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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MeToo)에서 자유로운 여성이 과연 있을까
김소라 기자 | 승인 2018.03.06 02:22

연일 쏟아지는 미투는 과연 어디가 끝일까 싶을만큼 온 나라를 뒤흔들어 놓는다. 영화 예술계, 대학계, 스포츠, 정치계까지... 우리 사회의 추악한 민낯을 매일 마주하는 듯하다. 지금껏 여성들에게 보편적으로 행해져 온 일들이라 한다. 그러니 관행이고 관습일 뿐이라고 한다. 악습은 구시대의 유물이다. 그렇다면 미투에서 자유로운 여성이 과연 있을까 싶다. 나 역시 오랜시간 무의식 속에 봉인되었던 기억이 하나 둘 떠오르게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 들어갔을 무렵이다. 동네에서 여느 때처럼 땅따먹기 놀이, 공기놀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턱수염이 거뭇거뭇나기 시작한 동네 오빠들이 내가 노는 것을 한참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사탕을 하나 줄 테니 치마를 들어 보라고 시켰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사탕을 준다는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매일 동네 오빠는 사탕을 줬고, 나는 치마를 올려야만 했다. 그런데 나중에 혼이 난 건 동네 오빠가 아니었고 나였다. 왜 남자들에게 치마를 올렸냐면서 이모에게 맞아야 했다.

중학생 때였다. 사춘기가 되면서 새로운 학교와 친구들에게 적응하기도 힘든데 내 몸의 성장을 불편하게 받아들여야만 했다. 남자 아이들은 가슴 펴고 당당하게 걷는데 왜 여자 아이들은 어깨를 움츠리면서 다녀야만 했을까. 한강 고수부지 근처의 동네에 살았는데 당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서 여자애들의 가슴을 툭 치고 가는 성인 남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팔짱을 습관적으로 끼는 버릇이 있나보다. 무방비상태로 이름모를 남자들에게 추행을 당했던 친구들은 한 둘이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는 선생님의 공공연한 추행이 이어졌다. 한 여름 땀이 교복에 철썩철썩 달라붙어 흰 블라우스가 다 비칠 정도였다. 선생님 중 한 명은 매일 수학 문제를 풀라고 자습을 지시했고, 뒤에서부터 반 아이들의 몸을 쓰다듬었다. 여학생들의 다리나 허벅지를 만지기도 했고, 특히 누구의 살결이 부드럽다는 이야기도 했다. 변태 같던 그 선생님은 아직까지도 사립고등학교에서 근무한다.

대학 때는 어떤 일이 있었나 생각해 보니 한 두가지가 아니다. 첫 MT에 갔을 때 복학생 선배는 나를 찜했으니 다들 ‘먹지 말라’고 큰 소리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만원 버스와 지하철에서는 상습적으로 엉덩이를 만지고 비벼대는 성추행범이 있었다. 내 친구와 사귀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는데도 비디오 방에서 나에게 키스를 하려는 동기가 있었다.

직장으로 잠시 다녔던 입시학원에서는 남자 원장에게 성폭력 당했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폭탄주를 마시고 정신을 못 차리고 쓰러졌을 때 그는 구석에서 내 옷을 벗기려 했다. 몇 년 전 모 중학교 방과후 강사로 일했을 때 남자 교감 선생님은 회식자리였던 노래방에서 부루스를 추자고 치근덕댔다. 귓속말로 자꾸 사귀자는 이야기도 했다.

지나온 세월 되돌아보니 나는 방관했고, 침묵했다. 스스로 잊는 게 제일이라고만 여겼다. 그들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일이다. 함께 #MeToo를 이야기해야 한다.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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