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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화성, 수원 편 -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지표 유물인 고인돌, 오산에서 찾아보자!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18.01.31 09:06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문화재 중 고인돌이 있다. 고인돌은 다른 이름으로 지석묘(支石墓)라고도 불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 시대에 집중적으로 조성이 되어 대표적인 지표 유물로 인정이 되고 있다. 통상 고인돌의 크기에 따라 권력이 강했는지를 알 수가 있다. 북한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고인돌인 관산리 고인돌과 강화 부근리 지석묘(사적 제137호)에서 볼 수 있듯 크기가 클수록 큰 권력을 가진 지배자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또한 고인돌은 주술적인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는데,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고인돌의 표면에 남겨진 ‘성혈(홈구멍)’이다. 지금으로 치면 고인돌은 권력과 종교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셈으로, 우리나라는 고인돌의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만기 이상이 분포하고 있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밀집률을 보이고 있다.

오산시 금암동에 자리한 고인돌 공원. 총 11기의 고인돌이 확인이 되었으며, 이 중 9기가 기념물로 등록되었다.
마을의 수호신으로 인식된 할머니 바위와 할아버지 바위. 금암동의 지명 유래도 바위가 많다는데서 유래했다.
금암동 고인돌 6호의 모습

■ 고인돌을 통해 역사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고인돌은 크게 북방식과 남방식으로 구분이 되는데, 북방식 고인돌은 아랫돌을 괴어 상판을 올려둔 형태로, 마치 탁자처럼 생겼다 해서 탁자형 고인돌로 불린다. 대개 북방과 중부 지역에서 확인되기 때문에 북방식으로 불리는데, 과거 고조선의 영향이 미쳤던 요동 지역에서 탁자형 고인돌이 확인되고 있다. 다만 요동의 고인돌은 인공적으로 다듬은 형태지만, 북한 지역에서 확인되는 고인돌의 경우 자연석을 그대로 쓴 것이 특징이다. 반면 남방식 고인돌은 개석식과 바둑판형이 있는데, 생김새가 마치 바둑판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남방식 고인돌은 주로 남방과 중부에서 확인되고 있는데, 오늘 소개할 오산의 고인돌은 중부에 위치하고 있어 북방식과 남방식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고인돌은 우리 역사에서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지표 유물로 등장하고 있는데, 기록이 부재한 고조선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주로 고조선에 쓰인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의 분포를 통해 고조선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특히 주목해볼 점은 고조선의 수도를 두고 학계에서 중심지 이동설을 주장하는데, 최초 고조선의 수도가 요동이었다가 뒤에 평양으로 옮겼다는 것이 핵심이다. 바로 이 주장의 중요한 근거로 사용되는 것이 ‘고인돌’의 변화로, 앞선 시기인 해주, 개성현 일대의 고인돌은 인위적으로 다듬은 형태가 드러나지만, 비교적 후기의 고인돌이 밀집한 평양 일대의 고인돌은 자연석의 형태로 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고인돌을 통해 우리 역사의 이야기를 찾아갈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점이다.

오산 외삼미동 고인돌 1호. 탁자 형태의 북방식 고인돌이다.
외삼미동 고인돌 2호. 1호와 달리 개석식으로 북방식과 남방식이 혼재되어 있다.
외삼미동 고인돌 1호의 표면에 새겨진 ‘성혈’. 고인돌에서 쉽게 발견되는 성혈은 주술적인 의미를 상징한다.

■ 오산 외삼미동 고인돌, 북방식과 남방식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이처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지표 유물인 고인돌은 오산을 중심으로 화성과 수원 일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오산시 외삼미동과 금암동에 고인돌이 남아있는데, 인근의 화성이나 수원에 비해 고인돌의 보존이나 활용에 신경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우선 금암동 고인돌의 경우 1988년 발견이 되어, 지금은 고인돌 공원으로 조성이 되었다. 총 11기의 고인돌이 확인되고 있으며, 현재 9기가 경기도 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되었다. 남은 2기의 경우 고인돌로 추정이 되며, 금암동에 있는 고인돌의 형태는 모두 개석식이다. 안내문을 통해 금암동의 지명 유래가 큰 바위가 많다는 데서 유래했음을 알 수 있어, 고인돌과 관련지어 보면 흥미롭다. 재미있는 점은 고인돌과 함께 할머니 바위와 할아버지 바위가 자리하고 있는데, 사람들에게 이 바위들이 마을 수호신의 기능을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공원 내에는 민속신앙의 하나인 당우물터가 남아있어 눈길을 끈다. 금암동 고인돌과 함께 주목해볼 곳이 바로 외삼미동 고인돌로, 해발 50m의 낮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1990년 발견된 고인돌은 2기로, 탁자식 형태의 북방식 고인돌인 1호와 개석식 고인돌인 2호가 확인이 되었다. 고인돌의 표면에는 ‘성혈’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으며, 마을 주민들은 고인돌을 ‘거북바위’ 혹은 ‘장수바위’로 부르고 있다. 이는 과거 주술적인 성격과 종교적인 형태의 민속신앙이 결합된 형태로, 특히 외삼미동 고인돌의 경우 한 곳에서 북방식과 남방식 고인돌을 동시에 볼 수 있어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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