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8월 29일, 허울뿐인 황제였던 대한제국의 순종은 일본(=일제)의 천황에게 공식적으로 합병을 요청하고, 일본은 여기에 호응하는 방식을 빌려 대한제국은 멸망했다. 이를 우리 역사에서는 ‘경술국치(庚戌國恥)’로 부르고 있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처럼 외부의 침입으로 결사적으로 항전한 모습은 찾기가 어렵고, 이와는 전혀 다른 형태인 내부에서의 침탈로 일본은 대한제국을 조금씩 해체해나갔다. 결국 청일전쟁(1894~1895)과 러일전쟁(1904~1905)을 거치며 그렇게 대한제국의 운명은 끝이 났고, 이제 껍데기만 남았던 외형마저 강제로 병합했던 것이 대한제국의 멸망이었다. 지금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경술국치가 언제 이루어졌는지 알지 못하는 것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멸망은 흡사 고려가 멸망할 때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던 상황이지만, 틀린 점이 있다면 이민족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는 점에서 이후의 시기를 ‘일제강점기’로 규정한다. 그렇게 대한제국이 멸망을 하면서, 기존의 황실은 ‘이왕직(李王職)’의 설치로, 새로운 신분으로 규정되었다. 이왕직의 신분은 일제의 천황보다는 아래이며, 일본의 귀족인 화족들보다는 위의 신분으로 규정되었다. 이에 따라 순종(재위 1907~1910)은 ‘이왕(李王)’으로 불리게 되고, 고종(재위 1863~1907)의 경우 ‘이태왕(李太王)’으로 불렸다. 이렇듯 대한제국의 멸망에서 구 황실은 자유롭지 못한데, 이후 황실의 인사들이 일제에 협력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흥선대원군(1820~1898)의 장남인 흥친왕 이재면(1845~1912)과 그의 아들 이준용(1870~1917)의 예로, 당시 일본은 구 황실 가족들에 대한 대우를 해주고 있었기에 결국 이것이 하나의 기득권으로 일제에 협력한 경우를 볼 수 있다. 반면 구 황실이 독립운동과 관련해 지원을 했다는 이야기는 크게 찾기가 어려운데, 그나마 의친왕(1877~1955)의 상해임시정부에 합류하고자 했던 사건이나 그의 아들 이우(1912~1945)가 일제에 고분고분하지 않고, 나름 저항을 했던 소극적인 형태였다. 따라서 해방 이후 황실 복원을 위한 여론이 모이지 않는 것도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배면에서 바라본 덕혜옹주의 묘. 영화로 인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 역사왜곡으로 몸살을 앓았던 영화 덕혜옹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구 황실의 가족 중 덕혜옹주(1912~1989)가 있다. 과거에는 인지도가 낮아서 누군지 잘 모르던 덕혜옹주는 소설과 영화를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아졌다. 실제로 관리소의 말에 따르면 영화가 개봉된 이후 덕혜옹주 묘를 찾는 이가 부쩍 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만 소설과 영화에서 표현한 덕혜옹주의 모습은 실제 역사 속에 모습과 차이를 보이고 있어, 한쪽에서는 이를 ‘미화’ 내지는 ‘역사 왜곡’으로 규정하며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물론 이러한 시각에 대해 공감을 하지만, 생각해봐야 할 점은 영화나 사극을 만들 때 있는 역사의 사실을 그대로만 만들면 다큐멘터리기 때문에, 작품에서 일부 각색이 되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는 점이다. 영화 ‘사도’의 이준익 감독은 ‘사도’를 팩트가 8, 허구가 2라는 표현을 했다. 심지어 정통 사극을 표방했던 정도전 역시 ‘양지’라는 허구의 인물을 통해 정도전이 민본과 새로운 국가, 조선을 세우는데 필요한 소재로 활용한 바 있다. 따라서 영화나 사극에서 일부 각색이 들어가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게 아니라 영화와 역사는 어떻게 다른지 조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덕혜옹주의 경우 역사왜곡의 논쟁보다 그녀의 삶이 당시의 시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 있게 볼 수 있다. 망국이라는 환경과 뒤이은 일제강점기 당시 구 황실은 무기력했고, 일제에 순응했던 모습은 결코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 다만 덕혜옹주의 개인사적 삶을 본다면 구 황실의 몰락과 그녀의 삶이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당의를 입고 있는 덕혜옹주. 1924년의 사진이다.

