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가끔씩 뜻하지 않은 나비효과를 일으키곤 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의외의 사건을 접하게 되는데, 이런 의미에서 화성시청 인근에 자리한 ‘신빈김씨묘역’은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신빈 김씨(1406~1464)는 세종의 두 번째 후궁으로 본래 공노비 출신이었다. 신빈 김씨의 나이 13살에 궁궐에 들어와 중궁전(소헌왕후 심씨)의 궁녀로 있던 중 세종(재위 1418~1450)에게 승은을 입었다. 이 때문에 공노비 출신에서 내명부의 품계 중 후궁으로 가장 높은 ‘빈(嬪)’에 올랐기에 신빈 김씨를 흔히 ‘조선판 신데렐라’로 부른다.

화성시청 인근에 자리한 신빈김씨묘역. 홍살문을 시작으로 참도와 제향 공간을 볼 수 있다.

역을 향해 오르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신도비각

빈김씨묘역의 신도비. 보통 후기로 갈수록 묘표가 세워지는 것과는 비교가 된다.

보통의 경우 왕후와 후궁의 사이가 좋지 못한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신빈 김씨의 경우 소헌왕후 심씨와 사이가 좋았다. 또한 세종과의 사이에 6남 2녀를 낳는 등 세종의 사랑을 받았기에 신빈 김씨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으로 좋은 편에 속한다. 이 같은 측면에서 신빈 김씨는 스스로의 위치를 알고, 최대한 자신을 낮추었으며, 상대방을 높여 주는 처세술을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세종이 세상을 떠난 이후의 행적과 함께 그의 아들들의 선택이었다. 우선 세종이 세상을 떠난 뒤 신빈 김씨는 불교에 귀의해 비구니가 되었다. 당시 신빈 김씨의 이러한 선택에 단종(재위 1452~1455)이 환속을 하라고 명했을 정도로 신경을 쓴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신빈 김씨의 아들들은 당시 수양대군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훗날 계유정난(1453)이 일어나자 세조를 지지했다. 이러한 관계는 소헌왕후 심씨가 세상을 떠난 뒤 신빈 김씨가 수양대군(세조, 재위 1455~1468)을 보살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를 증명하듯 신빈 김씨가 세상을 떠나자 당시 왕위에 있던 세조는 쌀과 콩 70석을 부의로 내려주었다.

묘역의 봉분과 앞에 배치된 상석과 향로석

묘역의 중앙에 배치된 장명등

■ 계유정난이 바꾸어 놓은 신빈 김씨와 혜빈 양씨의 운명

반면 세종의 세 번째 후궁인 혜빈 양씨(?~1455)는 신빈 김씨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조선 왕실의 가계 상황을 살펴봐야 하는데, 세종이 재위할 당시 세자 향(문종, 재위 1450~1452)의 세자빈 권씨(현덕왕후, 1418~1441)가 단종을 출산한 뒤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미 세종의 후반부에 대리청정을 통해 실질적으로 국사를 보고 있었던 문종의 건강이 극도로 악화가 된 상태였기에, 문종이 일찍 세상을 떠날 경우 장자 계승의 원칙에 따라 왕위에 오를 단종의 앞날을 장담할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보통의 경우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를 경우 대비나 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는데, 불운했던 단종은 할머니인 소헌왕후 심씨와 어머니인 현덕왕후 권씨 역시 세상을 떠난 상태였다.

혜빈 양씨가 보호했던 단종의 장릉(莊陵).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강원도 영월에 자리하고 있다.

신빈 김씨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세조의 광릉(光陵). 신빈 김씨의 아들들은 세조를 지지했다.

이러한 사실을 예감이라도 한 듯 세종은 어린 단종을 혜빈 양씨에게 맡기며 잘 보살필 것을 부탁하게 된다. 또한 문종 역시 황보인과 김종서 등의 고명대신을 불러 단종을 잘 보필해줄 것을 부탁하게 되는데, 예상대로 왕위에 오른지 2년 뒤 문종이 세상을 떠나면서 황보인과 김종서 등의 고명대신은 단종을 왕위에 올리고, 단종에게 위협이 되는 대군들, 특히 수양대군에 대한 견제를 하게 된다. 이에 반발한 수양대군은 한명회와 신숙주를 비롯한 세력을 규합하게 되는데, 당시 신빈 김씨의 아들들 역시 세조를 지지했다. 결국 계유정난을 통해 정권을 장악한 수양대군에 의해 단종은 상왕으로 물러나게 되고, 이후 단종 복위 운동을 빌미로 영월 청령포로 유배된 뒤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단종의 운명처럼 단종을 보호했고, 지지세력이었던 혜빈 양씨는 가련한 운명에 처하게 된다. 혜빈 양씨는 자신의 아들인 영풍군과 함께 유배를 당하는데, 이후 교수형에 처해지게 된다. 이러한 혜빈 양씨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그의 후손들은 화를 피해 한양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혜빈 양씨의 집성촌 중 한 곳이 바로 화성시 서신면에 자리한 백곡리다. 반면 신빈 김씨의 경우 죽은 뒤 지금의 화성시청 인근에 묘역이 조성되었으며, 그 후손들은 세조에 의해 중용이 되었다. 이처럼 신빈김씨묘역을 통해 계유정난의 역사를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마치 경제학 용어인 나비효과(Butterfly effect)처럼,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고 돌아 화성시에서 신빈 김씨와 혜빈 양씨, 그리고 단종과 수양대군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신빈김씨묘역에 담긴 이야기는 결코 작지가 않다는 점에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신빈김씨묘역의 문인석. 익살스러운 표정이 인상적이다.

표석에서 바라본 제향 공간. 이처럼 신빈김씨묘역에 담긴 의미는 작지 않다.

■ 화려하게 조성된 신빈김씨묘역, 역사의 나비효과가 만들어준 흔적

화성시청 인근에 자리한 신빈김씨묘역은 현재 경기도 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곳 사람들은 ‘애기능’으로 불렀다. 처음 신빈김씨묘역을 마주하면 의외로 화려한 묘역에 놀라게 된다. 보통의 경우 후궁의 묘는 간소하게 조성이 되는데 비해 신빈김씨묘역은 마치 조선왕릉의 예처럼 진입공간인 홍살문과 제향 공간과 참도, 신도비각 등이 세워져 있다. 묘역의 경우 가운데 봉분을 중심으로 넓은 곡장과 함께 봉분의 중앙으로 상석과 향로석, 장명등이 차례로 세워져 있으며, 좌우에 문인석 1쌍이 세워져 있다. 특히 이 문인석의 웃음이 참으로 익살스럽고, 조선 후기의 사실적 묘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뭔가 부자연스럽고 통상의 조선왕릉이나 묘역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기에 후손들에게 문의한 결과 홍살문과 제향 공간 등은 비교적 최근에 세운 것으로, 애초에 묘역은 봉분과 석물, 신도비만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신빈 김씨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신분 상승의 신데렐라라고 할 수 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신빈김씨묘역을 통해 계유정난의 이야기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단종과 세조의 흔적을 마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화성시에서 혜빈 양씨의 후손과 신빈 김씨의 후손이 함께 인척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역사의 나비효과가 만들어준 또 하나의 흔적인 셈인지도 모른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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