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에 자리한 ‘수길원(綏吉園)’은 영조의 후궁이자 효장세자(1719 ~1728, 추존 진종)의 어머니인 정빈 이씨의 원역이다. 정빈 이씨는 효장세자를 낳은 뒤 불과 2년 뒤인 1721년 11월에 불과 28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를 애석하게 생각했던 영조(재위 1724~1776)는 1725년 왕으로 즉위한 뒤 빈으로 봉하며, 이때부터 정빈 이씨로 불리게 된다. ‘수길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선왕릉의 능묘 제도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조선은 엄격한 신분질서가 유지된 사회였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통상 원(園)이라고 할 때는 세자나 세자빈, 왕을 낳은 후궁 등 일부에만 붙여지는 명칭이었다. 당장 이때까지도 순회세자나 소현세자처럼 세자였지만 원을 칭하지 못한 사례가 있었기에, 후궁의 신분으로 원을 칭한다는 것은 사실상 자신이 낳은 아들이 왕이 되지 않는 이상 어려운 일이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아무리 정빈 이씨가 영조의 후궁으로 맏아들인 효장세자를 낳았지만, 본인도, 효장세자도 모두 요절을 했기 때문에, 정상적이라면 정빈 이씨의 묘는 ‘수길원’으로 칭해질 수 없는 곳이었다.

죽은 뒤 왕의 어머니가 되었던 정빈 이씨의 ‘수길원’의 전경

‘수길원’의 능침 공간. 봉분 앞으로 묘표와 상석, 향로석과 함께 장명등이 세워져 있다.

■ 정빈 이씨의 묘가 ‘수길원’으로 칭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정빈 이씨의 묘가 ‘수길원’으로 칭해질 수 있었던 것은 일찍 요절했던 효장세자와 관련이 있는데, 이후 영조는 영빈 이씨와의 사이에서 사도세자를 얻으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은 이후 관계의 악화로 이어지며, 결국 ‘임오화변(1762)’으로 귀결이 되었다. 사도세자가 죄인의 신분으로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 불똥이 정조(재위 1776~1800)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본래 종법 질서에 따라 사도세자가 세상을 떠날 경우 아들인 정조가 후계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아버지가 죄인의 신분으로 죽은 까닭에 당시 정조의 입지는 불안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조는 정조에게 여파가 미칠 것을 우려해 서둘러 정조를 죽은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을 시키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왕실의 족보인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紀略)’에 기재가 되었다. 이러한 까닭에 정조에게 혈육상 아버지는 사도세자가 맞지만, 법적인 아버지는 효장세자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렇게 정조가 왕위에 오르게 되면서, 효장세자는 진종으로 추존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자연스럽게 왕을 낳았던 어머니인 정빈 이씨의 묘는 원으로 격상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문인석에서 바라본 ‘수길원’의 제향 공간. 현재 홍살문을 제외하면 기단부와 초석만 남아 있어 황량한 모습이다.

총탄 자국이 선명한 상석. 한국전쟁의 참화를 피해가지 못했다.

■ 죽은 뒤 왕의 어머니가 되었던 정빈 이씨와 소박한 ‘수길원’의 모습

1778년 정조에 의해 ‘수길원’으로 격상이 되면서, 기존에 없던 금천교와 홍살문, 참도와 정자각, 수복방 등의 부속 건물이 세워지게 된다. 진입 공간과 제향 공간에 대해서는 별도의 가설이 이루어졌지만, 원침 공간의 경우 묘일 때 그대로인 모습을 볼 수 있어 다른 원(園)과 비교했을 때 소박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난간석이 설치되지 않은 봉분을 중심으로, 그 앞에는 묘표와 함께 상석과 향로석, 장명등이 세워져 있다. 또한 봉분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망주석과 문인석이 각 1쌍이 세워져 있으며, 다른 원에서 볼 수 있는 단적으로 석양과 석호가 배치되어 있지 않고, 보통 문인석과 함께 세워지는 석마 등의 일부 석물이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1778년 ‘수길원’으로 격상이 되면서 새롭게 가설된 정자각과 참도. 지금은 그 흔적만 찾아볼 수 있다.

자연적인 하천을 그대로 살려 금천교를 설치했다.

배면에서 바라본 ‘수길원’의 전경. 소령원에 비해 규모도 작고, 간소한 것을 볼 수 있다.

현재 ‘수길원’의 원침을 제외하면 정자각이나 부속 건물 등 기단부와 초석만 남아있는 형태로, 아직까지 복원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또한 특이하게 정자각의 경우 보통은 능의 정면에 배치되는데 비해 ‘수길원’은 정자각과 원침이 틀어진 채 배치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지형적인 요소를 감안한 것으로 보이며, 마찬가지로 자연적인 하천을 그대로 살려 금천교를 만든 부분은 눈여겨 볼만하다. 죽은 뒤 왕의 어머니가 되어 ‘수길원’으로 격상된 일련의 이야기 속에 영조와 정조의 시대를 이해하는 키워드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만한 공간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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