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다테 마키코의 작품 <끝난 사람>에서는 은퇴를 ‘생전에 치르는 장례식’이라 말한다. 일을 하면서 성취감을 느끼며 그 속에서 자아를 찾았던 사람들에게 ‘은퇴’는 사형선고와 같다. 더 이상 자아를 찾을 수도 없고, 일 말고는 어떻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지 모른다.

평소 가정보다는 회사에서 보내던 시간이 많았던 남성들은 은퇴 후에 할 일이 없어진다. 가족들은 이미 가장이 집에 없는 상태를 익숙해 하며 그들만의 생활을 만들었다. 이러한 패턴이 일상이니 집에 있는 아버지 혹은 남편이라는 존재가 낯설기만 하다. 그래서 은퇴한 남성은 가족 안에 비집고 들어가기가 어렵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노인’이 된다. 나이가 많아졌기에 노인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노인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가졌기에 노인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무위(無爲)다.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노인이 되는 것을 앞두고 있는 베이비부머 세대는 앞으로 닥치게 될 무위와 싸우게 될 것이고 지금의 노인들은 여전히 무위와 고군분투 중이다.

<끝난 사람>이라는 작품명처럼 사람으로서 끝이 났다는 것은 서글프다. 끝난 사람을 다른 말로 표현해 본다면 ‘잉여인간’이다. 쓸모가 다한 존재라는 뜻이다. 우리 사회가 은퇴한 노인을 바라보는 시각이기도 하지만 노인들 스스로도 자신들을 ‘살아 있는 송장’이라고 표현한다. 이 모든 것은 의미 있는 활동을 더 이상 하지 못해서 일어난다. 무위가 목적 자체인 인간을 보잘 것 없게 만든다.

은퇴는 영어로 ‘RETIRE’다. ‘RE’는 ‘다시’라는 뜻이고 TIRE는 말 그대로 자동차에 쓰이는 타이어다. ‘RE+TIRE’는 타이어를 새롭게 갈아 끼운다는 의미다. 은퇴라는 것은 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을 말한다. 끝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은퇴를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행위에 가치 있는 의미를 부여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노인이 은퇴 후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마음만 먹는다고 해서 그것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노인의 50%가 빈곤한 현실에서 먹고사는 문제가 눈앞에 놓여 있다. 새로운 삶을 살기보다는 단지 생명을 연장시키는데 여생의 힘을 쏟아야 한다. 대한민국 노인 절반은 지금의 상황에서는 끝난 사람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노후가 걱정 없는 상태에서 자아 찾기 놀이를 하는 것과는 현실세계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절반의 다른 노인들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운동을 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거나 자기개발을 위해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한다. 발표회나 동아리 활동들을 통해서 소속감을 가진다.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스스로가 사회에서 필요한 존재라고 느낀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최소한의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경제력에서 나온다.

노인들이 해야 할 일이 바로 여기에 있다. 노인들에게 무위를 해결해주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 지원해 준다는 것은 자기 개발을 열심히 하여 개인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에 있지 않다. 노인이라는 존재가 이 사회에서 존경을 받고,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도록 만들어가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노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먼저 정치적으로 자각을 해야 한다. 후배들과 소통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 다양한 입장에서 말하는 생각을 토론을 통해서 받아들이고 학습해야 한다. 지역의 현안들을 조사하여 마을 의제를 만들고, 더 나아가 복지정책으로 담아야 한다. 노인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후배 세대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고민해야 한다. 노인들이 이러한 실천을 할 수 있도록 활동가들은 옆에서 거들어 줘야 한다.

노인이 되어 인생을 멋지고 즐겁게 자신을 위해서 살 수도 있지만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실천하는 것은 더욱 큰 자부심과 가치를 지닌다.

복지국가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공동체를 위해 실천하는 노인은 끝난 사람이 아니다. 잉여인간도 아니다. 사회정의를 위해 바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며, 존경받을 수밖에 없는 귀한 존재들이다. 은퇴한 노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결코 끝나지 않는다.

이건일(태평2동복지회관 관장)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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