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롱패딩(구스다운점퍼)을 사기 위해 전날부터 백화점 입구에서 밤을 새운 사람들. 고가의 패딩은 아니지만 ‘평창’ 이라는 희소성 그리고 실용성과 유행이 교묘하게 맞물려져 인기가 치솟았다. 평창 롱패딩 이전에도 10대 중고등 사이에서 불었던 ‘등골브레이커’ (부모의 등골 휘게 하는 제품) 노스페이스 등은 군중심리를 이용한 고가 상품이었다.

사실 롱패딩은 운동선수들의 활동성과 보온성 차원에서 벤치에서 입던 옷이다. 축구선수들이 두툼한 다운재킷을 걸치고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은 그동안에도 여러 번 비춰져 왔다. ‘벤치파카’라는 호칭을 갖고 있다. 유니폼 한 장으로 추위를 이겨내야 하는 선수들을 위한 무릎을 덮는 보온성 다운재킷이다. 지난 해 말부터 롱패딩의 유행 조짐이 보였고, 올겨울 시즌 본격적인 대목이 시작됐다. 이제 브랜드에 상관없는 ‘롱패딩 광풍’까지 불고 있다. 고가, 저가 브랜드 관계없이 없어서 못 파는 옷이 되어 버렸다. 곧이어 다가올 평창올림픽처럼 겨울에 이루어지는 운동경기에서 롱패딩은 안성맞춤. 춥고 열악한 겨울철 야외 스포츠 경기 관람에는 롱패딩이 필수가 된다.

하지만 국민 아이템이 되고 있는 롱패딩은 국민 교복이 되는 듯하다. 평창롱패딩은 10만원 선으로 비교적 저렴하지만, 할인매장에서 판매하는 것은 30만원대, 시중가는 50~70만원, 명품은 1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신종 ‘등골브레이커’가 되고 있다.

왜 이렇게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획일적인 유행에 민감한 걸까. 한 고등학교 급식실 풍경을 담은 사진이 SNS에 올라온 것을 보니 학생 대다수가 무릎 아래 덮는 긴 롱패딩을 입고 있었다. 한 반 30명 학생 중 28명이 입은 곳도 있었다. 너도 나도 롱패딩 열풍에 휩싸여 롱패딩을 입지 않으면 대세에 낄 수 없는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같은 옷을 입고 있어야 안정감을 느끼는 심리. 튀지 않으려 하지만 그 속에 개성은 전무하다.

똑같은 옷을 입는 대한민국 사회의 모습은 여러 계층에서 발견된다. 사람들이 줄지어 산을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 아줌마들은 다 같은 헤어스타일, 핑크색이나 주황색 같은 등산복을 입는다. 커플은 커플 티셔츠를 맞추어 입어야 한다. 짝퉁이라고 할지라도 명품로고가 박힌 가방을 너도 나도 들고 다닌다. 화장하는 스타일도 유행 따라 비슷비슷하고, 같은 성형외과에서 수술한 듯 얼굴도 똑같다.

대중매체에서 소개되는 상품들을 먹고, 입고, 발라서 타인과 비슷해져야 만족하는 심리는 자유의 상실이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현대인의 자동인형화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다. 주입된 사고대로 행동하고, 생각 없는 기계처럼 무의식적으로 따라한다. 남과 달라 보이는 것을 극도로 피하고, 군중 속의 보이지 않는 개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편하게 여긴다.

다양성이 사라진 획일화된 자연환경에서는 생물이 멸종 위기를 맞는다. 식물다양성이 생태계의 지표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똑같은 옷, 사회적 가치와 통념, 교육 등으로 만들어진 사람들은 생존 가능성이 높을까? 교복이나 군복, 유니폼 등은 동질감이나 통일감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는 다양성을 말살시키고, 창의성을 휘발시키는 행동이다.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인 발상이다. 다품종 소량시대, 4차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평창 롱패딩은 맞지 않는 선택 아닐까.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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