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죽을 뻔 했던 교통사고. 병원생활 8개월. 수혈을 20팩 가까이 할 정도로 피가 다 빠져나갔던 일. 죽지 않은 것이 기적이었다. 한 쪽 다리의 장애를 갖게 된 것으로 당시의 사고 흔적이 남아있다. 최종현 수원시장애인복지단체연합회 회장의 과거다. 그에게 운명 같이 다가온 것은 바로 1990년 한국유네스코가 ‘한국청년해외봉사단’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첫 사업의 해외봉사단으로 참가한 일이다.

“수술과 입원 이후 춘천한림대병원을 오가면서 통원치료를 할 때였어요. 터미널에서 버스 타기 전 중앙일보 신문 한 장을 사들었죠. 내 눈에 띈 한 줄의 광고 문구. ‘해외청년봉사단 모집’ 이었습니다. 한국유네스코위원회 주최의 2년간 해외봉사활동이었는데 분야가 축산, 잠업, 기계가공선반, 행정 등의 기술 봉사직이 많았어요. 그 중 ‘축산’이라는 분야가 눈에 확 띄었습니다.”

대학의 축산학과를 나오진 않았지만 축산 전문가보다도 훨씬 실무 경험이 많았던 그였다. 가야 할 곳은 바로 필리핀의 농가. 인공수정사 자격도 갖고 있고, 직접 축산 농가를 운영한 경험도 있다. 한국 유네스코 최초의 봉사단, 한국청년해외봉사단 1기로 필리핀의 민다나오 섬으로 떠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하여 필리핀의 꼬따바또 (south Cotabato) 지역에 파견되었고, 그곳 농촌지도소의 축산 분야의 지도사로 2년간 일하게 되었다. 당시 했던 일은 가축들의 사양기술교육, 축산방역활동, 질병예방접종활동, 가축의 분만, 인공수정, 청소년축산교육센터 설립 등이다.

“축산 시험장에서 우량 수소의 정자를 냉동시킨 것을 암소의 배란기에 인공수정하여 임신을 하도록 만드는 일을 가장 많이 하였습니다. 인공수정으로 품종을 개량하는 과정이에요. 많은 소들을 인공수정으로 임신을 시켜 새끼를 낳게 하고, 수소 거세 작업도 하고. 지금의 제 모습과는 완전 거리가 멀죠?”

그의 인생은 하나같이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바람이 이끄는 대로 향해 갔을 뿐이다. 필리핀으로 떠나지 않았더라면, 아버지가 축산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대학을 제대로 졸업했더라면,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신문을 사지 않았더라면, 봉사단 광고 문구를 보지 않았더라면... 만약은 없다.

하지만 이후 그는 모든 것을 잃고, 완전한 실패의 상태도 경험했다. 코이카 1기 봉사단으로 필리핀에서의 봉사활동 2년, 다시 시작된 짧은 직장생활. 하지만 직장 상사의 권유로 1996년도부터 사업을 시작한 것이 화근. 다들 힘들다고 했던 IMF 때도 잘 되었다. 그렇지만 1999년 어마어마한 금액의 부도가 났고,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렸다. 장애인복지단체연합회 회장 최종현 씨의 지난 삶이다. 도피하듯 도망가 버렸다. 빚쟁이는 몰려들고 은행의 독촉은 끝이 없고,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는 어리고, 아내 역시 어렸을 때였다. 내가 시작한 일을 과연 내가 제대로 매듭지을 수 있을까? 그러나 결과적으로 모든 빚들을 다 갚고, 자신의 새로운 인생 역사를 써냈다.

그에게는 인생 전체에서 2년간의 필리핀에서의 봉사활동이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한다. 아직도 눈에 선한 필리핀의 순박한 사람들. 현지 농가에서 손으로 밥을 먹고, 현지어로 소통하며, 스쿠터를 타고 누볐던 지역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사람마다 인생의 반짝이는 순간이 있다. 젊은 날의 도전과 모험이 중년 이후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청년해외봉사단 1기로 시작된 봉사의 삶이 이제는 장애인복지단체연합회 회장을 하면서 약자를 돌보는 일로 자연스레 연결된 건 아닐까.

“봉사단 출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앞으로도 봉사하는 삶을 살게 될 근원, 정신의 힘을 그 때 모두 배운 듯해요!”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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