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이라고 하면 통상 왕과 왕비, 대비의 능을 말한다. 이러한 범주의 조선왕릉은 42기가 남아 있는데, 이 가운데 지금은 북한 지역인 개성에 자리한 제릉(신의왕후 한 씨, 1337~1391)과 후릉(정종, 재위 1398~1400) 등 2기를 제외한 남은 40기는 서울과 경기도, 강원도 영월 등지에 조성돼 있다. 흔히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하는 것은 이 40기를 말하며, 통상 왕이었기 때문에 연산군(재위 1494~1506)이나 광해군(재위 1608~1623) 역시 왕릉의 범주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반정으로 폐위가 된 까닭에 묘호와 능호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조선왕릉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한다. 물론 조선시대에 왕이었지만 묘호와 능호를 받지 못한 사례가 종종 있는데, 정종의 경우 명에서 내려준 공정왕(恭靖王)으로 불렸을 뿐, 우리가 흔히 아는 정종이라는 묘호는 숙종(재위 1674~1720) 대에 이르러 받게 된다. 또한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사사되었던 단종(재위 1452~1455)의 경우도 노산군으로 강등이 되었다가 역시 숙종 대에 묘호를 받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위의 사례와 달리 연산군과 광해군은 반정으로 폐위된 뒤 다시 복권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시기의 기록은 ‘실록’이 아닌 ‘일기’로 표기되고, 왕의 장례가 아닌 대군의 예로 장례를 치렀기에 그 묘역 역시 초라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오늘은 남양주 진건읍 송능리에 자리한 '광해군 묘'를 통해 광해군의 재위와 묘의 조성 과정 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접근성이 좋지 못한 ‘광해군 묘’. 영락공원으로 향하는 도로를 이용하면 만날 수가 있다.

전면에서 바라본 ‘광해군 묘’의 모습

일부 재평가가 이루어진 광해군의 치세와 몰락

흔히 연산군과 함께 광해군은 폭군의 이미지가 남아있는데, 변명의 여지가 없는 연산군과 달리 광해군은 전란의 수습이나 명, 청 교체기의 동북아 정세에서 상당 부분 인정이 될 만한 치적을 가지고 있다. 선조와 공빈 김 씨의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난 광해군이 두각을 드러낸 것은 임진왜란(1592년) 때였다. 전란으로 급박한 상황에 이르자 광해군은 세자로 책봉이 되고, 분조를 이끌면서 이를 수습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러한 실력주의에 기반을 둔 광해군은 임진왜란을 거치며 자신의 지위를 다지는데 성공을 하지만, 문제는 선조가 새로 들인 계비인 인목왕후 김 씨와의 사이에서 영창대군을 보면서 상황이 묘하게 달라졌다. 당시 광해군의 세자 지위도 아직 공식적으로 명의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였고, 조정에서는 영창대군을 지지했던 서인과 광해군을 지지했던 북인이 충돌을 하는 등 혼란의 양상이 펼쳐졌다. 게다가 선조 역시 방계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가지고 살았기에 내심 영창대군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광해군의 문안조차 거절할 정도로 선조와 광해군의 사이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긴장은 1608년 선조가 세상을 떠나면서 끝을 맺게 된다. 선조의 뒤를 이어 즉위한 광해군은 전란의 수습을 위해 여러 조치를 취하게 되는데, 국방력 강화와 함께 대동법의 시행 역시 광해군 시기에 처음 이루어졌다. 또한 우리나라 최고의 의학서로 손꼽히는 허준의 ‘동의보감’ 역시 광해군 시기에 편찬이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점 이외에 정치적으로 당쟁의 균형과 견제가 필요했음에도 이를 간과했던 점이나 지금은 재평가되고 있지만 당시 조선사회에서 용납하기 힘들었던 ‘숭명반청’의 기류에 반해 중립외교를 시행했다는 점, 자신의 법적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인목대비를 유폐시키고, 인목대비의 아들인 영창대군을 죽이면서 ‘폐모살제’의 윤리적 비난을 받은 것은 왕위를 잃는데 결정적인 명분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무리한 토목공사로 인한 민심의 이반과 궁녀의 신분이었지만 광해군을 조종해 비선 실세의 역할을 했던 김개시 등 정권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 결과 인조반정(1623년)으로 몰락하게 된다.