장명등과 함께 바라본 덕혜옹주의 묘

■ 덕혜옹주, 그녀의 비극적인 삶의 궤적

덕혜옹주는 1912년 고종과 후궁인 복녕당 귀인 양씨(1882~1929)와의 사이에서 고명딸이자 외동딸로 태어났다. 당시 대한제국은 이미 멸망했고, 멸망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던 고종에게 덕혜옹주는 복덩이이자 즐거움 그 자체였다. 이러한 고종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례가 바로 준명당(浚眀堂)으로, 고종이 덕혜옹주를 위해 궁궐 내에 유치원을 열게 했다는 점에서 알 수가 있다. 이후 일제에 의해 왕족으로 인정이 되지만, 오히려 덕혜옹주의 개인사적 삶은 더 불행해지게 된다. 본래 고종은 덕혜옹주의 남편으로 당시 고종의 측근인 시종 김황진의 조카 김장한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고종의 승하와 함께 물거품이 되었다. 여기에 일제는 덕혜옹주에게 근대교육을 받게 하겠다는 빌미로 일본 유학을 강제하며, 원치 않게 일본으로 떠나야 했다. 이방자 여사의 구술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덕혜옹주의 모습은 수척해있고, 말을 잃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영친왕은 인질이 더 필요하냐며 화를 내기도 했다. 일본으로 건너간 덕혜옹주는 아오야마에 있는 여자 학습원을 다니게 된다. 여기에 어머니 복녕당 귀인 양씨 역시 세상을 떠나면서, 덕혜옹주는 그야말로 외톨이 신세에 처해졌다. 이 때문에 덕혜옹주의 병세가 심해졌는데, 조발성치매증의 진단이 내려졌다. 설상가상으로 이왕직 장관인 한창수는 덕혜옹주의 결혼을 추진했는데, 영친왕의 반대에도 결국 1931년 5월 8일 대마도주 소 다케유키(1908~1985) 백작과 결혼을 했다. 격으로 따지면 급이 되지 않는 인물이었지만, 이미 나라가 망한 상태였기에 거부할 수가 없는 운명이었다. 하지만 일제의 패망(1945)과 함께 그동안 인정받던 신분은 사라지고, 평민의 신분이 되었다. 이후 1946년 병이 심해진 덕혜옹주는 마쓰자와 도립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소 다케유키와 이혼하게 된다. 둘 사이에는 마사에(정혜)라는 딸이 있었지만, 1956년 스스로 유서를 쓰고 나간 뒤 실종되었다. 당시 덕혜옹주의 존재는 잊힌 존재로, 그렇게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덕혜옹주 묘의 비석. ‘대한덕혜옹주지묘’라 새겨져 있다.

전면에서 바라본 덕혜옹주 묘. 한 여인의 삶을 통해 당시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고국으로 돌아온 덕혜옹주, 아버지인 고종의 홍릉 인근에 잠들다

이러한 덕혜옹주가 돌아올 수 있었던 건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후 대통령)과 김을한의 공이 컸다. 김을한은 고종이 염두에 둔 덕혜옹주의 약혼 상대였던 김장한의 형으로, 일본에서 덕혜옹주를 찾아 고국으로 돌아오는데 기여를 하게 된다. 한편 이방자 여사의 구술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미국을 방문하기 위해 잠시 일본에 들른 박정희 의장은 이방자 여사를 만나 덕혜옹주와 구 황실 가족들의 상황을 접하고, 이들이 귀환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이 양녕대군의 후손으로, 정치적인 이유에 의해 구 황실의 일원을 받아들이는데 소극적이었다. 반면 박정희 대통령은 이런 부분에서 자유로웠기에 박정희 대통령 시절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 그리고 덕혜옹주 등 구 황실의 일원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정착을 할 수 있었다. 1962년 고국으로 영구 귀국한 덕혜옹주는 이후 낙선재에서 기거하다가 1989년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이때 그녀의 나이 76세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구 황실이 보여준 실망스러운 모습은 분명 비난받아야 한다. 하지만 한 여인으로서 비극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덕혜옹주의 삶은 안타깝고 가련하다는 생각과 당시의 시대적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덕혜옹주가 세상을 떠난 뒤 지금의 남양주시 금곡동에 자리한 홍릉과 유릉의 인근에 장지가 조성되었다. 이곳에는 영친왕의 영원을 비롯해 이구의 회인원, 의친왕 묘 등 구 황실의 가족들이 모여 있는 공간으로 덕혜옹주의 묘는 봉분과 함께 좌측에 덕혜옹주임을 알리는 비석과 장명등, 망주석 1쌍이 간소하게 세워져 있다. 이와 함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자리한 서삼릉 내 빈과 귀인의 묘역에는 덕혜옹주의 어머니인 복녕당 귀인 양씨의 묘가 자리하고 있어 참고하면 좋다. 한 여인의 삶을 통해 당시의 시대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덕혜옹주의 묘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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