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으로 전송된 몇 장의 사진. 포도의 가지 부분이 시들고 말라있다. 그리고 포도송이에서 떨어진 알맹이들이 많다. 사진과 함께 보내온 문자의 내용은 더욱 이해 불능.

“산 날 처음부터 상태가 이랬는데, 말할까 하다가 하지 않았어요. 좋지 않은 제품 파셨다는 거 아셔야 할 것 같아서 먼저 문자 보내요. 판매하신 인터넷 지역카페에 사진 올릴까 하다가 먼저 문자 드려요.”

이러한 내용이다. 남동생이 송산에서 출하하여 판매한 포도를 지인에게 팔아주고 있다. 지역 카페에 올려 사고 싶어 하는 분에게 판매하기도 했다. 맛있다고 또 소개를 해주거나 여러 번 구매해주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가끔 “신선도가 떨어지네요. 오늘 딴 포도 맞나요? 그냥 환불해주세요”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거나 대한민국사회에서는 ‘고객이 왕’ 아닌가. 고객 불만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사진과 문자를 보내온 포도 구매자는 이미 열흘 전에 산 사람이다. 그럼에도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 당연히 열흘이면 포도가 다 시들고 송이에서 떨어질 만한 시간이다. 초록색이었던 가지가 말라서 검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인터넷카페에 사진 올리겠다’는 말에 다소 주눅이 들어 “원하시면 바로 환불해 드릴께요. 죄송합니다. 열흘 전에 상태를 일일이 확인 못해본 것도 제 책임이네요”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고 나니 억울한 마음이 든다. 열흘 전 상태가 이랬으니 환불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사람의 심리는 뭘까?

지인 중 백화점 상담실장으로 일하는 분이 있다. 백화점의 고객 불만 응대를 하는 일과 직원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데 오만가지 사건 사고가 생긴다고 이야기한 적 있다. “입던 팬티까지 갖고 와서 환불해달라고 해요! 산 지 몇 년 된 선글라스를 갖고 와서 부러졌다면서 이렇게 허술하게 만들어서 그랬다나 뭐래나? 사용한 지 한참 된 스크래치 난 지갑이나 가방 갖고 와서는 명품이 왜 이러냐고 환불하라고 막무가내에요”라고 이야기한다. 백화점 물건도 그러할진대 기껏 1만원, 2만원짜리 농산물은 더욱 그럴 수 있겠다 싶다.

그런데 진짜 ‘고객은 왕’ 일까? 지금껏 고객이 왕이라는 생각 때문에 당당하게 판매자에게 요구하거나, 콜센터 직원에게 막말하는 경우가 생겼다. 콜센터 상담사들이 대표적인 감정 노동자로 꼽히는데, 하루에도 수십 건의 막말을 견뎌야 한다고 한다. “이 XX들아 내가 돈 낸 거 안 보여?” 돈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고객들 때문에 진상고객을 참아야 하는 업주, 판매자들의 고충이 나날이 늘고 있다.

과일장사 하시는 분들의 말을 들어 보면 “한 사람이 과일 들었다 놨다 하고, 큰 것만 죄다 골라가 버리면 다른 사람들이 사고 싶을까요? 물론 사는 사람들은 제 돈 주고 큰 것만 상태 좋은 것만 사고 싶다지만 장사하는 사람 입장은 그게 아니죠!”라고 한다. 돈줄을 쥐고 있는 고객이 왕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갑질이 너무 당연시되고 있다.

블랙컨슈머의 사전적 의미는 “구매한 상품의 하자를 문제 삼아 기업을 상대로 과도한 피해보상금을 요구하거나 거짓으로 피해를 본 것처럼 꾸며 보상을 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기업의 서비스 질적 성장을 위해 도입된 소비자 만족 제도를 역이용하는 블랙컨슈머가 사회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고객은 왕일까? 아니다. 진상고객은 왕이 아니다.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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