‘광해군 묘’의 비석. 전면에 ‘광해군지묘(光海君之墓)’가 새겨져 있다.

‘광해군 묘’를 기준으로 우측면에 자리한 문인석과 망주석

좌측면에 자리한 문인석과 망주석

‘광해군 묘’가 송능리에 안장이 되기까지

반정 이후 강화도로 유배되었던 광해군은 이후 제주도로 옮겨져 유배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그리고 이때 광해군의 아들이자 폐세자였던 이지(1598~1623)와 폐세자빈 박 씨도 강화도로 유배가 되었는데, 땅굴을 파서 탈출을 감행했던 이지와 폐세자빈 박 씨는 결국 붙잡혀 자결을 강요당하며 광해군 일가는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나게 된다. 그럼에도 광해군은 여전히 권좌로의 복귀를 포기하지 않고, 오랜 시간을 버티며 살다가 1641년 7월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광해군은 죽기 전 자신의 묘를 어머니의 발치에 묻어줄 것을 유언으로 남기게 되는데, 정적이었던 인조는 광해군의 마지막 소원만큼은 들어주어 1643년 제주도에서 현재의 위치인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로 옮겨지게 된다. 송능리는 광해군의 어머니 공빈 김 씨의 ‘성묘’가 위치한 곳으로 과거 이 지역은 ‘성릉’이 있다 해서 성능리로 불렸다. 이후 1914년 송정리와 성능리가 합쳐지면서 송능리로 변화하게 된다.

‘광해군 묘’의 중앙에 자리한 장명등

장명등에 남겨진 총탄 자국. 한국전쟁 당시 훼손을 피하지 못했다.

배면에서 바라본 ‘광해군 묘’. 한때 왕이었지만 반정으로 초라한 묘역으로 남게 된다.

그나마 접근성이 좋은 ‘연산군 묘’와 달리 ‘광해군 묘’는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데다 마땅한 길이 없다. 유일한 길이라고 한다면 인근의 공동묘지인 영락공원으로 가는 길이 유일한데, 이 길을 통하지 않으면 접근 자체가 힘든 곳이다. 최초 ‘광해군 묘’가 조성이 된 뒤 묘의 관리는 광해군과 숙의 윤 씨의 딸인 옹주가 출가한 음성 박 씨 집안의 후손들에 의해 관리가 되어왔다. 물론 지금은 문화재청으로 이관이 되어 사릉 관리소에서 관리를 하고 있는데, 지금은 비공개지역으로 입장이 제한되고 있다. ‘광해군 묘’의 묘역은 크게 광해군과 문성군부인 유 씨의 쌍분으로 조성이 되어 있으며, 각자의 봉분 앞에는 묘비와 상석, 향로석이 설치돼 있다. 또한 묘를 보호하기 위한 곡장과 좌우로 망주석 1쌍과 문인석 1쌍, 장명등이 설치되어 있는데, 한국전쟁의 와중에 총탄으로 인한 파손 자국이 장명등이나 묘비에 생생히 남겨져 있다. 최근 대중매체를 통해 광해군의 중립외교나 치적들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대두되고 있다. 분명 광해군에 대한 재평가 요소가 많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광해군의 치세에 지나치게 무리한 토목공사로 민심의 이반을 초래했던 것과 정치적인 견제와 균형에 실패한 점, 마지막으로 일개 궁녀 출신의 김개시라는 비선 실세에 의해 정국이 좌우된 점은 역사의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대목이다. 바로 얼마 전에 경험하지 않았던가?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최순실 국정 농단의 아찔함을 말이다.

김희태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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