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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눗방울과 중력파 관측
고재현 교수(한림대학교 응용광물리학과) | 승인 2017.11.13 17:40

수년 전 강원도 화천군에서 겨울철에 열리는 산천어축제에 아이들을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산천어 잡이뿐 아니라 다채로운 행사로도 유명한 축제인 만큼 여기저기서 진귀한 볼거리가 펼쳐졌다. 당시 우리집 아이들의 눈길을 붙잡은 것 중 하나는 한 공연자가 만들어 뿌리던 커다란 비눗방울이었다. 사람 키에 맞먹는 크기의 비눗방울 표면에 아롱거리는 무지개 빛깔의 매력에 아이들이 푹 빠져버린 것이다.

비눗방울이나 아스팔트 위 기름막 위에 만들어지는 무지개 빛깔의 비밀은 빛과 빛의 ‘만남’이다. 비눗방울이나 기름층의 얇은 막으로 쏟아지는 햇빛의 일부는 막의 위 표면과 아래 표면에서 반사가 되어 우리 눈에 들어온다. 빛은 수면파나 음파와 같은 파동이므로 두 빛의 파동이 만날 때 진동하는 전기장의 산과 골이 만나면 빛이 사라지지만 산과 산 혹은 골과 골이 만나면 빛의 세기는 그만큼 더 강해진다. 막의 두 표면에서 반사되어 막을 떠나면서 산과 산이 만나 강해지는 색깔은 막의 두께에 따라 달라지므로 우리는 비눗방울이나 기름층의 막의 두께가 변해감에 따라 다양한 색깔의 빛을 보게 되는 것이다.

올해 노벨물리학상은 블랙홀처럼 엄청난 질량을 가진 물체들의 병합에 동반되어 발생하는 중력파의 검출을 주도했던 세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시공간의 미세한 뒤틀림이 빛의 속도로 퍼져나가는 이 현상은 아인슈타인에 의해 백여 년 전에 예측되었고 중성자별 쌍성의 궤도 변화 등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으나, 약 2년 전 처음으로 직접적인 측정에 성공했다. 이 성공에는 비눗방울의 두 표면에서 반사된 빛의 만남과 같은 간섭 현상이 이용됐다. 과학자들이 구축한 장치는 엘(L)자 형으로 정밀하게 배치된 초정밀 거울들로 구성된 간섭계다. 이 장치가 들어선 곳의 정식 명칭은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이다. 서로 직각으로 놓인 두 쌍의 거울들 사이를 지나온 두 빛이 만날 때, 빛이 사라지는 상쇄 간섭의 조건으로 만난다고 하자. 중력파가 지나가며 거울들의 상대적 거리를 변화시키면 상쇄 간섭 조건이 깨지면서 희미한 빛의 변화가 감지될 것이다. 이런 빛의 변화 패턴을 측정해 중력파의 존재, 중력파를 발생시킨 별들의 성질이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중력파 연구팀은 최근 중성자별의 병합에 따른 중력파 신호의 측정에도 성공함으로써 빛을 포함한 전자기파 측정에 주로 의존하던 천문학의 지평을 근본적으로 넓혔다. 소위 ‘다중 신호 천문학’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인류는 현재 간섭계 속에서 수백 킬로미터를 내달려 만난 두 빛이 자신들과 조우한 중력파의 비밀을 한 꺼풀 드러내며 새로운 천문학의 출발을 알린 기념비적 순간에 서 있다. 우리는 보통 일상 속에서 새로운 만남과 인연에 설레곤 한다. 그 만남을 통해 맺어질 관계들이 우리의 삶과 미래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빛의 만남, 즉 간섭이라는 잘 알려진 현상을 통해 중력파와의 만남에 성공한 인류는, 이렇게 맺은 새로운 인연을 통해 무엇을 보고 어떤 인식의 지평에 도달하게 될까? 각고의 노력으로 과학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과학자들에게 박수와 성원을 보낸다.

고재현 교수(한림대학교 응용광물리학과)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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