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작가의 미발표작이자 유작인 동화 『금강산 호랑이』가 출간됐다. 애비 없는 자식이라고 놀림 받던 유복이는 금강산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아버지 원수를 갚기 위해 금강산으로 떠난다. 이 책은 1990년부터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한 정승각 작가의 그림으로 탄생되었다. 놀라운 것은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한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계약이 된 책이라고 한다. 올 6월 일본, 9월 한국에서 동시에 출판됐다.

“금강산 호랑이 이야기가 일본에서는 원래 유명해요. 일제시대 초기 일본에 이미 건너갔고 한국 전래동화 중 금강산 호랑이는 그림책도 나와 있고, 음악극으로도 성황리에 공연되곤 하니까요. 『어린이 그림책의 세계』를 쓴 일본의 ‘마쓰이다다시’ 선생이 일본사람이 그린 호랑이 그림이 아니라 한국 대표작가인 권정생, 정승각이 책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권 선생님 살아계실 때 17년 전 계약한 건데 2007년 돌아가실 때에도 완성 못했어요. 계약을 파기하고 싶은 맘이었죠. 그런데 일본 복음서관 출판사 구로즈미 게이코 편집자가 끝까지 기다리겠다고 하는 거에요.”

이렇게 탄생된 책이 바로 『금강산 호랑이』다. 다행히 정승각 작가는 금강산을 자녀와 함께 다녀온 적도 있다. 그림책으로는 원작이 길어서 분량이 상당하다. 하지만 권정생 선생님은 한 자도 고치지 말라고 했기에 손을 대지도 못했다. 특이하게 이 책의 그림은 붓으로 그림을 그린 게 아니다. 숯을 갈아 아교에 개고 나무젓가락에 찍어서 그렸다. 투박하고 거친 느낌이 살아있다. 금강산 호랑이를 어떻게 그려내야 할지 몰라서 17년간 방황했던 시간이 한 순간에 좁혀졌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주인공 유복이의 혼인 장면이다. 평생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던 권정생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환한 장면으로 그렸다고 한다.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림책을 다시 보니 보이지 않던 그림도 세세하게 느껴진다.

그는 1952년 창립된 그림책 전문 일본 출판사인 후쿠인칸 쇼텐에서 발행된 세계 민담의 한국편에서 도깨비 그림을 그렸다. 한국 민담의 도깨비를 그린 작가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 수많은 민화가 있지만 도깨비는 실체가 없다. 사실 도깨비는 인간의 권력, 물욕, 성욕 등의 욕망이 외형적인 형태로 나타난 거다. 도깨비는 어쩌면 인간 자신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하여 정승각 작가는 그림책을 그리게 된 걸까. 1988년 권정생 시집의 시화 공모에 참가하게 된 것이 운명적 만남의 시작이었다.

“권 작가의 시집이 처음 나왔는데 그림 없이 시만 잔뜩 있는 책이었어요. 출판사에서 ‘시화를 그려주세요’라는 공모가 나왔는데 그게 1988년도에요. 채택이 되면 전속작가로 예우해주고, 재판할 때 그림을 넣어주겠다는 조건이었어요. 저는 1년 동안 권정생의 시를 읽으면서 목판화 11점으로 시화를 완성했어요. 권정생 작가의 시골정서, 시의 운율을 그림으로 그리기 위해선 도시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시골로 내려갔죠. 그렇게 그림이 들어 간 시집은 바로 나올 수 없었어요. 초판 시집이 다 팔린 뒤에서야 재판을 찍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 인연으로 시화 작업을 했던 충주에서 살게 되었지요.”

하지만 1년간 권정생의 시를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애쓰면서 권 선생의 세계관과 가치관에 녹아버렸다. 권 선생의 작품으로 좀 더 깊게 들어가고 싶어졌다. 그 때, ‘내가 강아지똥을 그림책으로 그려야겠다’고 결심했다. 강아지똥은 1996년 출간된다. 8년 만에 책 한 권 내면서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출판사에 포트폴리오 갖고 다니면서 삽화를 의뢰받아 그렸다. 현암사의 아동문고 1번이 정승각 작가의 책이다. 메이저 큰 출판사에 강아지똥 기획안을 여러 번 넣었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러다가 ‘길벗어린이’라는 갓 문을 열었던 출판사와 함께 손을 잡게 된다. 바로 출판을 결정하고 다음 날 안동으로 내려가 권정생 작가와 이야기했다.

“서양화를 공부한 저는 비로소 사물 보는 방법을 ‘강아지똥’에서 배웠어요. 권정생 선생님 글에는 오롯이 오감이 살아있거든요! 글에서 냄새도 나고 촉감도 느껴져요. ‘비는 사흘 동안 내렸어요. 온 몸이 자디잘게 부서졌어요’라고 쓴 부분은 비를 맞지 않고서는 표현할 수 없는 글이에요”라고 말한다.

평생 권정생 작가의 사상과 가치관을 따라 살아있는 그림을 그리려고 애쓰는 정승각 작가와의 우연한 만남. 한 사람의 세계관에 푹 빠져드는 시간이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강아지똥’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그림과 글이 유난히도 조화롭게 느껴진 이유가 다 있었다. 정승각 작가는 오랫동안 아이들과 벽화를 그리는 작업을 했고, 지금은 ‘오감 살리는 그림놀이’와 ‘마음이 자라는 그림놀이’를 하고 있다. 혼자가 아닌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의 그림을 그리기 위한 노력이다.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저작권자 © 뉴스타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