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중 2곳 이상의 왕릉이 조성된 예는 동구릉과 서오릉, 서삼릉, 파주 삼릉이 있는데, 그 훼손 정도가 유독 심한 곳이 서삼릉이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위치하고 있는 서삼릉은 ‘예릉’(철종과 철인왕후 김 씨의 능)과 ‘희릉’(장경왕후 윤 씨의 능), ‘효릉’(인종과 인성왕후 박 씨의 능)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서삼릉의 능역은 농협 부지와 종마목장 등으로 인해 훼손이 상당히 심한 편으로 왕릉 간 서로 단절이 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현재 공개된 능도 ‘예릉’과 ‘희릉’, ‘의령원’(의소세손, 1750~1752)과 ‘효창원’(문효세자, 1782~1786) 만 공개되어 있다. 이 외에 ‘효릉’과 ‘소령원’(소현세자, 1612~1645)을 비롯해 ‘후궁과 왕자, 공주의 묘’, ‘태실’ 등과 함께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 씨의 ‘회묘’가 비공개 지역으로 묶여 있다. 이 가운데 오늘 소개할 폐비 윤 씨(?~1482)는 사극으로 자주 나온 바 있어 인지도가 높지만, 역설적이게도 폐비 윤 씨의 ‘회묘’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추정해보면 이는 폐비 윤 씨의 굴곡진 사연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초 폐비 윤 씨가 세상을 떠난 뒤 성종(재위 1469~1494)의 명에 의해 비석도 세워지지 못한 채 조성된 폐비 윤 씨의 묘는 연산군(재위 1494~1506)이 왕위에 오른 뒤 폐비의 신분에서 다시 왕비의 신분인 ‘제헌왕후’로 추존이 되었다. 이와 함께 능호를 ‘회릉’이라 했으며, 지금의 서울시 동대문구 회기동으로 천장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연산군의 폐위와 함께 폐비 윤 씨는 다시 폐비의 신분으로 돌아오게 되고, 자연스럽게 ‘회릉’ 역시 ‘회묘’로 격하되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회기동의 지명이다. 회기동은 과거 회묘동으로 불렸는데 이는 ‘회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삼릉 비공개 지역에 위치한 폐비 윤 씨 회묘의 전경

회묘의 중앙에 세워진 장명등

폐비 윤 씨의 죽음과 연산군의 광기

폐비 윤 씨는 판봉상시사 윤기무의 딸로, 성종의 후궁으로 궁궐에 입궁을 했다. 당시 성종의 정비였던 공혜왕후 한 씨(1469~1474)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비어있는 왕후의 자리에 정희왕후 윤 씨(1418~1483)의 권고에 따라 숙의 윤 씨를 책봉했다. 이는 윤 씨가 현명한 처신으로 왕실의 어른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점과 성종의 아이를 임신했던 것이 한몫을 했다. 이때 윤 씨가 낳은 아들이 연산군으로, 당시 성종은 연산군의 출산을 매우 기뻐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쁨도 채 오래가지 못했는데, 왕후가 된 이후 폐비 윤 씨의 이상 행동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성종이 아끼는 후궁들에 대해 투기를 하는가 하면, 성종과의 갈등 끝에 성종의 얼굴에 상처를 내는 행동으로 폐출의 빌미가 되었다. 결국 폐서인이 되어 사가로 쫓겨난 폐비 윤 씨는 훗날 연산군이 왕위에 오를 경우 불안요소가 될 것을 염려한 성종에 의해 1482년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일설에 의하면 사약을 마시고 죽기 전 폐비 윤 씨는 피를 토한 적삼을 자신의 친정어머니에게 맡기며 연산군이 왕위에 오를 때 전해달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성종 역시 연산군이 자신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을 때 이러한 문제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폐비 윤 씨에 대한 거론은 향후 백 년 동안 하지 말도록 했다. 그리고 계비인 정현왕후 윤 씨(1480~1494)에게 연산군의 양육을 맡기게 했는데, 문제는 정현왕후 윤 씨가 세상을 떠난 뒤 제문을 통해 연산군의 어머니가 폐비 윤 씨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결국 폐비 윤 씨의 친정어머니인 신 씨를 불러들인 자리에서 보여준 피 묻은 적삼을 보며 비명에 갔던 어머니의 죽음을 알게 된다. 물론 다른 이야기로 연산군이 이미 어머니의 폐출과 죽음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는 주장 역시 제기되지만, 결과적으로 폐비 윤 씨의 존재가 연산군 불길을 자극했던 것은 틀림이 없다. 결국 이러한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찾던 연산군에게 1504년 폐비 윤 씨의 복위 문제를 두고 벌어진 갑자사화로 번지게 된다. 이때 연산군은 폐비 윤 씨의 폐위에 영향을 준 숙의 엄 씨와 소용 정 씨를 죽였으며, 인수대비(소혜왕후 한 씨, 1437~1504)는 연산군과의 갈등 속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외에 폐비 윤 씨가 폐출 될 때 찬성했던 이들 역시 처형을 피하지 못했다. 아울러 이미 죽은 한명회(1415~1487)와 남효온(1454~1492), 정창손(1402~1487) 등은 부관참시를 당했으며, 그 가족들 역시 처벌을 면치 못했다. 이처럼 연산군의 분노의 광기가 연일 쏟아지는 상황에서 정국이 안정되지 못한 채 점차 반정의 기운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회묘의 문인석과 석마의 모습

