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승자 씨는 평생 간호사로 일을 했다. 1960년대 연세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의대생이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산부인과 의사였던 남편 뒷바라지를 하며 병원 운영을 했고, 남편의 생애 마지막에는 손수 간병인 없이 돌보며 병수발 했다.

"남편이 점점 몸이 굳어가고, 대소변까지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왔어요. 마비가 온 거죠. 60대에 모든 삶을 정리하고 부부가 함께 요양원에 들어와 생활했어요. 그 와중에 미술치료 프로그램을 듣고 코바늘로 인형을 만들었죠. 힘들고 외로운 시간을 인형 만들면서 달랬고, 2012년에는 50여점의 인형을 모아 인형 전시회도 했습니다. 단순한 인형에 눈, 코, 귀, 입, 머리카락 만들고 인형 얼굴에 표정 담고 옷을 만들어 입히고 신발도 신겼죠. 인형에는 모두 남편과의 마지막을 보내었던 순간이 담겨져 있어요. 평생 사랑하면서 지내온 사람이 아파서 병들어서 죽어 가는데 끝까지 돌보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헌신 아닐까요."

한 평생 사랑한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는 일. 쉽지 않다. 남편의 죽음 직전까지 매일 깨끗이 씻겨 옷을 입히고 산책을 하였다. 냄새 날까 봐 수시로 옷을 갈아 입혔고, 기저귀를 바꿔 주었다. 간호사였던 젊은 시절 고생했던 손은 남편을 보내는 일에도 고스란히 사용했다. 그러면서도 눈가의 눈물이 촉촉하게 젖어든다. 이야기 나누다 보니 유난히도 손가락에 크고 빛나게 반짝이는 초록색의 반지가 눈에 띈다. 반지에는 무슨 사연이 있을까?

그레이스 켈리가 청혼 받으면서 끼었다는 다이아몬드 반지와 거의 같은 디자인의 반지라고 자랑을 늘어 놓으신다. 반지의 가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반지를 선물하면서 남편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신다고 한다.

"당신은 이 반지를 끼어도 될 만큼 충분한 자격이 있어!"

아, 어느 남편이 아내에게 비싼 보석을 사 주면서 이런 감동적인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죽은 남편을 기억하면서 매번 이 반지를 낄 때마다 먼저 간 친구 같은 남편을 기억하고, 사랑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사는 애틋한 마음이 느껴진다.

청혼반지, 결혼반지도 아닌... 환갑이 넘은 노년에, 그동안의 수고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에메랄드 반지, 초록색이 영롱하게 빛나면서 주름진 손을 더욱 빛나게 한다. 소녀 같은 감성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항상 간직하고 계시는 목승자 작가를 보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지 배우게 된다.

그녀는 자전적 에세이 <사랑이라는 퍼즐 한 조각>을 출간한 바 있다. 책의 내용 중 남편이 70년대 미국 유학을 가 있을 때 주고받은 편지글을 수록해놓았다. 지금도 가장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다. 연애편지 같은 하루하루의 기록들, 편지지 가장자리 귀퉁이까지 깨알같이 사연을 적어 주고받았던 말. 평생 한 사람에게 헌신하면서 서로 사랑한 부부의 모습은 보석처럼 아름답다.

남편은 먼저 떠나보냈지만 이제는 즐겁게 남은 인생을 살고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두 다리로 여행 다니며, 눈이 침침하여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인형을 만들려 한다. 목승자 씨는 내년 80세를 맞이한다. 딸과 손녀까지 3대가 쓴 책을 출간하고 두 번째 인형 전시회를 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힘껏 삶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만남에 감사하다.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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