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에는 ‘광해군 묘’를 비롯해 공빈 김 씨의 ‘성묘’와 함께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안빈 이 씨의 ‘안빈 묘’가 자리하고 있다. 안빈 이 씨(?~1693)는 효종의 후궁으로 엄격한 신분질서의 사회였던 탓에 세상을 떠난 뒤 묘(墓)로 조성이 되었지만, 후궁의 묘역으로 드물게 사적 제366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앞선 광해군(재위 1608~1623)이나 공빈 김 씨(1553~1577)의 경우 대중매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어 나름 인지도가 있는 반면 안빈 이 씨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로 미지의 인물이다. 때문에 조선의 역사를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기 힘든 탓에 앞선 묘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안빈 이 씨가 역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역설적이게도 병자호란과 관련이 있는데, 남한산성에서 47일간 항전하던 인조(재위 1623~1649)와 조정은 결국 청 태종에게 ‘삼배구고두의 예’를 행하며 항복을 하게 된다. 이를 우리 역사에서 ‘삼전도의 굴욕’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때의 여파로 인조의 맏아들인 소현세자(1612~1645)를 비롯해 차남인 봉림대군(효종, 재위 1649~1659)과 삼학사를 비롯한 대신들이 청나라의 볼모로 심양에 끌려갔다. 당시 안빈 이 씨는 봉림대군의 첩의 지위에 있었는데, 이때 봉림대군을 따라 심양으로 함께 가서 볼모로 있는 동안 보필하게 된다.

전면에서 바라본 ‘안빈 묘’의 모습

봉분 앞에 세워진 ‘안빈 묘’의 묘표. ‘조선국안빈경주이씨묘표(朝鮮國安嬪慶州李氏墓表)’라 새겨져 있다.

묘역의 중앙에 세워진 장명등과 뒤로 보이는 상석과 향로석

■ 효종의 즉위와 함께 후궁이 된 안빈 이 씨, 숙종 대에 공적이 인정되어 빈으로 책봉되다

심양에서의 볼모 생활을 할 당시만 해도 봉림대군은 왕위 계승과는 거리가 먼 종친의 한 사람에 불과했다. 당연히 인조의 맏아들인 소현세자와 세자의 원손인 경선군(1636~1648)이 있었기 때문에 종법에 따르면 봉림대군은 왕위에 오를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인조와 소현세자의 사이가 정적으로 변화하면서, 1645년 조선으로 귀국했던 소현세자는 불과 2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이때 인조는 원손인 경선군이 있음에도 세자에 봉림대군을 책봉하는 무리수를 두게 되는데, 당시 조정의 대신들은 이러한 인조의 무리한 결정에 일제히 반발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조가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이어 며느리인 강빈(？~1646, 영회원)을 자신을 독살하려 했다는 혐의를 씌워 사사(賜死)했다. 그리고 남은 소현세자의 세 아들은 모두 제주도로 유배를 보내게 되는데, 이때 원손인 경선군 이석철과 둘째 경완군 이석린(1640~1648)은 유배지였던 제주도에서 세상을 떠나게 되고, 셋째인 경안군 이석견(1644~1665)만이 유일하게 생존하게 된다. 세자에 책봉된 봉림대군은 인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이가 바로 효종이다. 효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안빈 이 씨는 후궁이 되었는데, 효종이 재위할 당시에는 높은 품계의 후궁이 아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효종의 아들인 현종 때에 내명부 품계 상 종 2품인 숙의(淑儀)로 책봉이 되는 것을 시작으로, 숙종 때에 이르러서야 효종의 볼모 생활을 보필했던 공적을 인정받아 정 1품인 빈(嬪)에 책봉이 되었다. 그렇게 천수를 누린 안빈 이 씨는 1693년에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숙종은 이러한 안빈 이 씨를 위해 조선 왕실에서 별도로 제사를 지내주는 조치를 취하게 된다. 통상 제사를 지낼 때 대(代)의 수가 다 될 경우 종묘의 본전에 있던 위패를 영녕전으로 옮기는데, 이를 조천(祧遷)이라 했다. 하지만 숙종은 안빈 이 씨의 위패는 조천하지 말고, 왕들에 의해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배려를 했는데, 당시의 기준으로 보자면 안빈 이 씨는 공적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안빈 묘’의 문인석에서 바라본 모습

묘역을 중심으로 좌측에 자리한 동자석과 망주석

우측에 자리한 동자석과 망주석의 모습

배면에서 바라본 ‘안빈 묘’의 모습

■ 꼭꼭 숨겨진 역사의 현장 ‘안빈 묘’

이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안빈 이 씨의 행적만큼이나 ‘안빈 묘’ 역시 그 존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러한 대중의 인식처럼 ‘안빈 묘’는 꼭꼭 숨겨진 장소와 같아서 초행길에 이곳을 찾기란 쉽지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생각보다 접근성 자체는 나쁘지가 않은 편으로, 현재 ‘안빈 묘’는 비공개 지역으로 관람이 제한된 경우인데, 비공개 지역 밖에서도 묘의 석물이나 봉분의 형태 등은 관람이 가능하다. 묘역은 크게 중앙에 봉분이 세워져 있고, 봉분을 보호하기 위한 곡장과 함께 묘표가 세워져 있다. 묘표에는 ‘조선국안빈경주이씨묘표(朝鮮國安嬪慶州李氏墓表)’라 새겨져 있으며, 묘표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설치되어 있다. 조선왕릉 중 능(陵)이나 원(園)과 비교할 때 묘와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이 상석과 향로석의 부분으로 통상 능이나 원의 경우 별도의 제향 공간이 정자각에서 제사를 모시기 때문에 상석과 향로석이 설치되지 않고, 혼이 나와서 논다는 의미에 혼유석과 고석이 설치된다. 반면 묘의 경우 별도의 정자각이 세워지지 않기 때문에 통상 봉분 앞에 있는 상석과 향로석에 음식과 향을 피우고 제사를 지내는 차이점이 있다. 한편 봉분의 좌우에는 망주석과 동자석, 문인석이 각 1쌍씩 세워져 있다. 후궁의 묘역으로는 드물게 사적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안빈 묘’는 새로운 역사의 현장으로 주목해볼 만한 공간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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