회묘의 무인석과 석마의 측면 모습

뒤에서 바라본 문인석. 한국전쟁의 여파로 인한 총탄의 흔적이 선명하다.

연산군의 폐위, 그리고 ‘회묘’의 격하

결국 이러한 연산군의 광기는 중종반정을 부르게 되고, 그 자신은 신하들에게 최초로 폐위된 왕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폐위된 연산군은 지금의 강화도 교동도로 옮겨지게 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게 된다. 더 이상 왕이 아니었기 때문에 연산군은 묘호를 받지 못한 채 대군의 예로 장사를 지냈으며, 이후 한때 왕비이자 아내인 거창군부인 신 씨의 요청에 의해 연산군의 시신이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에 옮겨져 묻히게 된다. 다시 폐비의 신분이자 ‘회묘’로 격하된 폐비 윤 씨의 묘는 1967년 10월 경희의료원이 들어서면서 쫓겨나듯 서삼릉의 비공개 구역으로 옮겨지게 된다. 한때 여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위치인 왕비까지 올랐던 폐비 윤 씨, 게다가 그녀의 아들은 왕이 되었으니 조선의 여인들 가운데 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을까? 하지만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고 망친데 이어 아들인 연산군이 폐위당하는 단초를 제공했으니 운명 치고는 참 가혹하다고 할 수 있다.

회묘의 뒤에 자리한 석양의 모습

회묘를 수호하는 석호의 모습

폐비 윤 씨의 아들인 연산군과 거창군부인 신 씨의 묘

외형상 ‘회묘’의 묘제 양식은 능에서 묘로 격하되기는 했지만, 묘역의 석물 자체는 파괴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쩐지 ‘회묘’라는 이름과 묘제 양식이 이질적인 느낌마저 들게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역시 묘로 격하된 까닭에 진입 공간의 금천교나 홍살문, 제향 공간의 핵심인 정자각 등은 없는 상태이다. ‘회묘’의 묘역을 자세히 살펴보면 폐비 윤 씨가 잠든 봉분은 난간석으로 둘러져 있으며, 묘의 앞에는 혼유석과 고석이 설치되어 있다. 묘를 수호하는 석양과 석호가 각 2쌍이 자리하고 있으며, 묘의 좌우로 망주석이 설치됐다. 묘의 앞에는 장명등이 세워져 있으며, 좌우로 문인석과 무인석 1쌍, 석마 2쌍이 설치가 되었다. 왕릉으로 조성될 당시 장대석으로 신분의 경계를 지은 상계와 중계, 하계를 뚜렷하게 볼 수 있으며, 묘를 보호하기 위한 곡장 역시 확인된다. 이제까지 돌아본 조선왕릉 중 어지간한 왕릉보다 더 화려한 모습이지만, 화려함 보다는 오히려 침울하고 슬픔 기운이 감도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흐린 날씨 탓일까? 이곳에 대한 굴곡진 사연을 알고 다시 바라본 ‘회묘’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폐비 윤 씨의 생애와 투영이 되는 그런 착각마저 드는 것 같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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