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에 자리한 ‘소령원(昭寧園)’은 영조(재위 1724~1776)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1670~1718)의 원역이다. 영조의 어머니로 잘 알려진 숙빈 최씨는 사극이나 드라마를 통해 자주 접할 수 있어 제법 인지도가 있는 편인데, 대부분 숙빈 최씨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수리 출신의 낮은 신분과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희빈 장씨일 것이다. 가장 먼저 숙빈 최씨의 낮은 신분은 아들인 영조(연잉군, 재위 1724~1776)에게 혈통과 관련한 콤플렉스를 안겨주었다. 이는 훗날 아들인 사도세자에게 지나치게 학문을 강요하며 갈등을 빚게 되고, 결국 임오화변(1762)의 비극을 부르게 된다. 이와 함께 숙빈 최씨에게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희빈 장씨(1659~1701)와의 궁중 내 갈등 역시 관심의 대상으로, 희빈 장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무고의 옥’의 결정적인 고변을 한 것이 숙빈 최씨였다. 한편 숙종이 희빈 장씨를 사사하는 과정에서 다시는 궁녀 출신이 왕비에 오르지 못하도록 교지가 내려진 건 숙빈 최씨의 입장에서는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숙종의 시대는 정치의 분열을 조장했던 환국정치와 이를 활용하기 위한 도구로 여인들을 이용한 경우로, 꽃들의 전쟁으로 표현되는 인현왕후 민씨(1667~1701)나 희빈 장씨, 숙빈 최씨 모두 결과적으로 숙종의 왕권 강화에 이용이 된 경우였다. 가장 화려했고, 불꽃같은 시대를 살았던 숙빈 최씨는 이후 숙종에 의해 외면을 당하고, 출궁을 하게 되는데, 이때 연잉군과 함께 사가에서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숙빈 최씨의 말년과 관련한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알기가 어렵지만, 세상을 떠난 숙빈 최씨의 장지와 관련해 숙종의 냉대 속에 연잉군이 직접 지관을 데리고 찾아다닌 끝에 결정된 곳이 바로 현재의 위치인 ‘소령원’이다.

전면에서 바라본 ‘소령원’의 능침 공간

묘표와 상석, 향로석이 설치된 ‘소령원’의 모습

‘소령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진 신도비

■ 어머니의 명예 회복을 위해 등장한 ‘소령원’의 신도비

다른 원에서는 그 예를 찾기 어려운 것이 ‘소령원’에 자리하고 있는데, 바로 ‘소령원’의 입구에 세워진 신도비다. 통상 신도비는 왕이나 종 2품 이상의 벼슬을 지낸 이들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으로, 일반적으로 널리 통용이 있어 이게 왜 특별한가 의아함이 들 것이다. 하지만 그 범위를 조선왕릉으로 좁혀보면 신도비는 세종의 ‘영릉’을 끝으로 더 이상 건립이 되지 않았다. 그랬던 것이 200년이 지나 부활을 했으니, 여기에 담긴 의미가 결코 작지가 않다. 조선왕릉에 신도비를 세우지 않았던 것은 크게 행적과 관련한 내용이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에 기록으로 남겨진다는 점과 또 다른 측면에서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고 왕위에 오른 세조가 이러한 사실을 신도비에 새기는 것이 부담스러웠기에 아예 신도비 자체를 세우는 걸 금지했다는 견해가 있다. 그랬기에 신도비는 한동안 능을 포함해 원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그랬던 신도비가 다시 출현했던 역사적 맥락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소령원’의 신도비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우선 신도비의 크기가 꽤 컸는데, 영조는 백성들이 피해를 입을까 염려해 비석으로 쓸 돌을 직접 사는가 하면, 석재를 ‘소령원’으로 옮기는데 많은 인원이 소요됨에도 강행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비석이 15리까지 운반이 된 상태에서 농번기를 맞이하자, 농번기를 피해 겨울철에 다시 옮기자는 제안도 받아들이지 않고, 비석의 크기를 줄여서 빨리 마무리 지을 것을 명하는 등 신도비에 대한 영조의 집념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소령원’의 비문은 박필상이 짓고, 글씨는 이방, 비석의 전액은 이요가 지었는데, ‘소령원’의 신도비를 통해 숙빈 최씨의 위상을 높이고자 했다. ‘소령원’의 신도비는 크게 귀부와 비문, 이수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특히 생동감이 넘치는 귀부와 목 부분에 새겨진 왕(王)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소령원’의 신도비를 통해 어머니의 명예 회복을 위해 영조가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았는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만하다.

