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사후 세도정치에 의해 조선은 삼정의 문란과 함께 민란이 들불처럼 번지던 시기였다. 당시 조선은 민란과 신분질서의 모순이라는 내부적인 혼란과 함께 외형적으로 서구 열강의 확장에 직면했다.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청나라의 모습은 다소 낯선 풍경이었다. 이러한 혼란스러웠던 시대의 왕이자 망국의 가운데 있었던 이가 고종(재위 1863~1907)으로, 오늘날 고종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망국의 군주였기에 받은 박한 평가와 그나마 일제(=일본)에 마지막까지 저항을 했다는 일부 재평가 요소가 공존하고 있다. 외형적으로 고종의 시대는 거세게 밀려오는 서구 열강과 일제의 침략에서 나라를 지켜내지 못했기에 망국의 군주로 우리의 기억 속에 각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의 망국은 왕조시대의 종말을 의미했는데, 왕조시대의 종말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지난 수천 년 간 이어져온 단일한 통치의 형태가 뒤바뀐 일대의 사건이었다. 바로 이러한 일이 먼 과거가 아닌 불과 한 세기 전의 사건이라는 점에서 지금도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주박물관에 있는 척화비. 흥선대원군 당시의 쇄국정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왕위에 올랐지만,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에 가려진 고종

흥선대원군(1820~1898)과 여흥부대부인 민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난 고종은 1863년 철종이 세상을 떠나면서, 조대비(신정왕후 조씨, 1808~1890)의 교지에 의해 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당시 조선은 세도정치가 극에 달한 상태였고, 당시 안동 김씨에 대항하기 위해 흥선군과 조대비가 서로 손을 잡은 결과 고종이 즉위할 수가 있었다. 고종이 즉위할 당시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수렴청정을 해야 했는데, 당시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군은 대원군으로 봉해지고, 국태공(國太公)의 지위에 오르며 섭정을 하게 된다. 정치권력의 핵심에 선 흥선대원군은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에 대해 응징을 가했는데, 이는 서원철폐(1871)로 표면화되었다. 반면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경복궁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백성들에게 조세와 노역을 무리하게 부담시켜 민심의 이반을 불렀다. 이러한 민심 이반은 과거 광해군의 폐위 명분 중 하나였던 만큼 당시나 지금이나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 또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의 그레셤 법칙이 통용된 ‘당백전’이 주조되어 화폐 체계의 혼란을 초래했다. 한편 대외적으로 통상을 요구하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가 벌어졌지만,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책으로 대응했고, 이를 엿볼 수 있는 것이 당시 전국에 세워진 척화비였다. 하지만 왕위에 오른 지 10년 만에 고종이 친정을 결정하면서, 흥선대원군은 섭정의 지위를 잃고, 권력에서 배제가 되었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건청궁 옥호루의 전경

이후 권력의 핵심은 고종의 왕비인 명성황후 민씨(이하 명성황후, 1851~1895)와 그 일족들이 쥐게 된다. 비교적 대중에 인지도가 높은 명성황후는 뮤지컬 ‘명성황후’가 흥행을 하면서 조선의 국모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단적으로 ‘백성이여 일어나라’를 듣다 보면 조선을 구하겠다는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당시 권력의 핵심에 있던 명성황후와 민씨 일족들의 부정부패와 사치, 일개 무녀인 ‘진령군’에 휘둘리며 국고를 탕진했던 사례 등 비판적인 시각이 더 우세한 편이다. 흥선대원군과 달리 고종과 명성황후는 개화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이었고, 때 마침 일제에 의해 ‘운요호 사건(1875)’을 구실로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다. 그 결과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개화파가 생겨나게 되고, 신식 군대인 별기군이 창설이 되었다. 하지만 기존의 구식 군대와의 차별이 발생하게 되면서, 임오군란(1882)의 발생을 부르게 된다. 이어 김옥균을 위시한 급진 개화파가 갑신정변(1884)을 일으키며 조선은 또 한 차례 혼란에 빠지게 된다. 갑신정변은 청의 개입을 부르게 되고, 일본과의 대결구도가 형성이 되었다. 당시 톈진조약(1885)을 통해 청과 일본은 조선에 군대를 파병할 때 서로 알리기로 약속하고, 군대를 철수했다. 하지만 동학농민운동을 대처하는 과정에서 조선 조정은 청에 파병을 요청하는 정치적 자해를 하게 되고, 결국 청의 파병으로 일본 역시 톈진조약을 구실로 조선에 군대를 보내게 된다. 결국 청과 일본의 대립은 청일전쟁(1894~1895)으로 비화가 되고, 이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게 된다. 이러한 일본의 세력 확장에 위기감을 느낀 조선은 러시아를 끌어들여 세력의 균형을 맞추고자 했고, 일본 측에서는 이러한 배후에 명성황후가 있다고 판단해 자객들을 보내 경복궁 건청궁에서 명성황후를 시해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우리 역사에서는 을미사변(1895)으로 부르고 있다. 스스로 나라의 위기를 타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외세의 힘을 빌려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던 당시 조선의 통제되지 않았던 상황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아관파천이 단행된 구 러시아 공사관. 지금은 탑 부분만 남아있다.

