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사자성어로 ‘파사현정(破邪顯正)’ 이 선정됐다. ‘사악함을 부수고 바름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촛불혁명으로 인한 우리 사회 변화를 상징하는 말이다. “사견(邪見)과 사도(邪道)가 정법(正法)을 눌렸던 상황에 시민이 올바름을 구현하고자 촛불을 들어 나라를 바르게 세울 기반이 마련됐다”며 “적폐청산이 제대로 이뤄졌으면 한다”고 최경봉 교수는 교수신문에 보낸 추천서에 파사헌정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많은 어려움이 있던 한해였다. 사람살이가 다 그러하듯 이런 저런 어려움을 겪고 지혜롭게 극복하고 다시는 똑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나라살림이든 각 가정의 살림이든 규모의 차이일 뿐 별반 다를 게 없다. 나라 살림은 국가원수나 국회의원이 하는 것이고 가정살림은 가장을 비롯한 능력 있고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꾸려나가는 차이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했듯 가장이 바로서야 집안이 편하고 집안에 편해야 하는 일들이 수월하고 성공적으로 이뤄진다. 한 해를 돌아보며 꼭 되새기고 싶은 말이다.

올해의 사자성어인 파사현정, 돌이켜보면 많은 일이 있던 해이다. 국민들은 좀 더 제대로 된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정의가 바로 선 나라를 만들자고 몸으로 외쳤고 그 외침이 결국은 나라를 바꿨고 하면 된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나라살림의 일꾼이 바뀌었으니 좀 낳아질까 기대했지만 사는 일이 그리 녹록하지는 않았다. 지인 중 누군가는 사는 일이 너무 힘들고 팍팍하다며 방안에 번개탄을 피워 목숨을 끊었고 또 다른 이는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이혼을 했다. 이혼이 뭔지도 모르는 어린 자식을 품고 한없이 눈물을 흘리던 그녀의 모습이 생생하다. 열심히 산다고 살아보지만 쉽지만은 않다.

10여년 같이 일하던 직원이 다른 일을 해보겠다고 나섰다. 사양길로 치닫는 피아노 업계의 사정을 볼 때 말릴 수도 없다. 잡을 수도 없고 내몰기도 마음이 아프다. 불투명한 미래에 더 이상을 어찌해볼 수가 없다고 털고 나섰다.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조차도 못하고 돌아서는 등 뒤를 한없이 바라보았다. 속울음을 삼키고 또 삼켰다. 본인도 결정을 내리기까지 많은 고통과 번뇌가 있었을 것이고 두려움 또한 컸을 텐데 용기를 내 준 것이 고맙고 좀 더 견뎌보자고 말릴 수 없는 것이 미안했다. 피아노뿐만 아니라 사양길로 치닫는 업종이면 많은 이들이 겪는 고통이고 힘겨움 일거다.

다 같이 잘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한 목소리로 외친다. 일자리를 늘리고 시간당 최저임금을 정했다. 한쪽에서는 환호했고 영세자영업자의 한숨은 깊어졌다. 인건비가 부담스러워 가족끼리 영업하는 업자들이 많다. 하루 8시간씩 주 5일 근무로 삶의 질을 높이자고 소리치지만 자영업자들에겐 먼 나라이야기다. 토요일은커녕 일요일에도 일하고 아침에 문 열면 밤 9시가 넘도록 손님을 기다린다. 그나마 장사가 잘되면 보람되고 힘이 나겠지만 월세내기도 빠듯해서 발 동동 구르다 결국은 보증금 다 까먹고 맨 몸으로 쫓겨나다시피 폐업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게 영세업자들의 현실이고 우리네 삶의 모습이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고 한다. 삶의 질을 높이자고 한다. 꼭 필요하고 실현돼야할 일이다. 새해에는 정말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탁상행정이 아니고 수치상에 의한 가치실현이 아닌 삶의 현장에서 발로 뛰고 정말 낮은 곳 어려운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세상, 살맛나서 콧노래가 절로 나고 신나서 하는 일이 즐거워지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한인숙(시인)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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