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역사적 사건이 때론 뜻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 내곤 한다. 긴 역사의 호흡 속에서 어떤 역사적 현장에 담긴 의미는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긴 여운을 남기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화성시라는 물리적 공간에 담긴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화성 당성’에 대해 알고 넘어가야 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화성 당성’은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에 있는 구봉산 정상을 감싸고 있는 산성으로, 발굴조사의 성과로 인해 신라 때 쌓은 ‘당항성’인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화성 당성’이 ‘당항성’이라는 사실이 왜 이렇게 중요하게 인식이 되었던 것일까?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삼국의 상황과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세를 이해해야 그 의문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국보 제3호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신라 진흥왕의 북진의 상징으로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 신라 북진의 상징이자 삼국통일의 교두보가 되었던 ‘화성 당성’의 가치

삼국시대는 흔히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경쟁하던 시대를 말한다. 통상 한강 유역을 장악했던 국가가 전성기를 보내게 되는데, 5세기의 삼국의 상황은 광개토대왕(재위 391∼413)과 장수왕(재위 413~491)을 거치며 가장 넓은 영토와 국력을 자랑했던 고구려와 이러한 고구려에 수도인 하남 위례성이 함락 당하고 결국 도읍을 웅진(현 공주시)으로 천도해야 했던 백제, 그리고 고구려에 대항하기 위해 백제와 나제동맹을 맺은 신라로 정리할 수 있다. 이후 6세기 초를 지나며 고구려의 쇠퇴가 분명해지는 시점에 이르면 백제의 성왕(재위 523~554)과 신라의 진흥왕(재위 540~576)이 공동의 적인 고구려를 몰아내고 한강유역을 차지하는 성과를 얻게 된다. 이때 한강을 중심으로 북쪽은 신라가, 남쪽은 백제가 가지는 것으로 합의를 했는데, 진흥왕은 이 약속을 깨고, 한강유역을 독차지하며 신주를 설치한다. 이에 격분한 백제의 성왕은 대 신라 전쟁에 돌입하게 되고, 관산성 전투에서의 패전으로 백제는 성왕 자신을 비롯해 3만의 군사가 몰살을 당하는 참패를 당하게 된다. 이 전투로 인해 백제는 수비에만 급급한 수세적인 상황으로 몰리게 되고, 대외적으로 가야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하며 신라가 가야를 병합하는 과정을 그대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신라의 북진이라는 역사의 부산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당항성(黨項城)’인데, 수도가 동남쪽에 치우친 신라로서는 당항성이 중국과 직접적인 교통로였기에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에 속했다고 할 수 있다.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화성 당성. 신라 때 쌓은 최초의 성벽이다.

■ 삼국통일 과정에서 등장한 ‘화성 당성’의 중요성

기록에서 ‘당항성’이 등장하는 사례는 ‘삼국사기’와 중국 측 사료인 ‘신당서’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우선 ‘삼국사기’의 기록은 선덕여왕이 재위한 642년 8월의 기록으로 ‘백제가 고구려와 모의해 당항성을 빼앗아 당나라로 통하는 길을 끊으려 하기에, 이에 당 태종에게 위급함을 알렸다’라고 나온다. 또한 당시 중국 측 사료인 ‘신당서’ 역시 당항성 탈취와 관련한 신라의 위급함을 알고, 이에 사농승 '상리현장'에게 조서를 주어 화해할 것을 주문한 기사를 통해 ‘당항성’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당시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동시다발적인 압박에 큰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당항성’의 탈취 시도가 있던 바로 그때 신라의 서쪽 변경 지역에서는 40개성의 함락과 요충지인 ‘대야성(현 경남 합천군)’의 함락이 있었다. ‘대야성’이 어떤 곳인지는 훗날 후백제의 견훤이 이곳을 함락시킨 뒤 바로 수도인 ‘서라벌(현 경주시)’로 진격했던 사례에서 알 수 있다. 이처럼 중요한 요충지였던 대야성이 함락이 되었음에도, 반대로 서라벌에서 멀리 떨어진 ‘당항성’을 끝까지 지켜냈던 신라의 모습에서 당시 당항성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평가해볼 수 있다. 결국 신라는 ‘당항성’을 통해 당나라와 군사동맹으로 발전하게 되고, 삼국을 통일하는 교두보로 삼았기에 그 의미는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4차 발굴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한산(漢山)명 기와

