입도 사용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물리적인 감각을 더 많이 동원하게 되는 것이다.” (프롤로그 중)

아날로그적인 삶은 승자독식의 경제 구조를 전복한다. 자신의 감각으로 경험을 재구성하는 삶이 떠오르는 이유다. 아마존은 맨하튼에 오프라인 서점을 냈고, 실리콘밸리의 리더들은 몰스킨 노트에 빠진다. 오바마는 아날로그 시계 시놀라를 사랑하고, 레이디 가가는 스트리밍 서비스 대신 LP로 돌아섰다. 수제 맥주를 만들어 먹고, 가죽 가방을 직접 만들어서 갖고 다닌다. 전자책 대신 종이책을 여전히 사랑하면서 말이다.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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