귀부의 목 부분에 새겨진 왕(王). ‘소령원’ 신도비에 담긴 영조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문인석에서 바라본 제향 공간의 핵심인 정자각

제향이 이루어진 정자각. 1718년에 제작된 ‘숙빈 최씨 소령원도’에서는 등장하지 않고 있어, 1753년 ‘소령원’으로 격상된 이후 세워진 것을 알 수 있다.

■ 어머니를 향한 영조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소령원’

이러한 ‘소령원’은 최초 ‘숙빈묘’로 불리다가 영조에 의해 1744년 ‘소령묘(昭寧墓)’로 불리게 된다. 보물 제1535호 ‘숙빈최씨 소령원도’를 통해 ‘소령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림을 통해 가운데 ‘소령묘’가 자리하고 있고, 묘를 기준으로 좌측에 비각과 우측에 묘제를 지내기 위하여 지어 놓은 제청(祭廳)이 그려져 있다. 이후 1753년 영조에 의해 ‘소령원’으로 격상이 되면서, 기존에 없었던 금천교와 홍살문, 참도와 배위, 정자각과 수복방 등이 세워지게 된다. 이러한 ‘소령원’의 변화를 알 수 있는 것이 ‘소령원’의 비석으로 현재 ‘소령원’에는 두 개의 비각이 자리하고 있다. ‘숙빈 최씨 소령원도’에 나온 묘비가 하나 있는데, 여기에는 ‘숙빈해주최씨소령묘(淑嬪海州崔氏昭寧墓)’가 새겨져 있는 반면 ‘소령원’으로 격상된 뒤 세워진 원비에는 ‘조선국화경숙빈소경원(朝鮮國和敬淑嬪昭寧園)’이 새겨져 있다. 아울러 영조는 어머니를 위해 화경(和敬)의 시호를 올리는 한편 휘덕안순수복(徽德安純綏福)의 존호를 더하며, ‘소령원’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소령묘’의 묘비. ‘숙빈해주최씨소령묘(淑嬪海州崔氏昭寧墓)’가 새겨져 있다.

1753년 ‘소령원’으로 격상되면서 새롭게 세워진 원비로, ‘조선국화경숙빈소경원(朝鮮國和敬淑嬪昭寧園)’이 새겨져 있다.

배면에서 바라본 ‘소령원’의 전경

‘소령원’은 크게 속세와의 경계를 구분하는 금천교와 홍살문을 만나게 된다. 이후 제향 때 망릉례를 행했던 배위와 참도를 지나면 제향 공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자각과 좌측에 자리한 수복방을 만날 수 있다. 길게 뻗어있는 사초지를 따라 오르다 보면 두 개의 비각을 지나게 되고, 끝에 자리한 ‘소령원’의 원침 공간에 도착하게 된다. ‘소령원’의 원침 공간은 크게 난간석이 설치되지 않은 봉분을 중심으로 전면에 묘표석과 상석, 향로석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앞으로 장명등이 세워져 있는데, 봉분을 수호하는 석양과 석호가 각 1쌍이 설치되어 있다. 한편 봉분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망주석과 문인석, 석마가 각 1쌍이 세워져 있어 원의 격을 갖추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어머니를 향한 영조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소령원’은 불꽃같았던 숙종 시대의 꽃들의 전쟁과 아들인 영조, 그리고 사도세자와의 갈등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궤적에서 중요하게 바라봐야 할 공간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저작권자 © 뉴스타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