또 다른 명문기와인 본피(本彼)명 기와. 신라 6부 중 한 곳인 본피부가 화성 당성의 축조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화성 당성’에서 출토된 유물이 들려주는 이야기

‘화성 당성’은 최근 5차 발굴조사가 진행이 되고 있는데, 그간의 발굴조사 결과 ‘화성 당성’의 진위를 밝히는데 중요한 유물이 출토되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가운데 중요한 유물이라고 하면 명문기와의 출토를 들 수 있는데, 크게 3차와 4차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당(唐)’, ‘한산(漢山)’, ‘본피(本彼)’가 새겨진 기와를 들 수 있다. ‘당(唐)’의 경우 당항성의 이름을, ‘한산(漢山)’의 경우 과거 고구려 때 한산으로 불렸다는 기록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본피(本彼)’의 경우 신라 6부 중 한 곳인 본피부가 화성 당성의 축조에 관여한 것을 알려주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화성 당성’의 망해루지에서 흙으로 빚은 말 모양의 토제마가 다량 출토가 되었는데,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한 제사에 쓴 것으로 보인다. 실제 부안 죽망동 유적이나, 영암의 남해당지 등 해안가에 인접한 곳에서 토제마가 출토가 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 하고 있다. 또한 중국과의 교역을 증명할 수 있는 형요산 백자완 등의 출토 등도 관심 있게 지켜볼만하다. 이와 함께 발굴조사를 통해 최초 신라가 쌓은 ‘당항성’의 성벽이 확인이 되었는데, 구봉산의 산허리를 감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으로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화성 당성’이 ‘당항성’이라는 사실은 이제 확실시된다고 볼 수 있다.

남양 홍씨의 발상지로 알려진 화성 당성과 ‘당성사적비’

구봉산의 정상에 위치한 망해루지. 화성시를 알기 위해서는 화성 당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 화성시의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화성 당성’

화성 당성이 위치한 곳은 고구려 때 ‘당성군(唐城郡)’으로 불리던 곳이다. 이 시기 당나라 사람으로 고구려를 거쳐 신라로 넘어왔던 ‘홍천하’라는 인물이 있는데, 태자의 스승인 태자대사로 봉해진 ‘홍천하’는 신라에서 유학 발전의 공을 인정받아 ‘당성백’으로 봉해지면서, ‘당성 홍씨’의 시조가 되었다. 지명의 변화에 따라 당성이 남양으로 변해서, 지금은 ‘남양 홍씨’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 때문에 ‘남양 홍씨’의 발상지라고 해서 화성 당성 내에는 ‘당성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한편 신라 경덕왕 때는 ‘당은군(唐恩郡)’으로 변경이 되지만, 이내 옛 이름으로 돌아왔다가 고려 충선왕 때 ‘남양부(南陽府)’로 승격이 되었다. 여기에 대해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망해루에 대한 언급을 보면 두 조정의 ‘대모(大母)’로 인해 남양부로 승격이 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군상(君上)’, 즉 임금이 나온 곳이라는 대목이 있어 시기적으로 추정해보면 대모의 경우 명덕태후(공원왕후) 홍씨일 가능성이 높고, 군상의 경우 충숙왕과 명덕태후 홍씨의 아들인 공민왕일 가능성이 높다. 이후 ‘남양부’는 조선 때 ‘남양도호부’로 불리다가 고종(1895년) 때 ‘남양군’으로 변경이 되고, 일제강점기인 1914년 수원군으로 통합이 되었다. 이 때문에 지금도 화성과 수원, 오산은 하나였다는 인식이 자리하게 되었으며, 해방 이후 수원과 오산이 분리가 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초기 화성시의 모습은 ‘화성 당성’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최근 화성 당성의 5차 발굴조사가 진행이 되고 있기에 발굴 성과가 기대되고 있다.

김희태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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