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MB 정권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고 간 국정농단 안에는 <블랙리스트>라는 문화계 탄압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블랙리스트란 간단하게 말해 문화예술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빼앗는 살생부이며, 이는 헌법에 위배되는 행위이다.

그런데 이번엔 이명박 정권 시절의 블랙리스트 실체가 터져 나오고 있다. 같은 블랙리스트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운영이 아마추어 수준이라면, 이명박 정부의 블랙리스트는 조금 더 악랄해 보인다. 박근혜 정부는 예술인들의 지원금을 끊는 수준이지만, 이명박 정권의 블랙리스트는 경악스럽게도 국가정보원과 깊이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국정원이 수행하는 업무는 대체 무엇인가.

대한민국을 위해하려는 국내·외의 적 및 기타 단체들이 우리의 국가기밀과 중요 산업정보를 도취(盜取)해가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업무이다. 그리고 국가안보 관련 범죄에 대한 수사업무이다. 그런데 국가안보와 전혀 상관이 없는 문화예술인에 대한 탄압에 관여했다니 개탄스럽지 않은가. 국가 권력의 막강한 힘은 정당한 곳에 쓰여야 한다.

광우병 파동에 앞장선 배우라고 영화사에 압력을 넣고, 정부시책에 삐딱한 가수라고 방송출연을 금지시키는 것은 국가 권력의 올바른 기능이 아니다. 그 방법에 있어서도 영화배우 문성근의 합성사진에서 보듯 유치하기 짝이 없다. 여자와 벌거벗고 뒹구는 포르노성 사진에 얼굴만 합성시켜 인터넷에 유포하는 행위는 인격말살이며 국가기관이 할 짓이 아니다.

그들 명단에 오른 문화예술인들은 정치가도 아니며 혁명가나 사상가도 아니다. 대중의 인기를 바탕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비교적 상식선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지, 어느 한쪽 이념에 편향된 사람들이 아니다. 때문에 그들의 입은 대중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고 봐야 옳다. 그들이 ‘아니다’라고 말하면 정부는 그들의 입을 틀어막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귀 기울이는 노력을 포기하고 탄압에 나섰다. 더구나 국정원이라는 막강한 국가 권력을 동원하여 특정 예술가를 매장시키는데 주력했다니 가슴 아픈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탄압의 방법도 혐오스러울 만큼 지저분했다.

국가 권력의 막강한 힘은 정당한 곳에 정당하게 쓰여질 때 빛난다. 반대로 부당한 곳에 쓰여질 때 국민은 신음하게 되어있다. 이것은 역사의 순리이다. 과거의 잘못은 진실이 밝혀지고 바로 잡아야 한다. 그래야 국정원이 바로 서고, 헌법의 근간도 바로 서는 미래가 약속되는 것이다.

오태영(극작가)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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