■ 아관파천과 대한제국의 선포, 하지만 러일전쟁의 여파와 함께 망해가는 조선의 비극

명성황후가 시해된 뒤 고종은 암살의 위협에 시달리게 되는데, 당시 러시아 공사 베베르의 제안에 따라 고종은 거처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기는 아관파천(1896)을 단행하게 된다. 한 나라의 왕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할 만큼 궁궐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후 지속된 환궁 요구와 협상 끝에 1897년 경운궁으로 환궁하게 되고, 이어 10월에 환구단에서 황제의 즉위식을 가지며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하게 된다. 하지만 허울뿐인 황제였을 뿐, 대외적인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여기에 결정타를 가한 것은 러일전쟁(1904~1905)으로,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며 대한제국의 운명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결국 1905년 을사늑약에 의해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상실하며, 사실상 일본의 속국이 되었다. 이를 인정할 수 없었던 고종은 1907년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이준과 이상설, 이위종을 특사로 파견해 부당함을 알리고자 했다. 하지만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결국 헤이그 특사 사건을 구실로 고종은 강제로 퇴위를 당하며, 고종의 아들 순종(재위 1907~1910)이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로 즉위하게 된다. 당시 고종과 순종이 모두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행해진 이 같은 퇴위는 사실상 조선이 망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후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를 통해 일본과의 강제병합이 이루어지며 대한제국은 그렇게 멸망했다. 이때의 멸망은 문서상의 멸망일 뿐, 동시대를 살았던 이들은 조선이 멸망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을 만큼 평온한 일상이었다.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점은 지금 우리가 한미 동맹으로 부르는 미국이 당시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일본에 의한 조선의 지배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힘을 키우지 않고, 외세에 의존했던 조선의 망국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역사의 교훈이다.

홍릉의 전경. 침전을 중심으로 참도와 석물 등이 배치되어 있다.

제향이 이루어지는 침전의 내부. 기존의 왕릉에서는 ‘丁’ 형태의 정자각인 반면, 홍릉은 ‘一’ 형태의 침전이다.

비각 내에 모셔진 홍릉의 능비

■ 황제의 능으로 조성된 고종의 홍릉, 고종을 향해 백성들이 응답한 3.1운동

강제병합 이후에도 고종은 일제에 협조적이지 않았다. 일부에서 망명정부를 계획했었다는 주장이 제기될 만큼 자신이 할 수 있는 저항은 다했던 고종은 1919년 1월 21일 덕수궁 함녕전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당시 고종에 대한 독살설이 퍼진 데다, 철저하게 일본식으로 장례를 준비했던 일본의 모습에 분노했던 조선의 백성들은 고종의 장례에 발맞추어 만세 운동을 벌이게 되니, 이것이 1919년 3.1운동으로 표면화되었다. 따라서 3.1운동은 고종의 죽음에 대한 조선 백성들이 응답했던 의리로 평가되기도 한다.

능침의 좌측에 자리한 어정의 전경

배면에서 바라본 홍릉의 능침 공간. 외형적으로 화려한 왕릉이지만 근, 현대사의 굴곡진 시대였다는 점에서 묘하게 대비된다.

남양주시 금곡동에 자리한 홍릉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합장릉으로, 기존의 왕릉과는 달리 왕의 예법이 아닌 황제의 예법으로 조성이 되었다. 가장 큰 차이는 석물의 배치로 통상 능침에 문인석과 무인석 각 1쌍, 석마 2쌍, 망주석 1쌍, 석양과 석마가 각 2쌍이 자리하고 있다. 반면 홍릉의 경우 침전 앞으로, 차례대로 문인석과 무인석, 기린석과 코끼리석, 사자석과 해태석, 낙타석과 마석의 순서로 서로 마주 보면서 1쌍씩 세워져 있다. 홍릉의 능침 공간은 병풍석과 와첨상석, 난간석을 두른 화려한 봉분이 있고, 곡장을 둘러 보호하고 있다. 봉분의 앞에는 혼유석과 고석, 장명등이 세워져 있으며, 좌우에 망주석이 1쌍 설치되어 있다. 한편 사초지 아래에는 산신석과 함께 축문을 태웠던 예감이 자리하고 있으며, 제향 때 쓴 어정도 남아있다. 또한 제향 공간 역시 변화가 보이는데, 참도의 경우 기존의 왕릉은 2도로 조성된 반면, 홍릉은 3도로 조성되었다. 제향이 이루어지는 건축물 역시 기존의 왕릉은 ‘丁’ 형태의 정자각인 반면, 홍릉은 ‘一’ 형태의 침전이라는 점도 차이를 보인다. 비각의 경우 기존의 왕릉에 비해 규모가 커지고, 능비에도 황제의 명칭이 들어가는 등 변화를 보인다. 이처럼 외형적으로 홍릉은 기존의 왕릉과 달리 규모가 커지고,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홍릉을 통해 당시의 시대 상황을 돌이켜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공간으로, 구한 말 조선이 망국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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