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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은 훨씬 더 쉽게 타락한다
김소라 기자 | 승인 2018.02.13 06:59

평범한 사람들은 삶에서 두각을 나타낼만한 업적이나 성과가 그리 없다. 보잘 것 없는 인생을 만족하고 살 뿐이다. 하지만 위대한 성취를 젊은 시절 이루었던 소위 ‘위인’들은 끝끝내 자신의 위대한 성취를 죽을 때까지 신화로 만들고 싶어 한다. 한 번 높은 곳에 올라가보았던 사람들이 아래로 내려오기란 쉽지 않다. 인간은 누구나 늙는다. 늙음과 병듦을 인정해야 한다. 청춘의 고난과 치열한 결핍이 만들어 낸 업적은 물론 인정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늙음과 함께 찾아오는 변절은 세상 사람들을 허탈하게 만든다. 세월이 변했음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않고, 조용히 물러서지 않을 때 타락은 한 순간에 찾아온다.

민주화 투쟁에 앞장선 실천가였고 우리나라 문학의 큰 별과 같았던 시인이 있다. 문학적인 성취는 뛰어났고 해마다 노벨상 수상자로 영광스러운 영예를 얻었다. 아마도 모든 국민들의 염원은 노 시인의 노벨상수상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수원시에서는 훗날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노 시인을 모셔와 인문학 도시의 위상을 드높이려 했다. 시인에게 기거할 수 있는 저택을 마련해 주었고, 문학관 건립에 대한 구상과 설계도 끝났다. 문학회나 학술연구도 덩달아 활발해진 듯했다. 수원을 문학의 도시로 발돋움하려는 기회를 갖기 위해 노 시인의 후광을 빌었다.

얼마 전 충격적인 시 ‘괴물’로 인해 만천하에 노 시인의 욕망이나 추잡함이 드러났다. 위대한 문학가의 멸망을 한 순간에 본 셈이다. 위대한 인간도 나이가 들면 때때로 초라해진다. 날카로웠던 사유는 무뎌지게 마련이고 생존을 위한 욕망에 집착할 수 있다. 때로는 권력과 명예에서 내려올 수 없게 된다. 반성하지 않고 성찰하지 않은 채 권위에 집착하고 그것이 자신의 업적이라고 당연시 여긴다. 남들의 칭찬과 아첨에 길들여진다. 사회 역시 위인의 업적을 칭송하면서 비판을 거둔다. 그래서 물러나야 할 때를 알지 못하고, 지혜로움으로 채우지 못한 나이 든 ‘위인’은 초라하게 생을 마감하게 된다.

기자가 포착한 노 시인의 모습은 초라하기만 하다. 자신의 집에 갇힌 채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다. 당당함과 빛은 사라지고 비굴해 보이는 얼굴로 변모했다. 후광은 사라져버렸다. 자신이 잘못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사죄는 더더욱 하지 않는다. 독자에 대해 어떠한 해명과 반성도 없다. 그가 은혜를 내렸다고(?) 말하는 여성 시인들에게 철저히 사과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의 청문회에서처럼 ‘몰랐습니다’ 혹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라는 뉘앙스로 침묵할 뿐이다. 참담하고도 비참한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이 생긴다.

최영미 시인은 특정한 개인의 행태를 폭로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노 시인에 대한 개인적인 악감정 때문만도 아니었다. 문단의 부조리와 모순을 만 천하에 드러내면서 문학적인 진실을 되찾자는 자정적인 목소리를 담았다. ‘괴물’과도 같은 문학의 성채를 부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상을 파괴하고 기존의 성역을 무너뜨릴 때 새로운 것이 건설된다. 파괴는 또 다른 창조의 시작이다. 예술은 결국 인간을 드높이고 인간답게 만드는 것 아닌가. 위대한 예술작품은 말없는 감동을 준다. 잘못된 제도로 문단의 벽을 높이 쌓아 올리면서 한 사람만을 추앙했던 구조는 허물어져야 마땅하다.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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